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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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단꿈? 딱 1년 만 살아봐라

댄 메이저 감독의 ‘저스트 어 이어’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3-06-03 1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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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혼 단꿈? 딱 1년 만 살아봐라
    “그래요, 저는 마틴을 변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우울한 시인 같은 타입이었죠. 잘생긴 외모에 똑똑하고 냉소적이고 예민한 사람이었어요. 모든 게 너무 흥미진진했고 싸움은 정말 극적이었죠. 내가 꼭 정착시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었죠. (중략)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었어요. 그런데 마틴을 보고 가장 처음으로 든 생각은 ‘결혼하고 싶다’는 거였어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잉그리드는 ‘아주 좋은 집안에서 성장하고, 그림을 굉장히 잘 그리며, 기타로 못하는 연주가 없으나 무대에 오를 배짱은 없던’ 마틴과 사귄 지 1년 되는 날 결혼했다. 하지만 연애 3개월 만에 남자의 여자, 알코올 문제로 싸우기 시작한 그들은 결혼 후에도 다툼과 별거, 재결합을 반복하다 상처투성이인 관계를 끝내기로 한다.

    “되돌아보면 그게 꼭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어요. 그건 열병이었어요. 열병은 사랑과 많이 닮아있죠. 평생 열병을 사랑으로 착각한 적이 몇 번 있어요. (열병과 사랑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시간이에요. 모든 면에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죠. 불리한 상황에 닥쳤을 때의 모습을 봐야 해요. 그건 3개월이나 6개월로는 안 돼요. 1년으로도 부족하죠.”

    미국 뉴멕시코에 사는 올리비아는 20대 후반 힌두교도 수행사원에서 한 미남을 만나 열애에 빠졌고, 연애 1개월 만에 결혼했으나 12년 후 갈라섰다. 올리비아는 “열정과 사랑을 착각하지 마라”고 조언한다.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자 저널리스트인 대이나 애덤 샤피로의 저서 ‘어느 날 우리는 돌아눕기 시작했다’(이영래 옮김, 중앙M·B)에 등장하는 이혼 남녀의 고백이다. 이 책은 이혼 경험이 있는 남녀 26명의 인터뷰를 기록한 것으로, 다양한 사례를 통해 결혼과 사랑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흡사 성격, 취향, 대화, 육아, 외도, 섹스, 폭력 등 부부가 맞닥뜨릴 수 있는 온갖 문제의 ‘경연장’과도 같다.

    영국 영화 ‘저스트 어 이어’(감독 댄 메이저)에 등장하는 커플도 책에서 한 장을 당당히 차지할 만한 이야기를 지녔다. 일단 제목이 확 끌린다. 연애의 단꿈이 끔찍한 악몽으로 변하는 데는 ‘딱 1년(Just a year!)’이면 충분하다니.



    그림 같은 유럽 관광도시를 배경으로 ‘화보’처럼 서 있는 선남선녀 모습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한눈에 반해 서로에게 빠졌던 짧지만 달콤했던 7개월간의 연애를 뒤로하고 두 남녀, 조시(라프 스팰 분)와 냇(로즈 번 분)은 결혼에 골인한다.

    결혼식 올리자마자 악몽 시작

    혼인성사를 맡은 사제가 기침에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 것이 불운의 징조였을까, “행복해 보인다고? 1년 만 살아보라 그래!”라는 하객의 악담이 화근이 된 것일까. 결혼식부터 피로연까지 “내 인생 최고의 2시간 36분”이었다는 남편 조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결혼생활은 악몽이 돼가기 시작한다. 일단 아내 눈에 남편이 갈수록 밉상이 다. 피로연 때 입에 담지 못할 음담패설로 진상을 부린 남편 친구는 시시때때로 말썽이고, 남편은 남편대로 결혼 다음 날부터 ‘카우치 포테이토’(소파에 앉아 감자칩을 먹으며 TV를 시청하는 게으른 사람)로서의 근성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남편 조시는 별 볼일 없는 무명작가이고, 아내 냇은 버젓한 홍보에이전시에서 팀장이다.

    소파에서 곯아떨어진 남편을 뒤로하고 출근한 냇은 어느 날 근사한 클라이언트를 만난다. 잘생긴 외모에 지적이고 세련되며 배려심에 유머감각까지 갖춘 백만장자 가이(사이먼 베이커 분)다. 시원찮은 소설을 구상하며 인터넷에서 ‘야동’(포르노)이나 뒤적이는 남편과는 천양지차인 남자. 게다가 미혼이다. 결혼반지를 슬쩍 빼놓고 가이를 만나는 냇. 일을 핑계로 만남을 이어가며 냇에게 호감을 보이는 가이. 집 밖에 근사한 남자가 있으니 집 안의 ‘찌질한’ 남편이 마음에 들 리 없다. 쓰레기통 비울 생각은 안 하고 꽉꽉 내용물을 눌러담는 행태도 짜증나고, 술만 먹으면 한심한 농담이나 늘어놓으며 저 혼자 방방 뛰는 것도 혐오스럽다.

    아내에게 사랑받지 못하니 조시는 조시대로 바깥으로 나돈다. 그러던 중 조시는 옛 연인이던 클로이(애나 패리스 분)를 다시 만나게 된다. 자선단체에서 일하며 늘 자유롭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클로이는 연애에 실패한 후 옛 남자친구 조시를 만나 그의 다정한 마음씀씀이와 유쾌한 농담, 순수한 배려에 큰 위안을 얻는다. 그렇게 한 남자는 누구에게는 눈뜨고 못 볼 진상이지만, 누구에게는 더없는 ‘진국’이 된다. 그사이엔 ‘결혼제도’가 있다.

    점점 악화하는 결혼생활을 견디다 못 한 조시와 냇은 결국 결혼 9개월 만에 부부상담 클리닉을 찾는다. 그리고 “결혼은 1년을 넘기는 것이 중요하다. 남은 기간 서로에게 헌신해보면 달라질 것”이라는 카운슬러의 말을 따르기로 한다. 과연 조시와 냇은 남은 몇 개월간 단꿈을 회복할 수 있을까.

    신혼 단꿈? 딱 1년 만 살아봐라
    불행한 결혼, 다양한 이유 탐구

    다시 ‘어느 날 우리는 돌아눕기 시작했다’로 돌아가면, 저자는 ‘두 자아의 만남, 섹스의 문제, 의사소통’을 부부관계의 ‘골든트라이앵글’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양한 이혼 사례는 부부가 서로 변하길 바라지만, 시간이 가도 변하는 것은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연애와 결혼생활 초기 상대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구실에 맞춰 ‘연기’하다가 결국은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와 관계의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이 문제 부부 대부분이 겪는 수순이라고. 이상적인 구실 연기에서 실제의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영화에 따르면 ‘1년’이면 충분하다. 그러므로 자아와 섹스, 욕망 등 모든 문제에 대해 상대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라’는 것이 저자가 들려주는 조언 가운데 하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이 불행한 이유는 제각각”이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로맨틱 코미디에 조예가 깊은 영국영화사 워킹타이틀의 매력적인 로맨틱 코미디 ‘저스트 어 이어’와 책 ‘어느 날 우리는 돌아눕기 시작했다’는 불행한 결혼생활의 ‘다양한 이유’를 탐구하는 작품들이다. 무릇 남의 불행에서 배워야 한다. 특히 결혼에 관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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