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복사기가 고장 났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글이다. 아무렇게나 투자해도 수익을 안겨주던 주식시장이 최근 달라졌다는 의미다. 2월 24일 ‘삼천피’가 깨지면서 “주식 비중을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전 세계적으로 주식시장에 과도하게 돈이 몰린 탓에 거품이 껴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황·전략 담당 애널리스트로 일한 김예은 하나은행 포트폴리오매니저(PM) 역시 현 시점을 ‘버블 시기’로 진단한다. 다만 “당장 자금을 회수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다. 유동성 공급 추세가 지속되리라고 전망하기 때문이다. 2월 22일 책 ‘초버블시대, 주식투자의 미래’를 출간하며 당장 주식 투자금을 회수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전하기도 했다. 2월 22일과 3월 3일 양일 김 매니저로부터 ‘버블을 즐기는 법’을 들었다.
김예은 하나은행 포트폴리오매니저가 2월 22일 동아일보 충정로사옥 스튜디오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유동성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코스피 前고점 한 번 더 돌파할 것”
올해 주식시장은 지난해와 다르다는 이야기가 많다.“지난해 성장세가 이례적이었다. 시장이 조정 국면에 들어서다 보니 주식투자자 사이에서 비관적인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올해 역시 긍정적이라고 전망한다. 시장에 여전히 돈이 풀리고 있다. 유동성을 즐길 때다.”
코스피가 3000 인근에 머무르자 “횡보세다” “조정장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 주식시장이 우상향하리라고 보나.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 코스피 전(前)고점인 3260선을 한 번 더 돌파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에서 계속 공급되는 유동성이 아시아 시장에 유입되면서 주식시장이 상승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주가가 정체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금리인상에 대한 불안이 반영된 것 같다. 하지만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최근 금리 동결 계획을 밝혔다. 물가상승이 2%를 초과해도 용인하겠다는 입장이다. 연준이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을 당장 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파월 의장은 2월 23일 상원 금융위원회 화상 청문회에서 “경기 회복세가 충분치 않다”며 제로금리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유동성 공급 방편인 월 1200억 달러 자산 매입 프로그램 역시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연준의 양적 완화 기조가 재확인되면서 당일 4% 가까이 급락했던 나스닥 지수는 0.5% 하락으로 장을 마쳤다. 김 매니저는 “최근 전 세계 주식시장이 흔들렸다. 중국의 긴축 정책 가능성이 점쳐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보다 세계 증시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중국 역시 당장 긴축 정책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월 24일 코스피 3000선이 깨지면서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한동안 조정장이 나타날 거 같다. 조정 국면 없이 지수가 상승할 경우 버블이 꺼질 때 파장도 커진다. 쉬어가면서 숨을 고르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 조정장이라고 해도 코스피가 3000선을 유지하고 있다. 유동성 공급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어서다. 긴 흐름에서는 한국 기업의 수익률이 미국보다 훨씬 좋다. 단기적 횡보세에 흔들릴 때가 아니다. 횡보세가 끝나고 기업 실적 개선이 나타나면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할 수 있다.”
2000년 닷컴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유동성 공급을 낙관했다.
“경제위기를 유동성 공급으로 극복하려고 한 점에서는 그때와 지금이 같다. 주식·자산시장에 버블이 낀 것도 공통점이지만 기업의 실체, 성장성 부분에서는 닷컴버블 때와 다르다. 언택트(비대면) 산업, 4차 산업 관련 기업은 실체가 있다. 경기 개선 흐름이 나타나는 점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와 차이점이다. 다만 시장에 유동성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풀렸기 때문에 향후 버블이 꺼지면서 경기침체가 나타날 수 있다.”
“핵심 리스크는 인플레이션”
2월 24일 코스피가 2994.98로 장을 마감했다. [뉴스1]
“핵심 리스크는 인플레이션이다. 금리가 올라가면 테이퍼링과 유동성 회수 우려가 커진다. 물가를 반영하는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60달러 수준이다. WTI가 지난해 대비 2배가량 오른 탓에 3·4월 소비자물가도 크게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물가 상승은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중앙은행의 유동성 회수로도 연결된다. 인플레이션으로 주식시장의 상승 동력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리스크와 버블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어느 시점까지 버블을 즐길 수 있을까.
“핵심은 미국 국채금리다. 10년물 금리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주식의 기대수익보다 채권이 주는 수익이 더 높으면 자금이 채권 쪽으로 이동한다. 채권 금리 상승이 주식시장에 리스크로 작용하는 이유다. 경기가 완만히 개선되면서 금리가 천천히 상승한다면 생각보다 리스크가 작을 수 있다.”
