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고 물품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왼쪽)과 미국 로컬 커뮤니티 서비스 ‘넥스트도어’ 로고. [사진 제공 · 당근마켓, 사진 제공 · 넥스트도어]
팬데믹 속 온라인 서비스는 생활 곳곳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이제 마트나 백화점에 직접 가는 대신 ‘마켓컬리’ ‘쿠팡’으로 장보기가 일상적이다. 자녀들은 아이 돌봄 중개 앱을 통해 교사를 만나고, 직장과 학교에서는 줌(ZOOM) 앱으로 회의와 수업을 진행한다. 온라인 서비스에 기반한 빅테크 기업, 스타트업의 시가총액과 기업가치가 폭등했다.
그렇다면 온라인 비즈니스 성장은 오프라인 거래의 종말로 이어질까. 온라인 서비스로 중개하더라도 최종 거래는 결국 오프라인에서 실현된다. 재화 판매·소비의 상당 부분이 온라인화됐으나, 그 서비스를 체감하는 공간은 여전히 오프라인, 즉 현실 세상인 것이다. 온라인 비즈니스의 후광을 입고 오프라인 지역경제가 뜨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이퍼로컬(hyperlocal) 서비스로 불리는 지역 밀착형 산업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확산 속에서 ‘당근마켓’ ‘번개장터’ ‘해주세요’ 등 동네 상권에 기반을 둔 생활 서비스가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
온라인 기술 후광 입은 오프라인 지역경제
현대백화점과 ‘번개장터’가 제휴해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에 개장한 플래그십 점포 ‘브그즈트 랩(BGZT Lab)’. [동아DB]
슬리퍼를 신고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의 상권을 뜻하는 ‘슬세권’과 IT(정보기술)가 만나 탄생한 하이퍼로컬 서비스. 이에 대한 IT 공룡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네이버는 자사 카페, 블로그를 통해 이웃과 지역 정보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이웃 서비스’를 론칭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스페인의 중고 거래 플랫폼 점유율 1위 기업 ‘캐러셀’과 ‘왈라팝’에 투자하기도 했다. 전통 오프라인 유통기업도 하이퍼로컬 업체와 M&A(인수합병)나 제휴·협력으로 탐색전에 나섰다. 롯데쇼핑은 일개 카페에서 시작해 연간 거래 규모 5조 원을 넘어선 플랫폼 ‘중고나라’를 인수했다. 현대백화점은 ‘번개장터’와 제휴해 ‘더현대 서울’에서 스니커즈 중고 거래 전문 매장 ‘브그즈트 랩(BGZT Lab)’을 플래그십 점포로 운영하고 있다.
하이퍼로컬 서비스의 성공 배경은 무엇일까. 가장 큰 요인은 역시 편의성. 모바일 기반 서비스 덕에 중고 물품 거래에 관심 없던 사람까지 이용자로 유입됐다. 중고 물품 구매자가 이후 판매에도 나서는 비율이 90%를 넘어설 정도로 서비스 만족도·충성도 또한 높은 편이다. 당근마켓의 경우 자체 결제·송금 서비스 ‘당근페이’도 출시할 예정이다. 슬세권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간편결제 수단까지 도입될 경우 하이퍼로컬 서비스의 편의성은 한층 더 높아질 전망이다. 중고 물품 거래로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점도 큰 매력이다. 이용자 간 채팅으로 중고 물품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이제 기본. 하이퍼로컬 서비스가 반려동물 사육 노하우를 나누고(당근마켓 등 플랫폼을 통해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는 경우도 적잖다), 취미를 공유하는 등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중고 거래부터 취미 공유까지
기존에는 특정 상권이 뜨려면 일정 조건을 갖춰야 했다.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세금을 들여 상권을 조성하거나 거대 자본이 랜드마크가 될 빌딩을 건설하는 식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기존 경제 문법으로 형성된 상권에 위기가 찾아왔다. 거대 상권의 위기가 골목상권의 기회로 직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디지털 기술의 힘을 빌린 하이퍼로컬 서비스는 슬세권 경제·문화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다만 앞으로 과제도 적잖다. 플랫폼업체가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하이퍼로컬 서비스가 진정 로컬 경제의 상생에 기여할 수 있도록 시민과 기업, 정부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