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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의 함정’ 빠진 시진핑式 중화제국

[조경란의 21세기 중국] 기원전 1세기 한무제 大一統이 21세기 ‘中 화하주의’ 뿌리

  •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규모의 함정’ 빠진 시진핑式 중화제국

김치 담그는 영상에 ‘Chinese Food(중국 음식)’라는 해시태그를 단 중국 유튜버. [유튜브 캡처]

김치 담그는 영상에 ‘Chinese Food(중국 음식)’라는 해시태그를 단 중국 유튜버. [유튜브 캡처]

중국이 외부세계와 소통하기 힘든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다민족 중화제국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중화제국체제를 떠받치는 이데올로기 중화주의다. 중화주의는 중화제국체제라는 현실 조건에서 나온 의식 형태다. 그런 점에서 중화제국체제와 중화주의의 관계는 카를 만하임이 제시한 ‘존재구속성’ 개념으로 봐야 한다. 만하임은 지식사회학이라는 새로운 사회과학 분야를 통해 인간 사회 지식이 역사적·사회적 조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규명하고자 했다. 중국은 중화주의의 존재구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규모의 함정’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자기 객관화 없이는 중국이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이다.

중국에서 중화주의는 언제, 어떻게 생겨났고 역사 속에서 어떤 형태로 존재했을까. 중화주의 근간에는 화이론(華夷論)이 깔려 있다. 화이론과 중화주의는 동일시되기도 한다. 화이사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전에 형성됐다. 중국 고대 사회, 춘추오패 시대가 지나고 전국칠웅 시대에 이르자 기존 도덕은 붕괴하고 약육강식 논리가 자리 잡았다. 주나라를 따르던 제후들은 제가끔 왕을 칭하며 중원 지배 정통성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화이질서라는 관념은 이러한 정치적 조건에서 만들어진다. 가령 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는 다른 제후국으로부터 변방 이적(夷狄) 취급을 받으면서도 ‘하(夏)’를 자처했다(1990년대 출토된 죽간 기록). 중국에선 중화주의보다 화하주의(華夏主義)라는 표현을 더 선호하는데, 하는 곧 화(華)와 통한다. 이미 고대부터 중화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 개념이다.

유동적 개념 ‘중화’

화이질서는 진나라, 한(漢)나라 이후 동아시아 국제질서로 확대됐다. 한무제 시대 유학자 동중서(董仲舒)는 국가 통치와 역사의 정통성이 천(天)에서 비롯된다는 중화적 정치신화를 만들었다. 중화제국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완성된 것이다. 이성규 서울대 동양사학과 명예교수에 따르면 중국과 천하라는 공간 범위는 물론, 그 주체 민족이라는 화하(華夏)의 실체도 유동적일 수 있다. 진·한(秦·漢) 이후 화이(華夷) 관계의 대표적 형식은 조공체제다. 다만 당시 조공체제는 일방적 강압의 결과라기보다 쌍방 합의 관계라고 봐야 한다. 이(夷)가 오히려 조공체제에 편입되기를 원한 경우도 적잖다. 청나라 초기처럼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할 때 중화주의가 첨예화하기도 했다. 문제는 중화주의가 점차 중국 문명의 우월성과 주변 이적의 열등함을 강조하는 형태로 중국인 뇌리에 박힌 것. 이민족은 중국을 위협하는 동시에 중화주의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존재로서 타자화됐다.

근대에 이르러 조공·책봉체제를 근간으로 삼은 중화제국은 해체됐다. 청일전쟁 패배와 조선, 타이완의 이탈이 결정적 계기다. 중화질서를 떠받치던 이념체계 천(天)의 초월성도 무너졌다. 천하적 세계질서 균열로 중화제국은 과거 형태를 유지하기 어려웠지만, 지도자와 지식인은 중화주의를 뿌리 깊게 내재화했다. 근대 중국의 아버지라고 할 쑨원(孫文)조차 그랬다. 그는 티베트, 몽골, 타이, 버마, 부탄, 네팔 등 주변 국가를 두고 “언젠가 중국의 지배로 돌아와야 한다”고 봤다. 실제 역사에서 해당 국가들이 중국의 직접통치를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쑨원은 중화주의 시각을 다음과 같이 드러낸 바 있다.

“우리 4억 인은 매우 평화로운 민족일 뿐 아니라 문명적 민족이다. 중화제국 전통이 지켜져 (명나라 때) 동남아시아 소국들이 조공했으며, 중국에 귀화하고자 했다. 그들이 중국 문화를 흠모해 귀화를 원한 것이다. 중국이 무력으로 그들을 압박하지 않았다.”



