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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 3관왕 안산 뒤에 ‘키다리 아저씨’ 정의선 있다

“다리 뻗고 자, 오늘은”… 양궁에 ‘진심’인 현대차그룹

  •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

‘큰 산’ 3관왕 안산 뒤에 ‘키다리 아저씨’ 정의선 있다

7월 30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개인전 결승에서 안산 선수가 슛오프 마지막 한 발을 쏘고 있다. [동아DB]

7월 30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개인전 결승에서 안산 선수가 슛오프 마지막 한 발을 쏘고 있다. [동아DB]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개인전 금메달 시상식 후 눈물을 흘리는 안산 선수를 다독이고 있다. [동아DB]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개인전 금메달 시상식 후 눈물을 흘리는 안산 선수를 다독이고 있다. [동아DB]

7월 30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양궁 여자개인전 결승. 슛오프 마지막 한 발을 쏘기 위해 사대에 오른 안산(20·광주여대) 선수는 어느 때보다 침착하게 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흔들림 없이 과녁 중앙에 정확히 꽂혔다. 10점. 앞서 혼성단체전과 여자단체전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한 안 선수는 이로써 세계 양궁 사상 최초이자 한국 하계올림픽 사상 최초 3관왕에 등극했다. 올림픽 기간 내내 표정 변화가 없던 그는 이날 금메달 시상대에서 눈물을 쏟았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은 혼성단체전, 여자단체전, 남자단체전, 여자개인전에서 금메달 4개를 획득하며 또 하나의 신화를 썼다. 양궁 여자단체팀은 결승에서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팀을 스코어 6 대 0 퍼펙트 경기로 완파하며 1988 서울올림픽 이후 9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국 양궁이 긴 시간 세계 정상을 지킨 비결은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피나는 노력과 더불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훈련 시스템에 있다. 한국 양궁의 힘에 대해 양궁 남자 세계랭킹 1위 미국 브래디 엘리슨은 로이터를 통해 “메이저리그, 프로풋볼과 같은, 견줄 수 없는 시스템 덕분”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대차 R&D 기술 활용한 첨단 장비 큰 도움

70m 거리에서 화살을 쏘면 불량 화살을 솎아내는 ‘고정밀 슈팅머신’.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그룹]

70m 거리에서 화살을 쏘면 불량 화살을 솎아내는 ‘고정밀 슈팅머신’.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그룹]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무대에서 변방에 머물던 한국 양궁은 1988 서울올림픽 때부터 세계 정상에 우뚝 서기 시작했다. 1985년 대한양궁협회장에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취임하면서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정 명예회장은 기업 운영 매뉴얼처럼 훈련 시스템을 하나씩 철저히 다듬어갔다. 정 명예회장에 이어 2005년부터 협회장을 맡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첨단 훈련 장비를 통한 양궁 과학화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한국 양궁이 오랜 기간 세계 정상 자리를 지킨 비결로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첨단 훈련법 도입을 꼽는 이유다.

1996 애틀랜타올림픽에서 토너먼트 형태로 양궁 경기 방식이 바뀌자 대한양궁협회는 선수들이 흔들림 없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야구장에서 소음 극복 훈련을 시작했고, 2010년부터 시행된 세트제에 대비하고자 다이빙, 번지점프 훈련을 실시했다.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는 코로나19 사태로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되자 진천선수촌에 도쿄 양궁장과 똑같은 시설을 만들고 도쿄올림픽에서 예상되는 음향, 방송 환경을 적용해 실제와 같은 훈련을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R&D(연구개발) 기술을 접목한 첨단 장비도 선수들의 기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정 회장을 필두로 현대자동차그룹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직후부터 대한양궁협회와 함께 다양한 기술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양궁선수들이 평소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항을 청취하고 AI(인공지능), 3D 프린팅 등 첨단기술을 도입해 다양한 양궁 장비를 개발하는 데 앞장섰다. 그 결과 △최상 품질의 화살을 선별하는 장비인 ‘고정밀 슈팅머신’ △점수를 자동으로 판독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점수 자동 기록 장치’△비접촉 방식으로 선수들의 생체정보를 측정하는 ‘심박수 측정 장비’ △훈련 영상을 최적 영상으로 자동 편집하는 ‘딥러닝 비전 인공지능 코치’ △손에 최적화된 그립을 3D 스캔해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맞춤형 그립’ 등 5가지 장비가 개발됐다.

이 중 ‘고정밀 슈팅머신’ 덕이 특히 컸다는 게 관계자들의 평이다. 그동안 선수들은 자신에게 맞는 화살을 선별하기 위해 직접 활시위를 당기며 테스트하는 데 많은 시간은 할애했다. 70m 거리에서 화살을 쏴 불량 화살을 솎아내는 ‘고정밀 슈팅머신’은 2중, 3중으로 화살을 분류할 수 있어 훈련시간의 효율을 키웠다. 또한 선수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화살이 최상의 품질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게 돼 자신감이 높아졌다.

2020 도쿄올림픽 양궁 경기장을 직접 찾아 국가대표팀을 응원한 정의선 회장은 8월 1일 귀국해 취재진에게 “편차 없이 좋은 화살을 골라 쓸 수 있는 고정밀 슈팅머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개인전 시상식에 참석했다. [동아DB]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개인전 시상식에 참석했다. [동아DB]

정 회장은 첨단 훈련 시스템 지원뿐 아니라 양궁대표팀이 흔들릴 때마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따뜻하게 보듬으며 정신적 지주 역할도 자처했다. 개인전 결승을 앞두고 페미니스트 논란으로 흔들리던 안산 선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신경 쓰지 마라. 믿고 있으니 경기를 잘 치러달라”는 격려의 말을 전했다.

양궁 여자개인전 금메달 시상식이 열린 뒤 안산 선수를 만난 정 회장은 “다리 뻗고 자라, 오늘은”이라며 “너무 고생 많았다”는 축하의 말을 건넸다. 안 선수는 정 회장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며 눈물을 흘렸다. 안 선수는 개인전 시상식 후 공동취재구역에서 “아침에 회장님 전화를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장에 왔다”며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 양궁 대표선수들이 도쿄의 강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흔들림 없이 ‘텐텐텐’ 완벽한 경기를 펼친 배경에는 ‘양궁에 진심’인 정의선 회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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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1301호 (p26~27)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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