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운데)가 5월 22일 서울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헌정회 정책포럼 강연에 앞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최근 지역 방문 현장. 한 정치인이 격렬히(?) 애정을 표시하며 달려왔다. 어찌나 살뜰하게 대하던지, 주변에선 둘 사이에 낄 틈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김 대표의 최측근으로 보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그는 평소 친박근혜(친박)계로, 김 대표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쳐도 모자란데, 김 대표가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면서 구심력을 약화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의 불만은 일부 중앙당 당직자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날 지역 행사에서만큼은 그는 완전히 ‘친김무성계’였다.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그는 김 대표 주변에 머물렀다. 심지어 “평소 무척 존경하는 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지인과 저녁식사 자리에서는 김 대표가 본인을 매우 아낀다고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실상을 아는 일부 관계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주박야김(晝朴夜金) 시대가 도래했군.’
낮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모이고, 밤에는 김무성 대표에게 줄을 선다는 뜻이다. 몇 년 전 이명박 정부에서 ‘주이야박(晝李夜朴·낮에는 친이, 밤에는 친박)이 있었다면, 박근혜 정부 3년 차에서는 ‘주박야김’이 등장한 것이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의 ‘양다리’ 걸치기 현상은 현 정부가 집권 3년 차 하반기 반환점을 눈앞에 두고 있고 2016년 총선, 2017년 대통령선거(대선)를 앞둔 것과 연관돼 있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공존하는 시기 공식적으로는 여권 구심점인 대통령에게, 비공식적으로는 차기 대선주자와 가깝게 지내려는 의원들의 속내가 주박야김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더구나 내년 총선이 현 정부 집권 4년 차에 치러지고, 그다음 해에 대선이 있다 보니 여당 정치인들의 눈치작전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차기 대선주자 얼굴로 본인 총선까지 치르고 싶어 하기 때문.
친박계가 현재권력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조짐은 이미 2월부터 시작됐다. ‘친박계’와 ‘탈박근혜(탈박)계’를 각각 상징하는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과 유승민 의원의 원내대표 경선에서 유 의원이 84 대 65로 가뿐히 승리한 것. 여기에 유 원내대표가 4월 국회 연설에서 ‘신보수의 길’을 제시하며 파란을 일으키자, 수도권 일부 원외위원장은 화들짝 놀랐다. 보수 성향의 언론조차 유 원내대표의 연설을 극찬하자 미래권력 쪽으로 여론 흐름이 바뀌고 있다고 판단한 것.
당시 유 원내대표 측근 의원들에게까지 전화가 폭주하고, 일부는 면담을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다만 아직은 이른바 ‘유승민계’가 형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 그보다는 이른바 ‘김무성-유승민 체제’에 줄을 서려는 심리가 강해졌다는 관측이 많다.
이런 가운데 주박야김 현상이 본격적으로 확산한 계기는 4월 재·보궐선거(재보선)였다. 김 대표가 ‘박근혜 마케팅’을 하지 않고도 수도권 3곳에서 승리를 이끈 것. 최근 경제 여건이 좋지 않고 김 대표가 강성보수 이미지가 강해 수도권에서 고전할 것이라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오히려 ‘상남자 스타일’의 김 대표가 머릿수건을 쓰고 매운탕을 끓이는 모습이 더 화제가 됐다.
4·29 재보선 압승으로 당내 분위기도 끓어올랐다. 전 정부에서 국무총리 후보였던 김태호 최고위원까지 김 대표에게 극찬을 보냈다. 재보선 다음 날인 4월 30일 김 최고위원은 “김무성 대표가 후보들의 당선을 위해 4800km를 다녔는데 오늘은 제가 업어드리겠다”며 김 대표를 업는 퍼포먼스까지 펼쳤다. 또 “‘선거의 남왕’도 있다”면서 “앞으로 그렇게 칭하겠다”고 말했다. ‘선거의 남왕’이란 표현은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던 박 대통령을 연상케 하며 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재보선 이후 김 대표의 대선 지지율 상승도 당내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에 따르면 5월 1주 차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김 대표는 22.6%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22.5%)를 0.1%p 앞서며 1위를 차지했다. 이 소식은 이른바 ‘김무성 대세론’에 불을 지폈다.
대선 경쟁자 몰락에 따른 반사이익도
4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김태호 최고위원이 4·29 재·보궐선거 운동 기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전국을 돌면서 선거운동을 하느라 노고가 많았다며 즉석에서 김 대표를 업어주고 있다.
상대적으로 최근 여권의 다른 잠재적 대선후보들이 고전하는 것도 김 대표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 올해 초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던 이완구 전 총리, 홍준표 경남도지사 등은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수사’로 요즘 곤혹스러운 상태다.