민족해방 사회주의

중국 베이징 시내에 있는 ‘중국몽’ 선전물. [GETTYIMAGES]

중국 베이징 시내에 있는 ‘중국몽’ 선전물. [GETTYIMAGES]

현대 중국 지배이념인 사회주의와 중화주의의 관계는 어떨까. 사회주의 혁명 동력은 공산사회를 향한 열망보다 중화제국 자존심 회복이다. 근대 중국이 반(半)식민지로 열강 침탈에 시달려서다. 이른바 ‘민족해방형 사회주의’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전통 중화주의는 근대적 민족주의와 결합해 강고한 중화민족주의로 거듭났다. 중국 공산주의 기저에는 중화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거자오광(葛兆光) 푸단대 역사학과 석좌교수는 “1920년대부터 중국 정치인과 지식인은 서양 민족국가 이론을 받아들이면서도 전통적 ‘대일통(大一統)’ 이념의 영향도 깊이 받았다”고 봤다. 또 근대 중국 정치인과 지식인이 두 가지 책무에 시달렸다고 지적했다. 각각 전통적 천하질서를 근대적 국가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무, 변강(邊疆)을 중국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과제다.

량치차오(梁啓超) 같은 지식인은 천하보다 국가 형성을 근대 중국의 급선무로 봤지만 대다수 엘리트는 중화제국 강역을 포기하지 못했다. ‘구주(九州: 하나라 우임금이 중국 영역을 9개 주로 나눔) 천하’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탓에 천하의식을 버리지 못했다. 역대 중국왕조 정통성을 담보한 대일통은 근대에도 영토 보존 의식으로 이어졌다. 20세기 전반기 일본의 중국 침략은 중화주의를 더 자극했다. 중화제국체제 붕괴 속에서 중화주의가 생존하는 데 일본 침략이 본의 아니게 ‘기여’한 것이다. 일본 침략의 역설이다.

21세기 중화주의는 ‘중국모델’ ‘중국몽’과 함께 거론된다. 오늘날 중국 지식인의 태도도 중화주의 연장선에 있다. 추이즈위안(崔之元) 칭화대 교수 등 중국 신좌파 지식인은 “중국이 서양 중심의 일원적 역사관을 타파하고 미래 세계문명을 창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유가(新儒家)로 불리는 천윈(陳贇) 화동사범대 교수는 “유가문명은 보편주의적 문명이며, 중국 굴기는 유가문명이 기독교문명보다 우월하다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태도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애매한 좌파’를 자처하는 류칭(劉擎) 화동사범대 정치학과 교수는 “중국 신좌파, 신유가의 탈서양 중심주의에는 새로운 중국 중심주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화주의가 서양문명의 대안이 될까. 중국 정치인과 지식인은 서양 자본주의 폐단인 독점·착취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정작 오늘날 중국 사회는 그러한 자본주의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더 심화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내세운 중국몽은 오히려 그 그림자를 가리기 위한 화려한 선언에 불과한 게 아닐까. 더 큰 문제는 젊은 세대도 중화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최근 일부 ‘애국주의’ 성향 청년들이 김치, 한복 등 한국 문화를 자기 나라 것이라고 우겨 논란이 일었다. 때 아닌 문화 기원 논쟁 이면에도 중화주의가 있다. 모든 문화가 중국에서 발원했다는 극단적 자기중심주의 형태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가 이런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볼 때 중화주의는 앞으로도 존속할 것이다.

중화주의는 중국과 ‘오랑캐’의 구별에 기초한다. 사진은 중국 만리장성. [동아DB]

중화주의는 중국과 ‘오랑캐’의 구별에 기초한다. 사진은 중국 만리장성. [동아DB]

자기 인식 없이 타자 이해 못 해

타자를 포용하지 못하는 폐쇄적 태도는 비극을 초래한다. 문화대혁명도 ‘정통’만 허용하고 ‘이단’을 금기하는 풍조에서 비롯됐다. 한 가지 이데올로기만 옳다는 확신으로 유토피아를 구현하려 했으나 결과는 현실 속 지옥이었다. 중화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을 철저하면서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자기 인식을 제대로 못 하면 타자에 대한 인식도 온전할 수 없다. 자기 인식이 안 되면 타자 인식도 정확히 이뤄질 수 없다. 중국이 세계와 제대로 소통하고 교류하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다민족 중화제국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은 중화주의를 온존케 하는 동력이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중화제국과 중화주의는 중국인이 스스로를 냉철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현실적 조건이자 사상적 기제다. 중국 문명이 ‘규모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기 어렵다.

조경란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특별위원회 위원. 중국현대사상 · 동아시아 사상 전공. 홍콩중문대 방문학자 · 베이징대 인문사회과학연구원 초빙교수 역임. 저서로는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 : 신좌파·자유주의 · 신유가’ ‘20세기 중국 지식의 탄생 : 전통 · 근대 · 혁명으로 본 라이벌 사상가’ ‘국가, 유학, 지식인 : 현대 중국의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등이 있다.





주간동아 1308호 (p64~66)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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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17호

.12.03

위기의 롯데, ‘평생 직장’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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