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9

2015.10.19

매혹의 청정함을 마신다

뉴질랜드 와인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5-10-19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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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혹의 청정함을 마신다

    뉴질랜드 센트럴 오타고의 깨끗한 자연환경과 그 속에서 지속가능 프로그램에 따라 운영되는 포도밭. 뉴질랜드 말버러산 소비뇽 블랑 와인 클라우디 베이와 센트럴 오타고산 피노 누아르 와인 마투아(왼쪽부터).

    더글러스 케네디가 쓴 소설 ‘빅 픽처’에는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와인 클라우디 베이(Cloudy Bay)가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한다. 이 와인은 소설 속에서 아내의 불륜을 드러낼 뿐 아니라 연적을 살해하는 도구로도 쓰인다. 소설이나 영화에는 인기 있는 와인이 등장할 때가 많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와인은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상큼한 맛으로 전 세계 와인 애호가, 특히 여성에게 인기가 높다. 뉴질랜드 와인이 이런 영광을 얻기까지는 4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뉴질랜드는 금주 문화가 유난히 발달한 나라였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오후 6시면 술집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5시에 퇴근해 냅다 술집으로 뛰어간다 해서 ‘Six o’clock swill’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그런 뉴질랜드가 와인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60년대 후반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이었다. 육류와 유제품의 영국 수출이 막히자, 와인을 돌파구로 찾은 것이다.

    뉴질랜드는 자신들의 청정한 이미지를 내걸고 ’친환경‘을 와인의 경쟁력으로 삼았다. 가장 가까운 대륙과 1600km나 떨어진 남태평양 외딴섬, 핵발전소가 없고 에너지의 70%를 자연에서 얻는 곳, 인구는 450만 명인데 양은 3900만 마리나 되는 나라….

    실제 뉴질랜드 포도밭의 94%가 지속가능 프로그램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화학비료 대신 피복작물을 길러 땅에 양분을 공급하고, 제초제를 쓰지 않는 대신 가축에게 잡초를 뜯어 먹게 한다. 와이너리들은 태양열과 지열을 최대한 활용하고, 부산물도 재활용과 재사용을 극대화한다. 와인병과 레이블도 가급적 재활용품을 사용한다. 자연 보전이야말로 와인의 품질과 직결된다고 믿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매혹의 청정함을 마신다

    뉴질랜드 포도밭에서는 제초제를 쓰지 않는 대신 양들에게 잡초를 뜯어 먹게 한다.

    뉴질랜드 와인을 세계무대에 우뚝 서게 만든 포도 품종은 소비뇽 블랑과 피노 누아르(Pinot Noir)다. 소비뇽 블랑은 남섬 북부에 위치한 말버러(Marlborough)에서 주로 생산한다. 와인잔 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은 허브향과 풋고추향, 거기에 절묘하게 어우러진 열대과일향은 평소 화이트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단숨에 매혹될 정도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와인을 부추전이나 채소 튀김을 안주 삼아 마셔보자. 와인의 푸릇한 향이 채소 요리와 절묘한 궁합을 이룰 뿐 아니라, 상큼한 산도가 전과 튀김의 느끼함도 없애준다.



    피노 누아르는 센트럴 오타고(Central Otago)산이 주목할 만하다. 센트럴 오타고는 미국 오리건(Oregon)과 함께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의 아성에 도전하는 명품 피노 누아르 산지로 떠오르는 곳이다. 뉴질랜드는 나라 전체가 해양성기후지만, 남섬 최남단 와인 산지인 센트럴 오타고만은 일교차가 큰 대륙성기후여서 피노 누아르를 기르기에 최적지로 평가받는다. 그래서인지 이곳 피노 누아르 와인은 체리, 자두 같은 붉은 과일과 후추의 매콤함이 어울려 향미가 매력적이고 구조감도 탄탄하다.

    뉴질랜드 와인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 아무리 싸도 병당 3만 원 정도는 한다. 하지만 뉴질랜드 와인이 주는 ‘순수함’을 맛볼 때면 그 값이 결코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뉴질랜드가 지금처럼 깨끗한 자연을 담은 와인을 생산하는 한 그 가격은 충분히 정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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