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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여성, 준비 없는 비혼은 피해야 한다”

[인터뷰] ‘비혼 1세대의 탄생’의 저자 홍재희 작가

  •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40대 여성, 준비 없는 비혼은 피해야 한다”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더는 ‘나 홀로 가구’가 낯설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인 가구는 603만9000가구로 전체 가구 중 29.9%를 차지,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596만2000가구(29.6%)를 앞질렀다. 1인 가구의 증가와 더불어 주목되는 것이 바로 비혼 인구의 증가다. 비혼은 만혼, 이혼, 사별 등과 함께 1인 가구 증가의 직접적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비혼(非婚)’은 결혼을 못 한 미완성 상태라는 사회적 편견이 반영된 ‘미혼(未婚)’ 대신 자발적 선택으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8년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더 이상 결혼이 의무가 아니다. 여기에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56.4%를 기록한 이후 스스로 비혼을 선언하는 이가 늘고 있다. 

대한민국 비혼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최근 출간된 ‘비혼 1세대의 탄생’은 홍재희(49) 작가가 10대에 결혼 제도에 의문을 품은 이후 쉰 살을 바라보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비혼주의자로 살면서 겪고 느낀 바를 담은 ‘비혼 관통기’다. 그는 “결혼 아니면 비혼이라는 생각도 결혼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여성이 한 개인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이 무엇인지 물어야 할 때”라고 말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영화 ‘암사자(들)’(2008), ‘아버지의 이메일’(2014)을 만든 저자는 책에 실린 소개 글에서 자신을 ‘영화감독이자 작가, 프리랜서 예술인으로 다양한 알바를 겸업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자유

- 비혼의 삶을 주제로 책을 쓴 계기는. 

“20대와 30대에 사랑하는 사람과 여러 차례 함께 살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 거듭 헤어졌다. 그리고 마흔이 되던 해 드디어 홀로 섰다. 스스로 선택해 홀로 된 삶이라 후회가 없었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닌, 내가 나일 수 있는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비혼인 내가 지금처럼 불안정한 고용 상태로 늙어서까지 자립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가난할까, 부모 세대가 말하는 결혼을 안 해서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 독신 여성의 삶, 비혼 여성의 삶, 노동하는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청년을 지나 중년을 관통해가는 비혼 여성들이 어떻게 일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결혼이라는 제도 바깥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 대한민국에서 비혼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는 남성에 비해 열악하다. 남녀의 출발점은 비슷하나 중년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사회적 시선도 곱지 않다는 것이다. ‘비혼 여성 노동자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으니 불행도 네 몫이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식이다. 가난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살았음에도 가난하다면 그건 사회 구조의 문제다. 그런데 이 사회는 내 잘못이라는 식으로 세뇌를 시킨다.”

- 그럼에도 비혼 비율이 계속 늘고 있다.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이 전무한 사회에서는 결혼만이 유일한 미래였다. 하지만 1990년대 말 발생한 국가부도는 ‘일하는 아빠, 살림하는 엄마, 토끼 같은 자식’이라는 공식을 깨뜨렸다. 우리 세대부터는 과거 어머니처럼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됐다. 여기에 2000년대 초반부터 결혼을 미루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여성들이 나타났다. ‘신세대’ 혹은 ‘X세대’로 불리는 이들이다. 이들은 고학력, 해외여행, 어학연수 등의 세례를 받은 자유주의 1세대다. 내가 비혼을 선택한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혼으로 내게 지워진 역할로만 살고 싶지 않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과 이중 삼중의 노동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또한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자유와 성적 자기 결정권도 잃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 누구도 아닌 ‘나’로 살고 싶었을 뿐이다.”

- 결혼 제도에 의문을 품은 이유는. 

“1937년생인 엄마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신식 고등교육을 받고 교사가 된, 당시로서는 드문 전문직 여성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서른 넘도록 결혼을 안 한 딸에게 가족들이 성화를 부렸고, 엄마는 선을 보고 아버지와 결혼했다. 아이 셋을 낳은 엄마는 남편을 내조하면서 전업주부 현모양처로 살고자 했지만 실직 후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때문에 가정에 대한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나는 엄마가 자신의 삶을 찾기를 바랐지만 엄마는 스스로에게 ‘이혼녀’라는 딱지를 붙일 수도, 우리에게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게 할 수도 없다고 했다. 이런 어린 시절 경험을 계기로 결혼이 뭘까, 왜 결혼을 하지, 결혼을 안 하면 안 되는 건가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화려한 싱글은 없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홍재희 작가는 ‘암사자들’ ‘아버지의 이메일’ 등의 독립영화를 만들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가 홍재희 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홍재희 작가는 ‘암사자들’ ‘아버지의 이메일’ 등의 독립영화를 만들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가 홍재희 감독.

- 비혼으로 살아가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비혼은 ‘남자 없는’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결혼이 없는 삶을 의미한다. 사실 20, 30대는 비혼을 결심해도 자신만의 생각일 뿐, 사회적으로는 결혼을 아직 안 한 미혼 여성일 뿐이다. 결혼 기회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40대 이후다. 확고한 신념 없이 비혼을 선택한 ‘어쩌다’ 비혼은 혼자라는 사실에 극심한 공포를 느끼기 쉽다. 비혼의 삶을 잘 살아가려면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거나 ‘그래서 나는 결혼하지 않을 거야’가 돼서는 안 된다. ‘나는 내 삶을 이렇게 꾸려가겠다’가 전제가 돼야 한다.”

