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77

2019.02.22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케이팝과 또 다른 변방의 사운드를 발견하다

신현준의 ‘변방의 사운드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9-02-22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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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 밴드 ‘Sheila on 7’ (왼쪽) 베트남 밴드 ‘9lawm’ [위키피디아 커먼스, facebook@9lawmband]

    인도네시아 밴드 ‘Sheila on 7’ (왼쪽) 베트남 밴드 ‘9lawm’ [위키피디아 커먼스, facebook@9lawmband]

    3월 3일까지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사)에선 ‘커피사회’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 근대를 상징하는 옛 서울역사를 배경으로, 역시 한국 근대와 함께하는 커피를 주제로 여러 작품이 전시중이다. 현 서울을 대표하는 로스터리와 카페도 참가해 맛있는 커피를 선보이고 다양한 맛과 향을 뿜어낸다. 

    ‘커피사회’는 또한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을 기획했으니, ‘리퀘스트’라는 부스였다. 커피 하면 다방이었고, 다방 중엔 음악다방이 있었다.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으며, 1980년대 중반까지 시내 곳곳에 남아 있었다. 희미한 기억으로 음악다방의 풍경은 이랬다. DJ 부스 안쪽에는 음반이 빼곡히 꽂혀 있고, DJ는 인기곡이나 신청곡을 틀어줬다. 손님 중에는 간단한 사연과 자신의 이름을 신청곡과 함께 적어내는 이도 있었다. DJ는 그 사연을 읽어줬다. 꽤나 낭랑한 목소리였다. 느끼한 목소리도 있었다. 

    음악다방은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음악감상실에 자리를 내줬다. ‘Video Kill the Radio Star’라고, 원래 청각은 시각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리퀘스트’는 음악다방을 기억하는 세대와 들어보기만 했을 세대에게 그 공간을 체험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DJ 각각 두 명씩 자신이 준비해온 노래를 틀어주고 관람객은 부스 안에 앉아 오로지 음악 듣기에만 집중하는 것이었다. ‘전파 없는 라디오’와 같았다. 작가 김연수, 영화감독 김태용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가 일일DJ로 참여했다. 물론 가장 많은 직업군은 음악인이었다. 옛날 심야방송이 그랬던 것처럼 선곡과 선곡 사이에 시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고, 자신이 존경하는 뮤지션의 일대기를 읊는 이도 있었다.

    ‘커피사회’의 일일DJ 체험

    [사진 제공 · 채륜]

    [사진 제공 · 채륜]

    나도 이 프로그램의 일일DJ를 맡았다. 시를 읽기엔 영 목소리에 자신이 없었고, 사연을 소개하기엔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고심 끝에 음악으로 승부하기로 했다. 전시 테마에 걸맞은, 즉 커피 생산지와 주요 소비국의 음악으로 두 시간을 채웠다. 중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음악 말이다. 



    중남미와 아프리카는 비교적 쉽다. 보사노바, 삼바, 살사, 룸바처럼 귀에 익숙한 리듬이 중남미를 대표한다면 아프리카는 아예 서구음악의 근원적 리듬으로 이뤄져 있다. 아프리카 전통 리듬이 거기에 바탕을 뒀지만 미국에서 발달한 솔이나 디스코를 만난다면? 말 그대로 ‘트랜스’가 된다. ‘뿅간다’는 말이다. 중남미와 아프리카는, 따라서 기존 우리의 관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평생 국악이나 클래식만 듣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면 현대 한국 대중의 정서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소리와 리듬이다. 

    문제는 동남아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의 커피산지는 우리에게 오히려 친숙한 지역이다. 여행도 많이 간다. 그 나라 출신의 노동자들이 한국의 산업 생태계에서 많은 부분을 책임진다. 그런데 문화 측면에서의 친숙함은 때로는 등잔 밑과 같이 어둡다. ‘친숙하지만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라면 어둠은 한결 짙어진다. 적잖은 사람이 방콕을 비롯해 태국 여러 지역으로 여행을 간다.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같은 관광지를 찾는다. 

    그런데 정작 그 나라의 음악이 어떤지를 배워 오는 경우가 있나. 케이팝(K-pop)이 흘러나오면 신기해하고, 케이팝이 인기 있다는 사실에 마치 영국 런던에서 삼성 광고판을 본 것처럼 느끼기 십상이다. 어디선가 접했던 그 나라의 전통음악을 떠올리거나, 관광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흘러간 서구 팝 정도만 인식하는 경우도 많을 테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리퀘스트’를 위해 음악을 고르던 중 그 나라 ‘팝’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열심히 인터넷을 뒤졌다. 애플뮤직과 스포티파이에 감사한 순간이었다. 감사의 결과는 놀라움이었다. 현지 젊은 세대가 즐겨 듣는 음악이 의외로 세련되고 모던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긴 소셜미디어 시대에 아날로그 시절의 문화 시차가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도 순진한 노릇이다. 그러니까 동시대 영미권 팝·록의 직접적 영향 아래 있되 현지의 축적된 정서가 느껴지는 음악이 충분히 존재하는 것이다.

    동남아 음악에 눈뜨다

    태국 듀오 ‘Scrubb’ [shutterstock]

    태국 듀오 ‘Scrubb’ [shutterstock]

    하노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9lawm, 자카르타의 인기 밴드 Sheila on 7 팀을 나는 어렵지 않게 찾아냈고 소개할 수 있었다. 1세계, 2세계, 3세계 하는 구시대적 구분법뿐 아니라 동시대 한국 대중에게도 ‘문화적 주변부’ 취급을 받는 국가의 음악 발전사가 궁금해졌다. 한국 음악사, 팝 음악사, 심지어 일본 음악사까지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알고 있었으나 정작 아시아 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알고자 하는 생각도 없었던 게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가장 많이 여행을 다닌 지역임에도 말이다.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가 엮고 아시아 여러 나라의 음악 연구자가 집필한 ‘변방의 사운드’는 한중일, 태국과 베트남, 캄보디아 등 아시아권 음악이 어떻게 국가별로 발전해왔는지를 알 수 있는 드문 책이다. 이른바 ‘월드 뮤직’이라는 관점에서 각 나라의 전통음악을 소개하는 자료들은 띄엄띄엄 존재해왔다. 한국 대중음악 역사서는 많고 일본 대중음악 개론서도 그럭저럭 있다. 하지만 그 외 아시아 국가의 대중음악을 다룬, 그것도 각 나라의 필자들이 모여서 쓴 책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한다. 

    기록의 나라 일본에조차 없는 이유는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근대 이후 일본의 오랜 집단무의식의 결과가 아닐까 짐작한다. 음악을 통한 사회의 미시사를 읽는 기분으로 아시아 여행을 떠나본다. 제2차 세계대전, 특히 태평양전쟁과 6·25전쟁, 베트남전쟁 등 굵직굵직한 역사적 비극이 어떻게 문화를 흔들고 섞었는지를 흥미롭게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교류했고, 미군부대를 통해 전파된 재즈와 블루스가 전통의 무의식에 녹아든 결과물들을 확인한다. 공통의 씨줄과 차이의 날줄이 만나 지어지는 음악의 직물을 느끼게 된다. 

    해당 국가의 음악 연구가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하게 되는 건 덤이다. 글로벌과 로컬이 합쳐져 글로컬이 된다는 디지털 시대의 문화적 특성은, 어쩌면 20세기 중반 이래 아시아 음악의 기저에 흐르던 잔물결이었던 것 같다. ‘변방의 사운드’는 같은 수원지에서 그 지류가 어떻게 흘렀는지를 알게 해주는 표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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