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87

2023.04.28

“나는 유력 정치인 송영길 측근, 노영민 비서실장과도 친해”

자칭 ‘민주당 로비스트’ 이정근 통화 녹취록 파문… 내부 정보 유출로 민주당 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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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3-04-29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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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난 내가 A 공기업 대표도 만나. 우리 송영길 대표한테도 A 공기업 대표한테 전화 한 통만 해봐 안 했겠어?”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와의 친분을 강조한 이 발언의 주인공은 같은 당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이다. 법원에 따르면 이 전 부총장은 2021년 11월 10일 사업가 박 모 씨가 공기업 인사 청탁을 하자 송 전 대표와의 친분을 내세우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로비스트’로 일컬으며 박 씨로부터 10억 원 상당을 받았다. 문제는 이 사안이 단순 개인 비리를 넘어섰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불거졌다. 검찰은 박 씨로부터 받은 불법 자금 중 일부가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송영길 캠프를 지원하는 데 사용됐다고 보고 있다. 이른바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이다. 이 전 부총장은 4월 12일 1심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 혐의로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은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이 지난해 9월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이 지난해 9월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영길이 형한테 얘기했더니…”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김영철)는 4월 24일 송 전 대표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고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검찰은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9400만 원이 봉투에 담겨 전달됐다고 본다. 이 전 부총장이 송 전 대표 지지를 부탁하며 현역의원에겐 300만 원, 캠프 상황실장 등에겐 50만 원 등 총 9400만 원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 전 부총장은 당시 송영길 캠프에서 지역위원장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수사의 종착점이 송 전 대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송 전 대표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도 이런 기류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송 전 대표의 보좌관을 지냈던 박 모 씨 등 관련자를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송 전 대표에 대한 수사는 주변인들 조사가 이뤄진 후 진행될 전망이다.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의 뇌관은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다. 이 전 부총장이 2016년부터 7년 동안 휴대전화 자동녹음 기능을 이용해 통화 내용을 녹음했는데,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이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검찰이 확보한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 통화 녹음파일에는 송 전 대표가 이번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정황도 여럿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녹음파일에 따르면 강래구 한국감사협회 회장은 2021년 4월 10일 이 전 부총장과 통화에서 “영길이 형에게 ‘성만이 형이 연결해줘서 나눠졌다’고 얘기했더니 ‘아휴, 잘했네 잘했어’ 그러더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그가 “영길이 형이 어디서 구했는지 그런 건 모르겠지만 많이 처리를 했더라”고 말한 대목도 있다.



    송 전 대표는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4월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는 2년 전 민주당 전당대회 송영길 캠프에서 발생한 사안으로 전적으로 나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법률적 사실 여부에 대한 논쟁은 별론으로 한다”고 말했다. 해당 사안은 이 전 부총장 개인의 일탈이며 자신은 도의적 책임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돈봉투, 오랜 관행” 주장도

    이 가운데 이 전 부총장의 불법 정치자금 전달 내용이 담겼다는 문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A4 용지 5장 분량의 이 문건은 ‘이재명 7인회’ ‘문재인’ ‘재수회’(문재인을 재수시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모임), ‘노무현’ ‘류영진’(문재인 정부 초대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등의 제목으로 나뉘어 정리됐다. 해당 문건에는 민주당 여러 계파의 자금줄이 대략적으로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 4월 20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번 사태가 “오랜 관행”이라며 “전당대회가 치열해지면 좀 더 혼탁해지고 원사이드 하면 덜 혼탁한 정도지, 전당대회를 하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지만 정부 당국 생각은 반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다음 날 “선거를 앞두고 수백만 원씩 돈을 뿌린 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범죄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일축했다.

    특히 송 전 대표 외에도 야권 주요 관계자가 청탁에 얽혔다는 혐의를 받고 있어 추가적인 논란도 예상된다. 이 전 부총장은 사업가 박 씨에게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움직여야 한다. (박영선) 장관을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친한 관계다” “나는 유력 정치인 송영길 국회의원의 측근이고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도 친하다”고 말하는 등 문재인 정권 실세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실제로 검찰은 이 전 사무총장이 CJ그룹 계열사인 한국복합물류에 취업하는 과정에도 노 전 실장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은 긴장한 모습이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4월 25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윤석열 대통령이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한 것은 내 경험상 구체적인 보고가 있었고, 한 장관이 ‘말 같지 않은 소리’라고 단언하듯이 한 부분도 뭘 알고 하는 얘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4·19 기념사에서 “4·19혁명 열사가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관련 내용이 담긴 녹취파일뿐 아니라, 주요 관계자인 이 전 부총장마저 수사에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내부에서 정보가 나오고 있는 만큼 민주당으로서는 굉장히 곤혹스러운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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