미국 국채 10년물을 어떤 방식으로 주시해야 하나.
“1차적으로 금리가 1.5%까지 도달하는지 주시해야 한다. S&P500지수 배당 수익률이 1.5%이다. S&P500지수 종목에 투자할 경우 주가 변동이 없더라도 1.5% 수익은 볼 수 있다. 채권 금리가 1.5%를 초과한다는 것은 예금의 매력이 커지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미국 국채금리가 2%까지 도달한다면 나 같아도 채권 비중을 늘린다.”
2월 25일 기준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장중 1.6%를 돌파하면서 나스닥과 S&P500지수가 2~3%대 급락했다. 다만 금리 상승은 이어지지 않았다. 이후 국채 10년물 금리는 하락세에 접어들어 3월 초 1.4%대에 머무르고 있다. 김 매니저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경기가 개선되면 유동성 공급을 줄여나갈 수 있다. 즉 인플레이션과 유동성 회수가 주요 변수다. 올해 주식시장이 지난해만큼 가파르게 상승하지는 않을 거다. 버블은 즐기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종목별 대응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해와 올해 시장 상황이 다른 탓이다. 지난해의 경우 기업 대부분이 주가가 올랐다. 올해는 산업별로 달리 대응할 필요가 있다. 성장산업이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와 궤를 같이하는 IT(정보기술) 업종은 여전히 전망이 괜찮다. 2차 전지나 다른 화학 분야 산업도 마찬가지다. 특히 전기차 시장이 향후 성장하리라고 본다.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아시아 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만큼 한국과 중국의 성장 산업에 주목하는 것도 좋다. 하반기에는 인플레이션을 대비해 금융주 쪽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다.”
중국의 경우 어떤 분야가 유망할까.
“중국 정부는 내수시장을 키우려 한다. 수출 중심 경제가 미·중 무역 갈등에서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 때문에 내수 육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4차 산업과 관련 있는 IT 기업 외에도 소비재와 연관된 기업도 주시하면 좋다.”
“당장 채권 비중 늘리지 않아도 돼”
안전자산 비중 또한 높여야 한다고 했다. 금이나 원자재 쪽을 말하나.“그렇다.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다. 최근 원자재 가격이 많이 올랐다. 지난해 대비 2배가량 올랐기 때문에 향후 경기가 어느 정도 개선될지가 관건이다.”
“원자재 슈퍼사이클이 도래했다”는 말도 나온다. 당장은 투자가 부담스럽기도 한데.
“부담스러운 가격대다. 원자재 투자를 희망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투자해도 괜찮다고는 말한다. 다만 자산 100%를 투자하는 등 극단적으로만 하지 말자. 원자재 수요가 커지기 위해서는 중국 경기가 개선돼야 한다. 중국이 원자재 재고를 얼마나 빨리 소진하는지가 중요 포인트다. 관련 소식을 뉴스로 보면서 체크할 필요가 있다.”
원자재도 종류가 다양하다.
“구리와 철광석 중심으로 보는 게 좋다. 구리의 경우 경기를 미리 알려준다고 해서 ‘미스터 쿠퍼’로 불린다. 구리 가격이 오르는 것은 그만큼 경기가 개선돼 수요가 늘었다는 걸 방증한다. 철광석 역시 마찬가지다. 인프라 투자를 하면 철광석 수요가 늘어 가격이 오른다. 원유 가격 변동도 수시로 체크하자.”
정리해보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주식과 기타 안전자산을 어떻게 배분하는 게 좋을까.
“투자자의 위험 감내 성향에 따라 다르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라면 금융자산 중 주식 비중이 70% 이상일 거다. 변동성을 감내할 수 있다면야 보유 비율을 변동할 필요가 없다. 리스크가 커졌을 때 채권 구매를 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싶다면 주식 비중을 줄여라. 이 경우도 당장 채권 비중을 50% 이상으로 늘릴 필요는 없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2%에 육박할 때 채권 비중을 높여야 한다. 채권형 펀드를 통해 투자하되 당장 채권 비중을 늘리고 싶다면 회사채, 추후 안전자산으로 보유하고 싶다면 국고채에 투자하라.”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빨라진 대선 시계에 출사표 서두르는 시도지사들
45년 흘렀어도 현재진행형인 ‘12·12 사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