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8

2017.12.20

커버스토리

오늘 캐스팅은 ‘꽝’일까, ‘대박’일까

‘공연 덕후’ 기자의 아이돌 뮤지컬 복기

  • 입력2017-12-19 14: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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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매력적인 여인 스칼릿 오하라 역을 연기한 소녀시대 출신의 서현(가운데). [뉴스1]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매력적인 여인 스칼릿 오하라 역을 연기한 소녀시대 출신의 서현(가운데). [뉴스1]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뮤지컬을 관람하려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 그날의 캐스팅이다. 원캐스트가 많은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와 달리 트리플, 쿼드러플, 심지어 퀸터플 캐스팅까지 이뤄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배역을 어떤 배우가 맡느냐에 따라 공연 평이 달라진다.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마저 바꿔놓는 게 캐스팅의 위력인 만큼 한 번 관람하더라도 가장 좋은 조합으로 보고자 관객들은 공연 오픈 수개월 전부터 피 튀기는 예매 전쟁인 ‘피케팅’에 참여하는 걸 마다치 않는다. 

    그리고 이런 캐스팅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아이돌이다. 이제는 아이돌보다 뮤지컬배우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옥주현이나 바다 외에도, 꾸준히 뮤지컬 무대에 오른 JYJ의 김준수, 슈퍼주니어의 규현 등은 최소한 실망케 하지는 않는, ‘믿고 볼 수 있는 배우’ 축에 든다. 그러나 일부 아이돌의 공연은 함량 미달은 물론이고 기대했던 티켓 판매량조차 저조할 때가 있다. 

    이번에 뮤지컬과 아이돌에 대해 취재하며 그동안 봐온 수많은 공연을 복기했다.주로 뮤지컬 배우들의 공연을 관람했지만 종종 아이돌이 나오는 공연을 일부러 골라보기도 했다. 뮤지컬 배우와는 느낌이 얼마나 다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택일’한 날에 맞춰 공연장에 들어서면 괜스레 두근거렸다. 팬심 때문이 아니다. 오늘 공연이 ‘꽝’인지 ‘대박’인지 궁금해서다.

    노래 가사 절반을 까먹은 아이돌도

    ‘꽝’은 아이돌이 출연한 뮤지컬에서 종종 출몰했다. 대체로 꽝은 두 종류다. 바쁜 투어나 콘서트 일정 탓에 제대로 연습하지 못한 아이돌이 기량을 뽐내지 못하고 실수를 연발하거나, 뮤지컬 공연장을 콘서트장으로 착각한 일부 몰지각한 팬들이 각종 진상짓을 벌이는 경우다. 공교롭게 이 둘이 섞이면 그날은 정말 ‘꽝’이다. 

    한 번은 주요 배역을 맡은 아이돌 A가 가사를 까먹고 노래의 절반을 ‘으으음~’이라는 허밍으로 처리해 주요 넘버를 날린 적이 있다. 또 한 번은 등장 순서를 잊고 무대에 나오지 않은 아이돌 B 때문에 상대 배우가 애드리브로 시간을 끌기도 했다. 미소가 예쁘다며 팬덤에서 인기를 끈 아이돌 C는 무대에서 실수를 웃음으로 때웠다. 아이돌이 등장할 때마다 “귀여워!” “잘생겼어!”를 외쳐대던 관객 때문에 집중이 안 될 때도 있었다. 사진을 찍지 말라고 어셔가 당부하는데도 공연 중에 아이돌을 귀신같이 찍는 관객의 ‘몰카’를 보면 이 상황을 불쾌하게 여기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모든 공연이 꽝은 아니었다. 실수는 베테랑 배우도 하게 마련이다. 오히려 아이돌이 기존 배우보다 신선한 느낌을 준 작품도 있었다. 때때로 인기가요 무대보다 뮤지컬 무대가 제 옷처럼 더 잘 어울리는 아이돌도 있었다. 그런 아이돌을 만날 때면 다음에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 궁금해지곤 했다.

    아이돌이 좋은 뮤지컬 배우 되려면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뮤지컬 배우 류정한과 드라큘라 역에 더블 캐스팅돼 색다른 매력을 선보인 JYJ의 김준수. [뉴스1]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뮤지컬 배우 류정한과 드라큘라 역에 더블 캐스팅돼 색다른 매력을 선보인 JYJ의 김준수. [뉴스1]

    소녀시대 출신의 아이돌 서현(서주현)이‘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릿 오하라역을 맡았을 때 일이다. ‘해를 품은 달’로 뮤지컬에 데뷔했을 때는 생기 없는 꽃처럼 예쁘기만 한 모습에 아쉬움이 다소 있었다. 

    방송에서 보여주던 숫기 없는 모습 때문에 이번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의구심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발전한 연기력과 가창력을 선보이며 생존을 위해서는 사랑도 이용하는 강렬한 여성상을 위화감 없이 소화해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날 인터미션에서는 서현이 뽐낸 ‘의외의 가창력’과 ‘의외의 연기력’을 칭찬하는 관객이 많았다. 뮤지컬에서 ‘인생 연기’를 보여준 서현은 이후 MBC 50부작 드라마 ‘도둑놈, 도둑님’에 출연해 배우로도 호평받았다. 

    JYJ의 김준수는 특유의 음색과 여려 보이는 얼굴 때문에 ‘데스노트’ ‘드라큘라’ ‘엘리자벳’ 등의 작품에서 만화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인물로 등장할 때 매력이 배가되는 배우다. 그의 공연은 여느 뮤지컬 배우들의마지막 공연, 일명 ‘막공’처럼 팬들이 숨 두번 쉴 것도 한 번에 몰아쉬면서 집중하기에 작품을 감상할 때는 오히려 아무런 방해물이 없어 만족스러웠다. 팬들이 객석에서 몰카를 발견하면 어셔에게 달려가 신고하고, 조금이라도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면 여지없이 인터미션 때 지적하는 모습을 보면 ‘표 구하기만 쉽다면야 김준수의 공연을 보는 게 심신 건강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눈에 오페라글라스와 망원경을 장착한 채 그가 움직이는 대로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관객의 모습은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보였다. 

    좋은 배우의 등장은 관객에게도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들이 ‘완벽한 샘플’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뮤지컬은 아이돌의 놀이터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장이고 또 다른 예술 장르다. 

    진지하게 작품에 임하는 이들의 모습을 후배들이 배웠으면 한다. 적어도 캐스팅 목록에 있을 때 ‘얘만큼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꽝 카드’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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