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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헐렁하면 일도 헐렁하게 한다?

“복장·근태만 봐도 마음가짐 보인다!” vs. “업무에 지장 없으면 되지 않나요?”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옷이 헐렁하면 일도 헐렁하게 한다?

  • 사내 규범에 대한 생각 차가 세대 차이 느끼게 하는 가장 큰 요인
윗세대의 칼정장(왼쪽)과 아랫세대의 캐주얼 데이 패션. [게티이미지]

윗세대의 칼정장(왼쪽)과 아랫세대의 캐주얼 데이 패션. [게티이미지]

#1. 대기업에 25년째 근무 중인 본부장 A씨는 “안녕하십니까!” 하고 꾸벅 인사하는 막내 사원 B씨를 보고 눈살을 찌푸린다. 아무리 ‘캐주얼 데이’라지만 너덜너덜한 청바지에 ‘쓰레빠’라니, ‘기본은 지켜야지, 저런 복장으로 일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다. B씨의 옷차림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과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여기던 팀장 C씨는 본부장이 거슬려 하니 고민 끝에 B씨를 불러 단속한다. “아무리 캐주얼 데이라도 지나치게 자유로운 복장은 눈치껏 피합시다!” 팀장의 주문을 B씨는 납득하기 어렵다. ‘친구들은 찢청(찢어진 청바지)에 샌들을 신고 회사에 잘만 다니는데…. 차라리 명확한 기준을 알려주지….’

아랫세대 둘 중 하나는 윗세대의 당연함에 ‘비공’

국내 많은 기업에서 ‘캐주얼 데이’를 도입하며 회사 복장 규정에 변화가 일고 있다. 캐주얼 데이는 ‘칼정장(다 갖춰 입은 정장)’ 대신 캐주얼 의상을 착용함으로써 편하고 자유로운 업무 환경을 조성해 일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진짜 편한 옷차림이 가능한 분위기가 정착된 회사는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가 최근 발표한 ‘직장 내 세대갈등과 기업문화 종합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복장 등에 관한 회사의 행동지침이나 규칙에 공감한다’는 항목에 40대는 69%, 50대는 81.2%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20대와 30대는 절반 수준인 53.9%, 55.8%만 긍정했다. 또한 ‘출근시간보다 일찍 회사에 도착해 업무 준비를 마쳐야 한다’는 항목에 ‘그렇다’고 답한 40대와 50대는 각각 61.8%, 75.8%를 기록했지만 2030세대의 경우는 40%대에 그쳤다. 윗세대에게 당연한 것을 아랫세대 두 명 중 한 명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사내 행동규범에 대한 인식. [자료 제공=대한상공회의소]

사내 행동규범에 대한 인식. [자료 제공=대한상공회의소]

특히 20대는 회사 내에서 세대 차이를 가장 크게 느끼는 순간으로 ‘출·퇴근 시간이나 복장 등 직장생활 규칙에 대한 인식이 다를 때’를 첫손에 꼽았다. 이 보고서는 국내 30개 대기업 및 중견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약 1만3천명에 대한 실태조사를 기초로 세대별 심층 면접을 거쳐 작성됐다. 

세대별 심층 인터뷰에서도 세대 간 생각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4050세대 그룹은 “옷차림 하나 못 챙기는데 일인들 꼼꼼할까?”, “9시 출근은 9시까지 오라는 게 아니라 9시에 업무를 시작하라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2030세대는 “단정한 복장의 기준이 뭔가? 솔직히 리더 기준에 거슬리는 것뿐…. 잡스도 청바지 입고 일 잘했는데 그건 왜 문제삼지 않나?”, “30분 일찍 출근하면 30분 일찍 퇴근해도 되나?”라고 꼬집었다.



