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9

2021.03.05

[제로웨이스트] 명품 브랜드는 왜 ‘중고’와 ‘재고’에 주목하나

코로나19 이후 급성장 … 국내에서도 기업이 주도해야

  • 김가영 칼럼니스트

    입력2021-03-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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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사 중고 가구를 매입해 재판매하는 이케아의 바이백 서비스. [사진 제공 · 이케아]

    자사 중고 가구를 매입해 재판매하는 이케아의 바이백 서비스. [사진 제공 · 이케아]

    세계 최대 중고 의류 유통업체 스레드업(thredUp)이 발표한 ‘2020 리세일 리포트’에 따르면 2019년 280억 달러(약 31조 원)이던 전체 중고 시장은 2024년 640억 달러(약 70조88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중고 시장이 급성장한 배경으로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경기 침체,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가치 소비 등이 꼽힌다. 김현경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2020년 이후 중고 거래 시장 활성화는 경제위기에 감염병과 환경 문제가 겹치면서 더 강화된 양상”이라며 “환경에 관심 많고 디지털에 익숙하며 가치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비를 지향하는 MZ세대가 중고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환경보호와 지속가능성의 일환으로 중고 및 재고 사업에 뛰어든 기업들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이케아코리아는 지난해 7월 소비자가 사용하던 이케아 가구를 매입한 뒤 수선해 다시 재판매하는 ‘바이백(buy-back)’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해 7월 경기 광명점에서 시범적으로 선보였는데 반응이 좋아 11월부터 전 매장으로 확대했다. 앞서 2018년 이케아는 벨기에를 시작으로 호주, 일본에서 바이백 서비스를 시범운영해왔다. 프레데릭 요한손 이케아코리아 대표는 “중고 거래는 더는 불필요한 물건을 버릴 필요가 없게 할 뿐 아니라, 누군가 썼던 제품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며 “이는 쓰레기 감축 효과를 낳아 지구에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안 팔리면 버려져 쓰레기가 되는 ‘재고’를 살리는 데 나선 기업도 있다. 코오롱FnC의 업사이클 브랜드 래;코드(RE;CODE)는 소각 예정인 재고 제품을 해체한 뒤 그 원단으로 제작한 옷을 판매한다. 래;코드 총괄을 맡은 한경애 코오롱FnC 전무는 “기업이 팔리지 못한 옷을 만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당장의 수익보다 사회적 책임에 더 큰 목적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중고 파는 이케아, 재고 업사이클 코오롱FnC

    재고 제품을 해체해 제작한 옷을 판매하는 래;코드(왼쪽)와 자체 중고 거래 사이트를 운영하는 리바이스. [코오롱FnC 래코드, 리바이스]

    재고 제품을 해체해 제작한 옷을 판매하는 래;코드(왼쪽)와 자체 중고 거래 사이트를 운영하는 리바이스. [코오롱FnC 래코드, 리바이스]

    한섬은 재고 의류를 친환경적으로 폐기하거나 업사이클하는 ‘탄소 제로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과거 한섬은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 신제품 출시 후 3년이 지나면 재고 의류 8만여 벌(약 60t)을 매년 소각해왔다. 하지만 현재는 재고 의류를 소각하는 대신 친환경 인테리어 마감재인 섬유 패널로 업사이클하고 있으며, 이를 자사 브랜드 매장 마감재로 활용한다. 

    기업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좀 더 활발하다. 지난해 10월 글로벌 데님 브랜드 리바이스는 자체 운영 중고 거래 사이트 ‘리바이스 세컨핸드’를 오픈했다. 안 입는 리바이스 제품을 되팔거나 중고로 살 수 있는 온라인 스토어다. 리바이스는 중고 제품을 가져온 고객에게 새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적립금을 제공하고, 확보된 중고 제품은 세척과 분류, 촬영 과정을 거쳐 세컨핸드 사이트에 업로드한다. 이렇게 업로드된 중고 제품을 구매하면 새 리바이스 제품을 살 때보다 쓰레기 700g, 탄소 배출량 80%를 줄일 수 있다.




    중고 시장은 미래 쇼핑의 대안

    H&M그룹은 2019년 자사 브랜드 앤아더스토리즈의 웹사이트에 ‘프리-러브드(pre-loved)’ 섹션을 구축하고 중고 의류를 시범판매한 데 이어, 지난해 본격적으로 세컨핸드 플랫폼 ‘셀피(Sellpy)’를 독일에 첫 출범했다. H&M그룹은 올해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에도 셀피를 론칭하는 등 중고 거래 사업의 확장을 선언했다. 패스트패션 공룡 기업인 H&M그룹은 패스트패션이 환경오염을 가중시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2012년부터 지속가능한 소재와 재활용 소재만을 사용한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컬렉션 라인을 선보인 바 있다. 

    몇몇 패션 명품 브랜드도 책임과 윤리를 실천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구찌는 세계 최대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 ‘더리얼리얼’에 자사의 재고 제품을 제공하고, 더리얼리얼에서 구찌 제품이 판매될 때마다 나무 한 그루씩 심는 ‘원 트리 플랜티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일찍이 환경보호에 앞장서온 스텔라 맥카트니는 자사 제품을 구매하는 사용자에게 더리얼리얼에서 사용 가능한 100달러의 크레디트를 지원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했고, 버버리는 구직 여성에게 무료로 면접 복장을 빌려주는 영국 사회적 기업 ‘스마트웍스’에 재고 제품을 기부하고 있다. 

    영국 대표 럭셔리 백화점 셀프리지는 고객이 직접 자신이 소유한 패션 및 액세서리를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매장 크레디트를 받을 수 있는 리셀 사업 ‘리셀프리지’를 시작했다. 또 렌털 및 수선 서비스를 강화하고, 2025년까지 환경에 무해하면서 윤리적으로 인증된 소재를 사용하는 제품들만 입점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국내외 기업들의 활발한 중고 사업 진출은 중고 시장이 일시적 유행이 아닌 미래 쇼핑의 대안으로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환경, 자원 순환을 기업 경영의 주요 가치로 두지 않는 기업은 점점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구조로 가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중고는 물론, 재고를 복원해 다시 파는 재고 시장 역시 기업이 먼저 주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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