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재보선 국면을 거치면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등장으로 관심도가 줄었다는 관측이다. 오 전 시장은 최근 재기를 노리며 내년 총선 출마가 유력하나, 아직까지 김 대표와 경쟁할 수준의 입지는 다지지 못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도 예상과 달리 정치적으로 큰 반향은 일으키지 못했다. 개성공단 방문 계획이 북측의 돌변으로 무산됐기 때문. 물론 그의 방한과 세계교육포럼 참석 등은 주요 뉴스로 다뤄졌지만, ‘대망론’에 불을 붙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보다는 그의 개성공단 방문 및 한반도 평화 메신저에 대한 기대심리가 너무 컸던 탓에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평까지 나왔다. 이런 복합적 상황과 맞물려 당분간 김 대표가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 위치를 지킬 개연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대세론’의 주인공이 압축되면서 새누리당 정치인들의 마음은 더 흔들리고 있다. 일부 의원은 체면 때문에 ‘김무성계’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있지만, 은근히 김 대표와의 인연을 강조하고 있다. 지역 주요 행사에 김 대표가 방문한 적이 있다거나, 주요 정책을 놓고 토론한 적이 있다는 식이다. 대구 지역 한 정치인은 기자와 만남에서 “김무성을 ‘탈박’이라고 다들 타박할 때 나는 의리를 지키고 가끔 소주도 한잔했다”며 “김 대표가 전당대회 끝난 후 나에게 고맙다고 수차례 인사했었다”고 자랑한 바 있다.
서울 한 원외위원장은 “요즘 지인들과 만날 때 김무성 대표와 찍었던 사진을 자주 보여준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김무성과 친해?”라는 질문을 자주 받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는 것. 그가 “김 대표가 폭탄주를 잘 마셨지만 요즘에는 비싼 양주는 안 마시고 낮술도 못 먹게 한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고개를 끄덕인다고 한다. “아이고, 쇼한다!”며 비아냥대던 것과는 반응이 크게 달라진 것.
주요 당직자 사이에서도 김 대표와 관련한 소소한 에피소드를 아는 것이 은근히 자랑거리다.
“김무성 대표가 매운탕을 왜 잘 끓이는지 알아? 김영삼 (전) 대통령과 ‘상도동계’ 하면서 부산에서 올라온 생선을 워낙 많이 손질해봐서 그렇다는 거야. 이번 재보선에서 인천 강화군 가서도 생선을 직접 손질한 건 자신 있어서 그런 거지.”
이 밖에도 김 대표가 공천에서 탈락해 바닥을 뛰며 고생했던 일화도 최근 다시 회자되고 있다. 이런 스토리가 급격히 확산하는 것은 그만큼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는 신호다. 너도나도 ‘친김무성’을 드러내고 싶은 심리가 투영된 현상으로 해석된다.
정작 김 대표는 이런 분위기에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몸을 한껏 낮추고, 대선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5월 22일 대한민국헌정회 정책포럼 초청으로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행한 강연에서 “대권은 하느님이 주시는 거고 나는 스스로 대권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올해 나이가 65세로 이제 정치를 마감할 준비를 해야 할 때”라며 “70세가 넘어서까지 정치를 계속할 생각이 없다. 정치판에 들어와 뭔가 족적을 하나 남기고 그만둘 것”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몸조심 입조심’
5월 23일 경남 김해시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가 헌화 분향을 마치고 나오던 중 물세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정치 9단의 정치적 행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 대표가 오랜 기간 권력의 속성을 지켜보면서 ‘대세론’ 혹은 ‘대망론’이 약이자 독약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집권 3년 차에 섣불리 행동에 나서지 않으려 한다는 것. 특히 여느 대선주자들과 달리, 김 대표는 여당 지도자로서 박 대통령과 충돌을 조심해야 하는 처지다. 유 원내대표나 다른 잠재적 대선주자들에 비해 국정운영에 대한 공동책임이 더 강하기 때문. 게다가 박 대통령 지지율은 5월 들어 40%대를 유지하면서 집권 3년 차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권력’의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혁신 바람’이 불 때 김 대표가 본격적으로 ‘칼’을 휘두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총선 국면이 강해지면 김 대표가 주장했던 오픈프라이머리든 다른 방식으로든 새누리당에 태풍이 불 수밖에 없다”며 “이것이 혁신으로 이어지고 19대 총선에서 얻은 152석 이상을 20대 총선에서도 확보해야 김 대표의 지지율이 안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혁신공천 기운이 강해지면 역설적으로 내년 총선 출마자들이 김 대표에게 가까이 가려는 현상이 더 두드러질 것”이라며 “김 대표가 이를 어떻게 잘 정리하느냐에 따라 과거 리더십을 보일지, 아니면 미래지도자로서 인정받을지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