소속감과 적응 우선vs. 만족감과 빠른 성장 중시

직장생활 규칙 다음으로 세대 차이를 가장 크게 느끼게 하는 요인은 ‘업무 방식’(전체 응답자의 29.6%)으로 조사됐다. 세대별 심층 인터뷰에서 한 20대 사원은 “요즘은 예전 같은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져 10년 후 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빨리 성장해 남든, 나가든, 내보내지든 살아갈 수 있게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데 비전 없는 ‘잡일’만 맡긴다”고 불평했다. 반면 한 50대 간부들은 “개인이 아닌 체계적 조직의 일원으로서 적성보다 적응이 중요한데, 처음엔 의욕이 충만했던 신입이 단순 업무에 불만을 품고 입사 2년 만에 퇴사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대한상의가 이번 실태조사를 토대로 펴낸 ‘Why Book 2. 세대갈등 편’에 따르면 윗세대는 조직에 대한 소속감과 상사에 대한 충성을 중시하는 반면 아랫세대는 개인의 만족감과 일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겼다. 또한 아랫세대는 개인의 빠른 성장을 바라지만 윗세대는 조직의 체계와 순서를 먼저 고려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업무 열의와 만족도. [자료 제공=대한상공회의소]

업무 열의와 만족도. [자료 제공=대한상공회의소]

대한상의의 실태 조사에서 ‘조직이 부여한 일이라면 묵묵히 수행해야 한다’고 답한 2030세대는 20.9%였다. ‘단순·반복 업무도 기꺼이 수행할 수 있다’는 2030세대 역시 21.6%에 그쳤다. 아랫세대 10명 중 2명만이 주어진 업무를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수행하는 셈이다. 

또한 ‘일을 잘하고 싶다’, ‘일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2030세대는 90%를 넘었지만 ‘일에서 재미나 성취감을 느낀다’는 응답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성장에 목마른 아랫세대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설명을 통해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소통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직장의 리더가 업무 기여도를 설명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31.9%에 머물렀다.

프로스포츠구단 같은 회사로의 체질 개선 ‘필수’

‘리더들이 업무 시작 시점에 추진 방향과 예상 결과물을 명확하게 지시하는가’라는 질문에는 20대의 40.7%, 30대의 31%만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40대의 경우에도 ‘그렇다’고 답한 이는 37.7%에 불과했다. ‘조직의 업무 관행이 합리적인가’라는 물음에는 모든 세대에서 50%를 밑도는 긍정 응답률을 보였다. ‘리더가 상대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응답률도 전 세대에 걸쳐 절반을 넘지 못했다.

업무방식의 체계성에 대한 인식. [자료 제공=대한상공회의소]

업무방식의 체계성에 대한 인식. [자료 제공=대한상공회의소]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대한상의는 ‘윗세대는 두루뭉술하게 일을 가르치는 관행 속에서 직접 길을 찾아낸 지도(Map) 세대여서 자기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정답’을 지시했다고 생각한다. 반면 아랫세대는 합리적으로 명확한 지시를 바라는 ‘내비게이션 세대’이기에 현실감이 떨어지는 설명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직장 내 세대 갈등을 심화하는 근본 원인은 낮은 조직 경쟁력에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직장인들은 조직 경쟁력을 측정하는 지표인 합리성(100점 만점에 44점), 역동성(44점), 공정성(24점), 개방성(20점), 자율성(39점)을 모두 낮게 평가했다. 세대별 편차도 크지 않았다.

모든 세대가 바라는 가장 좋은 직장은 일하기 좋으면서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게티이미지]

모든 세대가 바라는 가장 좋은 직장은 일하기 좋으면서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게티이미지]

대한상의 보고서는 ‘윗세대와 아랫세대가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익숙함을 당연함으로 강요하는 조직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세대 갈등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사내 규범에 대한 생각 차이를 세대차이로 만들지 않으려면 암묵적 규범을 명시적 기준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구성원 간 소통과 합의로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세대 갈등을 넘어서려면 피상적인 리더십 교육이 아니라 조직의 체질을 ‘가족 같은 회사’에서 ‘프로스포츠구단 같은 회사’로 개선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프로팀의 운영 공식인 ‘선수가 팀을 위해 뛸 때, 팀은 선수가 원하는 것을 준다’는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박준 대한상의 기업문화팀장은 “조직의 지향점을 ‘프로팀’처럼 하면 리더는 프로팀 코치와 같은 역량을 갖추려 할 것이고, 팔로워는 프로 선수처럼 팀에 공헌해 인정받으려 할 것”이라며 “결국 일하기 좋으면서도 경쟁력 있는 조직이야말로 모든 세대가 바라는 좋은 직장”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1235호 (p56~58)

김지영 기자 k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