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3

2018.04.11

법통팔달

판사의 의견 제시는 공정한 사회 위해 필요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

  • 입력2018-04-10 11: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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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동아DB]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동아DB]

    오래전부터 한국 사법부에는 ‘판사는 판결로만 말해야 한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왔다. 누구도 이에 거슬러 자신의 의견을 함부로 말했다가는 ‘판사 부적격자’로 낙인찍혔다. 나아가 법관 재임명 탈락으로 법원에서 쫓겨나거나 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판사는 판결로만 말해야 한다는 명제는 타당성을 갖기 어렵다. 헌법상 언론의 자유에 비춰 이는 성립할 수 없는 논리다. 또 이 말 자체가 과도하게 관료화된 조직으로 뒤뚱거려온 사법부의 실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판사였을 당시 심지어 ‘하급심 법원의 판사가 감히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무엄한 예가 있다’고 분개하는 투의 글이 지면에 실리기도 했다. 판결은 평석 형태로 비판받고 여기서 좀 더 나은 판결을 향한 기초가 생기는 셈인데, 이런 구조마저 백안시하는 태도는 곧 겹겹이 닫힌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왜 판사가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합리적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타당한지 실증된 예를 하나 들어보자. 박근혜 정부의 몰락 후 적폐청산 과정에서 검찰이 청구한 몇 개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일을 두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물의가 일었다. 

    형사소송법에서는 피의자가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등 세 가지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구속영장을 발부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조항의 해석을 둘러싸고 지금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법원의 실무례는 큰 혼선을 빚어왔다. 

    생각해보자. 절도, 폭력 같은 빈곤층 범죄는 주거 부정이거나 도주 엄려가 있는 등 대부분 구속 요건을 충족한다. 반면 부유층 범죄는 사안이 아무리 중대해도 그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 염려가 없어 구속 요건에서 거의 벗어난다. 그리고 증거 인멸 염려 측면에서 보면 유죄 증거가 명백할수록 이미 증거가 확보돼 있으니 구속할 필요가 없고, 유죄 증거가 약할수록 증거 보강을 위해 구속해야 하는 모순에 빠진다. 



    그래서 형사소송법 조항을 좀 더 목적론적으로 해석해, 구속 요건을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영장청구 사실과 자연스럽게 직결되는 중대한 범죄사실과 관련된 도주 및 증거 인멸 염려, 공동정범의 도주 및 증거 인멸 염려까지 아울러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현직 부장판사의 탁견이었다. 이것이 왜 탁견이냐 하면, 그 형사소송법 조항이 만들어져 시행된 오랜 세월 동안 어느 누구도 일견 모순된 이 조문을 합리적으로 해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쭉날쭉한 구속영장 발부 기준을 고치려 하는 시도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 판사가 제시한 기준은 두고두고 우리 법원에서 참고해야 할 만큼 귀중하다. 이런 기준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그 판사를 비난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과거부터 사법 기능에 관해 사법소극주의(Judicial Restraint)와 사법적극주의(Judicial Activism)의 대립이 있어왔다. 판사의 의견 제시는 사법소극주의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법부가 처한 난제의 해결이나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면 고답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비난의 그물을 그에게 던져서는 안 될 터다. 그 판사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무죄판결을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판결이라고 비판했다는 이유로 중징계처분까지 받은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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