- 도대체 결혼은 무엇일까. 

“결혼하면 여자는 모든 게 바뀐다. ‘독박 육아’와 ‘경력 단절’이라는 현실을 피해갈 수 없다. 독박 육아를 감수한 여성이 다시 일터로 돌아갔을 때 제공되는 일은 대부분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뿐이다. 반면 남자는 결혼이 자신의 직업과 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살림과 육아를 전적으로 도맡는 아내가 있어 경력을 쌓는 데 더욱 집중할 수 있다. 한마디로 결혼은 남성에게는 덤이지만 여성에게는 가진 것마저 탈탈 털리게 하는 제도다.”

- ‘화려한 싱글’은 없다고 했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화려한 싱글’이라는 말이 대중매체에 등장했다. 결혼하지 않고 전문직 경력을 쌓으면서 독신 생활을 즐기는 여성을 지칭했다. 나도 싱글 라이프를 즐기긴 했다.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쇼핑하고 애인과 해외여행도 다니고 헬스클럽에서 운동도 했다. 그렇지만 화려한 싱글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자료에 따르면 남녀 임금 격차에서 부동의 1위인 나라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일은 거의 저임금 직종에 몰려 있다. 나는 독립영화 감독이지만 지난해 영화로 벌어들인 수입은 0원이다. 몇 년간 후속작을 단 한 편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비정규직 알바 노동자로 20년을 살아왔다. 화려한 싱글은 없다. 그냥 사는 거다.”

- 비혼의 삶이 더 행복할 방법은 없을까. 

“열심히 살았는데도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은 사회 문제다. 대한민국에서 현재 가장 많은 가구 형태가 1인 가구다. 그럼에도 모든 사회적 기준과 혜택은 4인 가족에 맞춰져 있다. 다양한 형태의 삶이 행복할 수 있도록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 더 행복해지기 위해 비혼 스스로 노력할 점은 없나. 

“나는 과거에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러면 반드시 보상이 주어진다고 믿었다. 서른 넘어 영화 일을 시작할 때도 빨리 경력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박카스와 믹스커피를 연거푸 들이켜며 밤샘을 했고 ‘악바리’라는 말을 칭찬으로 여겼다. 대단한 착각이었다. 30대 중반부터 삶에 균열이 오기 시작했다. 기대만큼 보상은 없었고 영화는 점점 멀어졌으며 나는 여전히 가난했다. 마흔이 돼 체력이 바닥나자 정신력에도 한계가 왔다. 이제 나는 열심히 하는 대신 마음 가는 대로 즐겁게 살려고 한다. 과로하며 살다가는 삶에 위기가 온다. 건강을 잃거나 돈을 잃거나 사람을 잃거나 인생이 공허해지거나…. 인생에서 ‘멈춤’을 누르고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덜 소유하고 덜 쓰면 가능한 일이다.”

- 어떤 방법으로 실천하고 있나. 

“20∼30대에는 돈 벌어 쓰는 재미에 살았다. 신용카드 3개를 돌려 썼다. 그러다 일터에서 잘려 카드 하나를 못 막자 줄줄이 연체가 됐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빚을 모두 갚은 후에는 한계를 정해놓고 소비한다. 같이 살던 사람과 헤어지면서 혼자 살 집을 구해야 했다. 어렵사리 작은 집을 구해 이사하면서 많은 것을 버려야 했다. 물건을 버리고 얻은 것은 자유였다. 삶이 단순하고 편안해졌다. 집에 대한 생각도 바꿨다. 나는 집을 소유한 빚쟁이로 살고 싶지 않았다. 집이란 ‘내 집’이 아니라 ‘내가 사는 집’이면 충분하다.”

따로 또 같이 사는 삶

- 비혼이라고 혼자 살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1인 가구나 비혼도 친밀감을 나누며 살 수 있는, 사회 최소 단위로서 ‘가족’은 필요하다. 커플로 살 수도 있고,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살 수도 있다. 상황과 여건, 취향에 따라 각자 선택하면 될 일이다. 나는 어떤 형태로든 고립된 혼자가 아니라 따로 또 같이 사는 삶, 혼자 살면서도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다.”

- 비혼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불안이다. 서른 살이 오십을 불안해하고, 마흔 살이 노후를 불안해한다. 일상에서 그 나이대 사람을 보지 않고 머릿속에 떠올린 이미지로 불안해한다. 머릿속 인간의 마지막 모습은 치매노인이나 독거노인이다. 이런 현상은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 구조 탓이다. 불안감을 느낄 때는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 나이대 사람을 보라고 말해준다. 너무 많은 걱정은 곧 두려움이 된다.”

- 비혼 아닌 기혼남녀도 이 책을 읽기 바란다고 했다. 

“개인의 일생을 가족이 죽을 때까지 책임지던 가족 운명 공동체는 이미 현실에서 사라졌다. 100세 시대를 앞둔 고령사회 한국에서는 앞으로 누구나 비혼의 삶을 통과해야 한다. 지금 비혼은 당신의 미래를 미리 사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미리 보고 느껴야 불안하지 않다.”





주간동아 1250호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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