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2

2021.01.08

적 도발 의지 꺾는 원자력 잠수함, 급조하면 ‘움직이는 체르노빌’ 된다 [웨펀]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08-15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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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라급 원자력 잠수함. [미국해군 제공]

    시에라급 원자력 잠수함. [미국해군 제공]

    1999년 개봉해 국내 스크린을 휩쓸었던 최민수 정우성 주연의 영화 ‘유령’에는 한국이 러시아로부터 경협차관 현물 상환으로 ‘바라쿠다’급으로 묘사된 시에라급(Project 945, Sierra class) 잠수함을 극비리에 넘겨받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 한국정부는 이 핵잠수함을 ‘유령’으로 명명하고 모든 승조원을 신원이 말소된 요원들로 구성하는 등 잠수함의 존재 자체를 극비에 부쳤다. 그러나 이 잠수함의 존재를 눈치 챈 미국과 일본의 압력에 굴복해 함장에게 자폭 명령을 내리지만 함장이 이에 불복해 반란을 일으키고, 결국 위치가 노출돼 일본 잠수함의 어뢰에 맞고 격침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일본의 어뢰가 ‘유령’에 명중하기 직전,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던 함장 ‘202’는 부함장에게 절규한다. “유령이 침몰하는 것은 저 어뢰 때문이 아니야. 스스로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우리 자신 때문이야. 강하지 않으면 짓밟히며 살아갈 수밖에 없어! 언제까지 그렇게 치욕스럽게 살아갈 건가.”

    영화에서 ‘유령’, 즉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동북아시아의 전략 판도를 근본부터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가공할 전략무기로 묘사된다. 실제로 무제한에 가까운 잠항 능력과 강력한 미사일로 무장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의 전유물이며, 존재만으로도 적의 도발 의지를 꺾이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다. 

    전쟁에 대비해 존재하는 집단인 군대는 언제나 최강의 무기를 원한다. 해군이 보유하는 모든 무기 가운데 잠수함, 특히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단연 최강의 무기다. 당연히 우리나라도 오래전부터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꿈꿔왔고, 과거 참여정부에서는 극비리에 획득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었다. 일명 ‘362사업’으로 추진된 한국형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은 당시 여러 기술적 난관과 예기치 않은 ‘보안사고’ 때문에 사업단이 사라지고 유야무야됐다. 그렇게 사업이 엎어진지 17만에 정부가 한국형 원자력 추진 잠수함 사업 착수 가능성을 다시 꺼내들었다. 

    한국형 원자력 추진 잠수함 이야기는 지난달 28일, 청와대 국가안보실 김현종 2차장이 ”차세대 잠수함은 핵추진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약 2주 뒤인 지난 10일, 군은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하면서 4000t급 잠수함 획득 계획이 있음을 공식화했다. 언론에서는 이 잠수함이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라고 다양한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군이 소개한 4000t급 잠수함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차세대 잠수함 사업, 일명 장보고-III 사업의 세 번째 단계인 배치(Batch)3를 지칭하는 것이다. 현재 해군은 도산 안창호급으로 명명된 3000t급 잠수함 전력화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 잠수함은 3000t급이라고는 하지만 수중 배수량이 3700t이 넘는 덩치를 가지고 있다.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은 장보고-III 배치 1 사업으로 3척이 진수됐거나 건조 중인데, 해군은 이 사업의 후속 사업인 배치 2 사업에서 3700t급 잠수함, 실제로는 4500t에 육박하는 디젤-전기추진 신형 잠수함 3척을 확보하고, 그 후속 사업인 배치 3에서는 이보다 더 대형화되었지만 추진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차세대 잠수함 3척을 더 확보할 예정이다. 

    현재 해군의 건함 계획은 배치 1급 3척을 2023년까지, 배치 2급 3척을 2028년까지 인수하는 것이 목표다. 이 때문에 언론에서는 배치 3급은 2020년대 말부터 2030년대 초 사이에 3척을 배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언론의 전망대로 배치 3급의 추진 방식이 원자력으로 결정되고, 2020년대 말에 초도함이 나온다면 우리나라는 10년 안에 원자력 추진 잠수함 보유국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이런 장밋빛 희망처럼 순조롭게 흘러갈까.

    필자는 국방부와 해군의 의뢰로 지난 2017년부터 2018년까지 ‘한반도에서의 원자력추진 잠수함의 유용성과 건조 가능성 검토’라는 연구를 수행한 바 있었다. 국내 원자로 분야의 권위자인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서균렬 교수가 선임연구원으로 참가하고, 국내에서 잠수함 건조 경험이 가장 풍부한 대우조선해양 등 유관기관의 기술자문 등을 통해 진행된 이 연구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반드시 필요하며, 국내 기술로 개발 및 건조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한 바 있다. 현재 해군은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별도의 TF를 편성해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해당 연구 보고서는 비공개 자료로 분류되어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으나, 기존의 디젤-전기추진 방식의 재래식 잠수함으로는 북한의 전략잠수함과 SLBM 위협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전술적·기술적 판단에 따라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소결에 이어 한국이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도입한다면 해외 도입과 국내개발 가운데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지, 마지막으로 정치·외교·법률·예산·환경적 측면에서 원자력 추진 잠수함 획득이 정말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했다. 

