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8

2017.12.20

국제

북한 ICBM 기술 세계 3, 4위 수준

화성-15형 시험발사 성공, 옛 소련 과학자들 도움 커

  • 입력2017-12-19 14: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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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거리 미사일은 최소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치·군사적 무기다. 사거리 1만~1만3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한 국가는 그 위상과 지위가 달라진다. 탄두에 탑재하는 무기가 핵 등 대량살상무기(WMD)일 경우 의미는 더욱 엄중해진다. 

    현재 핵보유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인정하는 5개국이다. 또 미국이 용인하고 국제사회가 묵인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사실상 핵을 보유한 3개국 등 총 8개국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 핵탄두 탑재 ICBM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이스라엘 등 5개국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핵탄두 탑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만 갖고 있고, 파키스탄은 핵탄두 탑재 ICBM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

    국제 미사일 전문가들, 화성-15형 높게 평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바퀴 18개의 9축 이동식 발사차량에 탑재된 화성-15형을 바라보고 있다.(왼쪽) 옛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SS-19 발사 모습. [KCNA, 위키피디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바퀴 18개의 9축 이동식 발사차량에 탑재된 화성-15형을 바라보고 있다.(왼쪽) 옛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SS-19 발사 모습. [KCNA, 위키피디아]

    북한이 11월 29일 시험발사한 ICBM인 화성-15형을 두고 국제사회에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판도를 바꿀 수단)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화성-15형 시험발사 성공 이후 북한은 ‘정부 성명’을 통해 “화성-15형 무기체계는 초대형 중량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로켓으로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12월 9일 ‘혁명의 성지’라 부르는 백두산에 올라 화성-15형 시험발사에 따른 국가핵무력 완성을 부각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국가핵무력 완성 주장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화성-15형이라는 ICBM은 상당히 위협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화성-15형 시험발사 이후 초강경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과 전쟁 가능성이 매일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으며,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의회가 선제타격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 미사일 전문가들이 화성-15형의 성능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1단 로켓에 엔진 2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고각발사된 화성-15형의 최대 고도는 4475km, 비행거리는 950km를 기록했다. 반면 7월 두 차례 시험발사된 화성-14형의 최대 고도는 3724.9km, 비행거리는 998km였다. 화성-14형의 1단 로켓에는 엔진이 하나였다. 화성-15형 엔진이 화성-14형에 달린 이른바 ‘백두산 엔진’이라면 1단 로켓의 추력(밀어 올리는 힘)은 화성-14형에 비해 2배나 커졌다고 분석할 수 있다. 백두산 엔진의 추력은 80tf(톤포스)이다. 엔진 추력이 커지면 더 무거운 탄두를 더 멀리 운반할 수 있다. 데이비드 슈멀러 미국 제임스마틴 핵무기확산방지 연구센터 연구원은 “화성-15형이 보조엔진 없이 2개 엔진을 탑재했다”며 “이전까지 북한에서 볼 수 없던 큰 변화”라고 지적했다. 슈멀러 연구원은 “화성-14형은 보조엔진 4〜6개를 달아 방향을 조정했지만, 화성-15형은 주 엔진 자체의 각도를 조정해 방향을 조정하는 이른바 짐벌(gimbal)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분석했다. 짐벌 시스템은 엔진 2개가 움직이면서 방향을 조정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국제 미사일 전문가들은 화성-15형을 정상적으로 발사할 경우 최대 사거리가 1만3000km가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화성-14형의 최대 사거리 1만여km보다 3000여km가 늘어난 것이다. 조너선 맥도웰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 연구원은 “북한은 화성-15형 시험발사를 통해 미국 본토 어디에든 닿을 수 있는 역량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화성-15형의 사거리가 늘어난 것은 길이가 21m, 직경이 2m로 화성-14형에 비해 2m, 30cm가량 각각 커졌기 때문이다. 국제 미사일 전문가들은 화성-15형은 화성-14형과는 다른 신형 ICBM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미국 국방부도 화성-15형에 KN-22라는 암호명을 부여했다. 북한의 주장처럼 화성-15형이 신형 ICBM임을 인정한 것이다. 화성-14형은 KN-20으로 불린다.



    “화성-15형, 미·중 보유한 미사일급”

    북한 조선중앙TV는 11월 29일 “김정은 동지께서 28일 새로 개발한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5형’ 시험발사를 단행할 데 대하여 친필명령하셨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서명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북한 조선중앙TV]

    북한 조선중앙TV는 11월 29일 “김정은 동지께서 28일 새로 개발한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5형’ 시험발사를 단행할 데 대하여 친필명령하셨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서명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북한 조선중앙TV]

    국제 미사일 전문가들이 의문을 갖는 것은 북한이 화성-14형 시험발사 이후 75일 만에 어떻게 훨씬 발전된 화성-15형을 발사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마커스 실러 독일 ST애널리틱스 미사일 전문 연구원은 옛 소련 과학자들의 도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실러 연구원은 “북한이 완전히 다른 종류의 미사일을 한 번에 성공한 것은 매우 놀랄 만하다”면서 “소련식 엔진은 2개의 로켓 연소실, 2개의 노즐을 가졌다는 점에서 볼 때 외부의 지원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맥도웰 연구원도 “화성-15형은 옛 소련의 미사일과 매우 비슷하며 러시아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북한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한 뒤 로켓 엔진, 동체, 연료, 송수신, 탄두 등 각 분야 전문가인 러시아 군사과학자 20여 명을 거액의 돈을 주겠다고 약속해 ‘영입’했다고 한다. 러시아 과학자들은 북한의 166(로켓공학)과 628(로켓엔진)연구소에 소속돼 연구를 해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00년 방북했을 때 김정일에게 자국 과학자들을 러시아로 데려가겠다고 했지만, 최고 대우를 받던 러시아 과학자는 대부분 북한에 남았다고 한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WP)’는 러시아 정보당국이 1992년 10월 15일 모스크바 공항에서 북한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던 미사일 과학자와 가족 60명을 대거 체포한 사실이 있으며, 90년대 상당수 러시아 미사일 과학자가 수십 년간 축적된 미사일 기술과 부품, 청사진 등을 지닌 채 북한으로 들어갔다고 보도한 바 있다. WP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ICBM 개발에 성공한 데는 러시아 기술 및 과학자들의 도움이 컸다면서 북한의 로켓 엔진은 60년대 옛 소련의 RD-250 엔진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화성-15형은 외형상으로는 소련 ICBM인 SS-19와 흡사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SS-19는 냉전시대에 개발돼 75년 실전 배치된 2단 액체연료 미사일로 사거리가 1만km에 달한다. 러시아는 현재 30여 기의 SS-19를 보유하고 있다. 

    화성-15형이 SS-19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동식 발사차량(TEL)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화성-14형의 이동식 발사차량은 중국에서 도입한 바퀴 16개가 달린 8축(軸) 차량이었다. 북한은 여기에 바퀴 2개를 더 달아 18개인 9축 차량을 만들어 화성-15형을 탑재했다. 러시아나 중국의 이동식 발사차량도 바퀴가 16개를 넘는 것이 없다. 따라서 북한이 세계 유일의 바퀴 18개가 달린 이동식 발사차량을 개발한 셈이다. 

    실러 연구원은 “북한의 ICBM 실력은 전 세계 3위나 4위라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제프리 루이스 미국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비확산센터 연구원은 “북한의 화성-15형은 미국, 중국, 옛 소련이 보유한 미사일급”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초강경 대응에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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