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형 서울대 교수팀이 지난해 개발한 인공피부. 지금까지 개발된 인공피부 중 가장 민감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팬들의 오랜 기다림 끝에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이 돌아왔다. 교활하고 영리한 악당 로키가 인류를 위험에 몰아넣었던 ‘어벤져스’ 이후 3년 만의 귀환이다.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헐크 등 반가운 얼굴이 총출동한다. 여기에 새로운 슈퍼히어로 ‘비전’이 가세해 아이언맨이 만든 문제작인 인공지능 악당 ‘울트론’에 맞선다. 끊임없이 자신을 복제해 세력을 키우는 울트론을 어벤져스는 과연 저지할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 어벤져스와 울트론의 대결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과학기술과 개념들을 들춰봤다.
# 호크아이를 구한 인공피부
전편에서 미국 맨해튼 상공을 가르며 맹활약을 펼친 ‘호크아이’가 이번 편에서는 영화 초반 치명상을 입고 만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상황에서 그를 구한 것은 미모의 한국인 과학자 닥터 조가 개발한 인공피부다. 인공피부로 크게 다친 신체 부위를 덧대 출혈을 막은 것은 물론이고 회복 속도도 앞당겼다. 수술을 마친 뒤 닥터 조는 “부인도 알 수 없을 만큼 감쪽같다”며 자화자찬을 한다.
실제로 김대형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팀은 온도, 압력, 습도까지 느낄 수 있는 인공피부를 개발해 지난해 12월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우수한 실리콘 고무에 압력센서, 온도센서, 습도센서 그리고 소재가 늘어나는 정도를 감지하는 변형률센서까지 달아 사람 피부가 느끼는 모든 감각을 느끼게 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발행하는 기술 분석 잡지 ‘테크놀로지 리뷰’는 이에 대해 “지금까지 개발된 인공피부 중 가장 민감하다”고 평했다. 다양한 센서뿐 아니라 열을 내기 위한 발열장치도 넣어 진짜 피부처럼 온기가 느껴지는 것도 장점이다.
김 교수팀은 쥐의 신경에 인공피부를 연결해 인공피부가 느끼는 감각을 뇌에까지 전달하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김 교수는 “인공피부를 도색해 진짜 피부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며 “5년 내 인공피부가 의수나 의족을 덮는 데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 명령 따라 움직이는 ‘군집로봇’ 울트론
영화 속에서 명령을 내리는 ‘울트론 프라임’은 소수지만 어벤져스를 무찌르려고 달려드는 ‘울트론 센티넬’은 셀 수 없이 많다. 울트론 센티넬은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서로의 허점을 보완하며 어벤져스를 괴롭히고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 집단을 구성하고 무리지어 움직이는 ‘군집로봇’이라 할 수 있다.
울트론 센티넬 각각은 훈련받은 병사처럼 독립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움직이지만 전체의 목적은 단 하나, 어벤져스를 무찌르는 것이다. 이는 최근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군집로봇의 특징과 일치한다. 군집로봇 또한 울트론 센티넬처럼 개별 로봇은 환경에 맞춰 각각 움직이지만 로봇들의 모든 행동 목적은 미리 설정해둔 목표로 귀결한다.
라디카 나그팔 미국 하버드대 교수팀은 무리를 이뤄 사회생활을 하는 대표적인 사회성 곤충인 흰개미의 행동방식을 본뜬 ‘흰개미 로봇’을 만들어 지난해 2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나무블록 더미를 쌓으라’는 명령을 내리자 흰개미 로봇들은 나무블록을 옮기는 일과 쌓는 일 등을 알아서 분업하고 개별적으로 움직이며 명령을 수행했다. 심지어 로봇 몇 기가 고장이 났는데도 다른 로봇들이 빈자리를 채우며 임무를 마쳤다. 나그팔 교수는 이 같은 군집로봇을 만든 공로로 지난해 ‘네이처’가 뽑은 과학계 10대 인물로 꼽혔다.
# 도시를 내동댕이쳐 인류 멸망시킬 수 있나
영화 중·후반에 이르면 울트론은 동유럽 가상의 나라 ‘소코비아’의 도시 하나를 공중으로 부양한 뒤 지표면과 충돌케 해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계획을 실행한다. 울트론의 계획대로 하려면 얼마나 큰 도시를 떨어뜨려야 전 지구에 피해를 입힐 수 있을까.
최영준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름 100km의 도시를 성층권 높이인 약 30km까지 들어 올려 자유낙하시키면 전 지구적인 피해는 아니더라도 국가 하나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의 경우 동서 간 거리가 약 30km, 경기도는 130km 정도다. 최 연구원은 “지름 100km의 도시가 상공에서 떨어질 경우 그 위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발한 원자폭탄의 수천 배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도시의 파괴력도 무시무시하지만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소행성의 파괴력은 더 크다. 지름이 10km만 돼도 전 지구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소행성의 속도는 초속 약 5km로, 자유낙하로 떨어지는 도시보다 100배 이상 빠르다. 최 연구원은 “30km 상공까지 들어 올린 도시를 자유낙하시키는 대신 영화에서처럼 지표면으로 임의로 가속시키면 전 지구적인 피해도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울트론의 뇌는 뉴로컴퓨터일까
아이언맨의 실수로 탄생한 울트론이 영화 초반 흥얼거리는 노래는 고전 애니메이션 ‘피노키오’에서 피노키오가 부르는 ‘I’ve got no strings(난 더 이상 끈에 매여 있지 않아요)’다. 자신의 상황을 고전에 빗대 표현할 만큼, 영화 속 울트론의 인공지능은 최강 수준이다. 인간의 뇌가 신경세포 수만 개를 서로 연결해 네트워크를 이루며 작동하는 것처럼 울트론의 사고 회로는 각 부분이 서로 소통하고 연결된 것처럼 묘사된다.
현재로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슈퍼컴퓨터도 영화 속 울트론의 뇌처럼 사고하지 못한다. 그나마 무수히 많은 중앙처리장치(CPU)를 연결해 사람 뇌처럼 연산을 처리하는 ‘뉴로컴퓨터’가 이와 가장 비슷한 형태다. 그러나 아직은 한계가 많다. 이지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은 “1초에 3경 번 연산이 가능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는 20메가와트(MW)의 전력을 사용하면서도 사람의 표정을 읽지 못한다. 반면 사람의 뇌는 슈퍼컴퓨터의 100만 분의 1의 전력만으로도 온갖 표정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컴퓨터 전문업체 IBM은 프로세서 4096개를 이용해 시냅스 2억5600만 개를 가진 뉴로컴퓨터를 개발했고, 12월에는 차세대 메모리로 꼽히는 형상 변형 메모리를 이용해 뉴로컴퓨터를 제작했다. 이들 뉴로컴퓨터는 사람이 쓴 글씨를 인식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최강의 인공지능을 갖춘 악당 울트론. 인간 뇌의 신경망을 모사한 울트론의 지능은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구현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