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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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伊’ 의 밀어주는 맛·끌어주는 맛

  • 김재준/ 국민대 교수 artjj@freechal.com

    입력2003-07-16 18: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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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伊’ 의 밀어주는 맛·끌어주는 맛

    얼음이 깔린 작은 볼에 담아 내는 ‘쁘띠 시즌즈’의 육회는 생고기에 대한 거부감을 잊게 만들 만큼 예쁘고 맛있다(왼쪽). ‘쁘띠 시즌즈’는 홀 중앙에 젠 스타일의 연못을 만드는 등 신비로운 동양의 분위기로 꾸몄다.

    여행을 떠날 때 항상 고민하게 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자는 것과 먹는 것이다. 어느 호텔에서 잘까,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하지만 이는 즐거운 고민이기도 하다.

    나는 극단에서 극단을 오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1990년대 초, 4박5일 일정에 호텔비로 400달러를 쓸 계획을 잡고 떠난 여행에서 나는 3일은 하룻밤에 50달러 정도 하는 여행자용 실비 호텔과 YMCA에서 운영하는 업소(대부분 아주 저렴하다. 화장실도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정도다)에서 묵고, 마지막 하루는 숙박비가 200달러 이상이나 하는 그 도시에서 가장 특색 있고 좋은 호텔에 투숙했다. 음식도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에서부터 반드시 예약해야만 하는 고급 유명 레스토랑의 음식까지 양극단을 넘나들며 먹었다.

    그 때문에 약간의 문제가 생긴 적도 있다. 고급 레스토랑에 예약하려고 전화했는데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레스토랑 직원이 내게 무슨 호텔에 묵고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아차’ 싶었지만 잠시 망설인 끝에 ‘○○○ YMCA’라고 했더니 수화기 너머로 싸늘한 침묵이 감지됐다. 결국 잘 먹고 오기는 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당당하게 레스토랑에 전화는 했지만 ‘왕자와 거지’의 프린스가 된 비극적 기분이 들었다. 부자라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래서 다음번 출장 때는 고급 호텔에 투숙하는 일정을 고급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일정과 맞췄다.

    유명한 레스토랑을 순례하면서 느낀 점은 음식의 맛이 한결같다는 것이다. 같은 요리를 시키면 언제나 같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자주 가도 언제나 새로운 맛에 대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요리사는 레시피가 아니라 자신의 혀로 음식을 만든다고 한다. 사실 어떤 재료이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같은 시기에 같은 곳에서 잡은 생선도 조금씩은 다르게 마련이다. 따라서 소금과 허브의 양과 종류를 섬세하게 조절해야만 같은 맛을 낼 수가 있다. 레시피만을 따라 해서는 맛이 ‘춤을 추게’ 된다.



    맛의 밸런스를 이해하면 스스로 맛을 창조할 수가 있다. 뉴욕 레스피나스의 그레이 쿤츠는 서구에서 1990년대 퓨전 요리 붐을 선도한 유명한 셰프다. 싱가포르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프랑스 요리에 아시아의 재료들을 도입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요리 평론가 캐민스키와 같이 쓴 ‘맛의 요소(The Elements of Taste)’라는 책을 몇 해 전에 우연히 읽었다. 쿤츠는 맛의 요소를 14개로 분류하고 있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밀어주는 맛(tastes that push)’과 ‘잡아당기는 맛(tastes that pull)’을 구분하는 대목이다. 가령 소금의 짠맛, 설탕의 단맛, 그리고 고추의 매운맛은 요리의 모든 맛들을 전면으로 밀어주면서 맛을 향상시킨다. 반면 오렌지, 와인, 양파, 허브, 계피 등의 맛은 요리 재료의 특정한 맛을 강조하면서 그 맛을 이끌어낸다. 새우에 레몬을 뿌리면 새우 고유의 맛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韓·伊’ 의 밀어주는 맛·끌어주는 맛

    이탈리아 식당 ‘그 안’의 ‘프로슈또와 멜론’. 생햄의 짭조름한 고기 맛을 달콤한 멜론이 아늑하게 감싸준다(왼쪽). 노출 콘크리트와 천장에서 늘어진 조명이 독특한 ‘그안’ 내부.

    이런 원리를 요리사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같은 원리가 동서양 모두에 적용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에는 파르마 생햄과 멜론이 있고, 한국에는 배를 곁들인 쇠고기 육회가 있는 것도 이 덕분일 것이다.

    ‘그 안에 맛있는 이탈리안’(02-6325-6321)은 이탈리아식 ‘프로슈또와 멜론’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보통 ‘그 안’이라고 부르는데 오픈한 지 꽤 된 곳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분위기와 맛을 갖추고 있다.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멋진 건물 안에 있기 때문에 천장에서 길게 내려온 조명 아래서 노출 콘크리트로 된 인테리어를 감상하며 식사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멜론에 감은 프로슈또가 두 쪽 나온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보통 한 조각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두 조각이 나와 똑같은 것이 반복될 때의 느낌도 재미있고 싸우지 않고(?) 나눠 먹을 수 있어 좋다. 요리의 맛은 생햄의 짭조름한 고기 고유의 맛을 멜론의 단맛이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동시에 멜론의 차가운 느낌이 입맛을 상큼하게 정리해준다. 후추를 살짝 뿌린 것이 액센트다.

    한국식 배를 곁들인 육회를 먹으려면 ‘쁘띠 시즌즈’(02-546-6782)에 가면 된다. ‘쁘띠(petit)’는 프랑스어로 ‘작다’라는 뜻의 형용사. 2층에 있는 ‘시즌즈’는 매우 인기 있는 퓨전형 일식집이다. ‘쁘띠 시즌즈’의 인테리어는 한정식 집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외국에서 보게 되는 동양적인 에스닉한 분위기라고 할 수가 있다. 이곳의 코스 요리는 그릇부터 시작해서 요리 하나하나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연출)이 아주 재미있다. 외국 손님과 같이 가면 좋을 것 같다. 판소리하는 선생님을 모시고 갔었는데 아주 즐거워하셨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육회인데 자그마한 접시에 너무나 예쁘게 담겨 나와 한동안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생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들지 않을 만큼 예뻐 누구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육회는 생고기에 단맛을 가미하는 것이 특징인데 소떼른느의 디저트 와인으로 실험을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참고로 쇠고기와 배의 궁합이 그만이라고 한다. 쇠고기를 잴 때 배즙을 사용하는 것은 배에 단백질 분해효소가 있어 단단하고 질긴 고기가 연해지고 맛도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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