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1

2020.08.07

성공한 연예인도 울리는 ‘빚투’ 무한 책임

  • 오미정 대중문화칼럼니스트

    입력2020-07-30 11: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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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이혼한 어머니의 빚 문제로 최근 곤욕을 치른 배우 한소희. [나인아토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릴 적 이혼한 어머니의 빚 문제로 최근 곤욕을 치른 배우 한소희. [나인아토엔터테인먼트 제공]

    한동안 뜸했던 ‘빚투’가 다시 연예계에 등장했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출연해 큰 인기를 끈 배우 한소희가 주인공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주장에 따르면 한소희 어머니는 2015년부터 2016년까지 함께 계를 하던 지인의 돈을 가로챈 후 변제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딸의 이름을 내세웠다. 

    한소희는 이 같은 폭로에 “5세쯤 부모가 이혼했고 이후 할머니가 길러줬다”며 “20세 이후 어머니의 채무 소식을 들었다. 천륜이기에 자식 된 도리로 데뷔 전부터 힘닿는 데까지 어머니의 빚을 갚았다”고 밝혔다. 이어 “데뷔 이후 채무자들의 연락을 통해 어머니가 내 이름과 활동을 방패삼아 돈을 빌린 후 변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어머니의 채무 서류에는 나도 모르는 (내 명의의) 차용증이 있었다”며 “피해자 분과 이번 일을 통해 상처받았을 모든 분에게 고개 숙여 사과한다”고 말했다.

    ‘울타리’가 아니라 ‘감옥’

    연예계에서 빚투의 시발점은 잘 알려진 대로 2018년 일어난 래퍼 마이크로닷과 산체스 형제 부모의 사기 사건이다. 이들의 부모는 1998년 고향인 충북 제천의 한 마을 이웃으로부터 거액을 편취한 의혹을 남기고 뉴질랜드로 이민 갔다. 이 사건은 부모의 사기도 질이 나쁘지만 마이크로닷의 반응이 논란을 더욱 키웠다. 마이크로닷은 사기 피해자들에게 “부모의 사기는 사실무근이다. 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마이크로닷 부모의 사기 사건은 사실로 드러났고, 그의 부모는 현재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 사건 이후 연예계에서는 빚투가 이어졌다. 연이은 폭로에 어떤 연예인은 명예훼손이라며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또 어떤 연예인은 처음부터 피해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반응은 다양했지만 결론은 비슷했다. “도의적 차원에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빚투형 채무의 대부분은 연예인 부모가 진 것이다. 법적으로 부모의 채무를 자녀가 변제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연예인 대다수는 도의적으로 책임질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일련의 과정에서 몇몇 연예인은 자신의 불우한 가정사를 어렵사리 공개했다. 한소희의 경우도 그렇다. 



    사연은 비슷하다. 부모는 이혼했고, 해당 연예인과 왕래도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런 부모 때문에 연예인 자녀가 빚투의 당사자가 된다. 배우 한고은·김혜수·차예련·조여정·김보성, 가수 티파니·휘인, 개그맨 황제성, 방송인 안정환 등이 이 같은 빚투의 주인공이다. 

    이런 형태의 빚투 사건에서 ‘문제 인물’은 단연 연예인 부모다. 따뜻한 안식처가 돼야 할 가정이 해당 연예인에게는 비극의 시작점이었다. 가족이 ‘울타리’가 아니라 ‘감옥’인 것이다. 김혜수 어머니는 허황된 사업을 끊임없이 벌여 채무에 채무를 이어갔고, 안정환 어머니는 할머니가 키우는데도 안정환을 양육하는 데 돈이 든다며 주변으로부터 돈을 빌려 썼다. 차예련 아버지도 딸의 이름을 앞세워 토지거래 사기 사건을 벌여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쯤 되면 가족이 아니라 원수다.

    어린 시절부터 실질적 가장 역할

    연예계에는 이처럼 남보다 나을 게 없는 부모를 둔 연예인이 의외로 많다. 애초부터 문제 부모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 경우도 있고, 가족이 연예인으로 성공하자 부모의 ‘문제 DNA’가 뒤늦게 발현한 경우도 있다. 어떻든 사건의 중심에는 연예인 자녀의 경제적 성공이 자리 잡고 있다. 

    애초부터 문제 있는 가정에서 성장한 연예인은 빨리 경제적으로 독립하고자 독하게 맘먹고 성공에 매진한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활동해 성공한 아이돌 출신 연예인 가운데는 가정환경이 불우한 경우가 꽤 많다. 그런데 부모가 연예인 자녀에게 단순히 경제적으로 손을 벌리기만 해도 다행이다. 부모님의 빚이 폭로될 정도로 금전적 문제를 크게 일으키면 해당 연예인에게도 타격이 심각하다. 

    다행히 빚투 폭로의 주인공이 되진 않았지만, 한 여자가수 역시 아버지의 ‘사업병’으로 오랜 시간 가슴앓이를 했다. 어린 시절 폭력적이기까지 했던 아버지는 허황된 사업을 벌이며 주변에 딸의 이름을 팔았다. 부모는 이미 이혼했지만 이 가수는 아버지의 채무 상당액을 오랜 시간 갚아줬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계속해서 사업을 벌이자 결국 수년 전 연락을 끊었다. 이 가수는 “그 후 몇 년이 지나 아버지가 심장 문제로 응급실에 입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솔직히 그때 아버지가 차라리 돌아가셨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 가수는 “동생들의 유학비까지 모두 자신이 부담했다”면서 “어린 시절부터 실질적인 가장으로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해 할머니 손에 자란 한 걸그룹 멤버의 경우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어머니가 자녀의 성공 후 슬그머니 나타났다. 이 그룹 소속사 대표는 “제3자 입장에서 볼 때 어머니가 다분히 돈 생각을 하고 나타난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당사자인 멤버는 앞뒤 따지지 않고 어머니가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하더라”며 “오랫동안 어머니가 없는 환경에서 살아온 멤버에게는 어린 마음에 그렇게나마 돌아온 어머니가 반가웠던 모양이다”고 말했다. 그는 “예상대로 어머니가 딸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며 “그럼에도 그 멤버는 어머니에게 할 도리를 하더라”고 했다. 소속사 측은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큰 사고를 치지 않고 단순히 경제적 도움만 원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가수 장윤정 어머니는 장윤정이 데뷔한 후 벌어들인 수십억 원을 탕진하고도 그에게 돈을 계속 요구하고, 돈을 주지 않자 무리한 폭로를 이어가기도 했다. 또 고(故) 구하라 어머니는 구하라가 어린 시절 가출해 양육 의무를 저버렸는데도 딸의 재산을 상속받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이 같은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연예계에는 부모뿐 아니라 가족 모두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소년·소녀 가장이 꽤 많다. 배우 이상아, 남규리, 이재은 등 여러 연예인이 어린 시절부터 실질적으로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왔다고 고백한 바 있다.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등을 가족이 맡아 연예인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경우는 연예계에서 평범한 축에 속한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톱스타 부모나 형제, 자매가 해당 연예인의 명성에 기대지 않고, 독립된 경제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 경이로운 마음까지 든다”며 “천륜이라는 명분으로 자녀를 경제적으로 괴롭히는 부모를 볼 때마다 ‘연예계에서 성공이 무슨 소용 있나’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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