    연구보고서는 현재 국내 기술로도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독자 개발 및 건조가 가능하다고 판단했으나, 당면 위협인 북한의 핵 탑재 SLBM에 대한 대응전력 조기 확보, 한국형 원자력 추진 잠수함의 기술적 완성도 담보와 리스크 감소를 위해 ‘바라쿠다급(Barracuda class)’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쉬프랑급(Suffren-Class)을 기술도입 생산하며 국내 개발을 병행하는 사업 방향성을 권고했다.

    쉬프랑급 잠수함. [아시안 뉴스 인터내셔널 제공]

    쉬프랑급 잠수함. [아시안 뉴스 인터내셔널 제공]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출신으로 미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에 원자로를 납품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잠수함용 원자로 제작사 웨스팅하우스일렉트릭(Westinghouse Electric)의 수석 엔지니어로 활약하며 다수의 원자로 설계 경험을 가지고 있는 서균렬 교수는 한국형 원자력 추진 잠수함의 원자로 개발과 선체 설치에 소요되는 기간을 7년으로 계산했다. 한국은 이미 SMART 등 일체형 원자로 설계 및 제작 경험이 있으며, 잠수함용 원자로 개발에 필요한 우수 인재와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는 것이 개발 예상기간을 7년을 본 근거였다. 

    잠수함 설계 및 건조 경험이 풍부한 국내 조선소의 엔지니어들과 국내 선박 기술자들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원자력 추진 잠수함과 디젤-일렉트릭 잠수함의 구조는 완전히 다르기는 하지만, 관련 분야에 대한 연구가 오랜 기간 충분히 진행되어 왔고, 선체와 전투체계, 무장 등 다른 구성요소에 대한 기술적 성숙도는 이미 요망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이 준비됐다고 해서 한국형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 10년 이내에 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연구 과정에서 다각도로 검토된 바와 같이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라는, 그동안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무기체계를 손에 넣으려면 정치·외교·법률·환경·예산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정치·외교적 문제다. 정치적으로는 ‘핵’이라는 민감한 물질을 이용하며, 막대한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무기를 도입하는데 있어 국민적 합의와 공감대 형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외교적 문제는 국내 정치적 문제보다 더 복잡하고 어렵다. 우선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현행 한미원자력협정에서는 군사적 목적에서의 원자력의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는 함정 동력원으로서의 원자로 이용에 대한 제한 규정은 없으나, 사용하는 핵연료의 농축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무기급 핵물질로 분류될 수 있어 이 부분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다. 

    한국은 아직 독자적인 핵연료주기를 갖추지 못했고, 우라늄 농축 시설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국제적 동의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의 연료 확보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선결과제다. 이러한 ‘국제적 동의’는 사실상 ‘미국의 동의’를 의미하기 때문에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 갖고 싶다면 미국과의 관계 강화가 다른 그 어떤 조건보다 중요하다. 

    국내 법령 정비도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원자력을 동력원으로 한 선박을 개발하거나 보유한 적이 없기 때문에 원자력 추진 잠수함 개발에 들어가려면 관계 법령부터 정비해야 한다. 원자력 전문가가 참여해 원자력법과 원자력안전법을 개정해 군사용 원자로의 건설과 운영부터 안전 관련 제반 규정,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한 사후 처리에 관한 준비까지 빈틈없이 준비해야 한다.

    요컨대 현재 원자력 잠수함이라는 무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현행법과 방위사업구조, 군 정책 결정론자들의 의식 수준과 사업추진 구조, 예산 수준으로는 10년 이내에 우수한 성능과 안전성을 동시에 달성한 원자력 잠수함의 독자 개발과 전력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부가 원자력 추진 잠수함 획득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이 사업을 방위사업청과 해군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필자는 연구보고서에서 정부 유관부처와 기업, 학계의 역량을 효율적으로 결집하고 활용할 수 있는 대통령 직속의 독립기구를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 이러한 기구를 설치해 안으로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밖으로는 미국의 양해와 지원을 이끌어내고 가용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투입해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나가야 한다.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군사적으로 매우 위력적인 무기지만, 정치적으로도 대단히 효과적이고 강력한, 이제껏 가져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영역의 무기체계다. 이와 동시에 자칫 잘못하면 ‘움직이는 체르노빌’이 될지도 모르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는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다. 따라서 이 사업은 ”우리도 이런 것 한번 가져보자“는 감정적 접근보다는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또 차분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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