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8

..

문재인-이종걸 불안한 오월동주

선의의 경쟁하면 ‘균형의 미학’…권력 다툼 계속되면 ‘콩가루 야당’

  • 전예현 내일신문 기자 whatisnew@naver.com

    입력2015-05-18 10:0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문재인-이종걸 불안한 오월동주

    친노(친노무현) 좌장인 새 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왼쪽)와 비노(비노무현) 대표 격인 이종걸 원내대표. 이들이 권력다툼을 계속한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의 미래는 보장하기 힘들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상황은 이에 비유된다. 대척했던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들이 풍랑 속 한 배에서는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은 모습과 유사하다. 4월 재·보궐선거(재보선) 패배 이후 야당은 폭풍에 휘말렸고, 으르렁거리던 각 계파 출신의 두 지도자가 흔들리는 배 안에 함께 앉았다. ‘친노(친노무현)’ 문재인 대표와 ‘비노(비노무현)’ 이종걸 원내대표가 불안정한 동거를 시작한 것.

    물론 두 사람은 대여 투쟁에서 한목소리를 낸다. 공무원연금 문제를 놓고 정국이 급격히 냉각될 때는 단결력도 높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관계가 마냥 편치는 않다. ‘타이밍’과 ‘권력재편’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았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2017년 대통령선거(대선)를 향한 그림도 그려진다. 이렇다 보니 각 계파 사이에서 ‘지금부터 밀리면 안 된다’는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투톱’인 두 지도자가 손을 잡고 웃을 때도 주변 분위기는 어색하다.

    최근 야당 내부의 계파 갈등은 최고위원 간 싸움에서도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5월 8일 지도부 사퇴 찬반을 놓고 두 최고위원이 강하게 부딪쳤다. ‘친노’ 정청래 최고위원이 ‘비노’ 주승용 최고위원을 향해 “사퇴할 것처럼 해놓고 공갈치는 게 문제”라고 말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주 최고위원은 “치욕적”이라며 사퇴를 선언한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른바 ‘주승용 사퇴 파동’이다.

    문재인 ‘묘한 입지’, 최고위도 ‘복잡’

    문재인 대표는 ‘읍참마속’을 언급하며 정 최고위원에 대해 직무정지를 추진했다. 최고위원회 출석 정지 조치도 내렸다. 하지만 당내 ‘비노’ 대다수는 이른바 ‘친노 비선(秘線) 패권주의’가 해결되지 않으면 비슷한 상황이 또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계파 간 불신, 특히 ‘친노’에 대한 불만이 해소되지 않으면 잠복된 갈등이 계속 불거지고 당을 어지럽힐 것이란 지적이다. 실제 일부 전직 의원은 ‘주승용 사퇴 파동’ 후 별도 회동을 갖고 ‘당내 친노 청산’ ‘문 대표 퇴진 요구’를 의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신당론’까지 거론했다는 후문이다. 원내외 안팎에서 이른바 ‘문재인과 친노 책임론’이 끊이질 않는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비노’ 출신 이종걸 원내대표의 태도는 애매하다. 그는 문 대표와 가깝고도 먼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5월 13일 최고위원회 공개 석상에는 문 대표와 이 원내대표 두 사람만 참석했다. 문 대표는 주 최고위원의 복귀를 간곡하게 부탁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반면 이 원내대표는 “당대표가 주도해 ‘모두’ 바꿀 수 있도록 개혁하겠다”면서도, 주 최고위원이 빨리 복귀해야 한다고 적극 주장하지도 않았다. 더불어 그는 새 원내대표단 인선에서도 ‘친노’보다 ‘비노’ 인사를 대다수 배치했다. 특히 요직인 원내수석부대표에 박지원 의원과 가까운 이윤석 의원과 ‘손학규계’ 출신인 이춘석 의원을 임명했다. 이들을 포함해 15명의 신임 원내부대표단 가운데 이른바 ‘친노’ 인사는 3명에 불과했다.

    문재인-이종걸 불안한 오월동주

    5월 7일 새정치민주연합 제4기 원내대표로 선출된 비노(비노무현)계 이종걸 원내대표(오른쪽)가 문재인 대표와 함께 의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일부 ‘친노’ 인사는 이 원내대표에게 섭섭한 눈치다. 열린우리당 주요 당직자 출신 한 인사는 “이럴 때 이종걸 원내대표가 ‘비노’ 진영을 설득해 당을 화합케 하고 문재인 대표에게 적극 힘을 실어주면 좋을 텐데”라고 말했다. 당분간 그나마 최고위원회를 이끌어갈 ‘투톱’이 지금 굳게 손을 잡고 각 계파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원내대표가 예전부터 당내 계파 패권, 특히 ‘친노’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으로 대응해온 만큼 갑자기 문 대표를 옹호하며 ‘친노’와 손을 잡을 개연성은 낮다. 특히 그가 원내대표로 당선된 것은 ‘친노에 대한 독주 견제’로 해석되므로, 섣불리 ‘문 대표를 중심으로 모두 단결하자’고 주장하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럴 경우 당장 본인을 지지해준 의원들로부터 배척당할 수 있다.

    게다가 그는 4월 재보선 이후 경선에서 당선했으므로, 문 대표나 여느 최고위원들과 달리 재보선 패배에 대한 직접적 책임이 없다. 오히려 패배 이후 당의 새 그림을 그리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따라서 두 사람의 묘한 관계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다.

    집안싸움하면 망한다

    이런 혼돈 상태에서 문재인 대표는 대중성 면에서는 ‘갑’이지만, 당내에서는 명백한 ‘을’이다. 재보선 패배 이후 차기 대선주자 관련 여론조사에서 그는 여전히 야당 정치인 중 최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그를 위협할 정도의 주자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반면 당내 입지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4월 재보선이 끝난 지 열흘도 안 된 시점에서 ‘비노’ 대표 격인 이종걸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됐다는 것은 여차하면 문 대표에 대한 ‘당심’도 흔들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이 원내대표는 4선으로, 초선 문 대표에 비해 원내 경험이 풍부하다. 의원총회를 주도할 수 있고 각 상임위원회 의원들과 접촉할 명분도 많다. 즉 대여 투쟁이나 의원들과의 관계에서 문 대표가 오히려 이 원내대표의 도움이 아쉬운 모습이다. 다만 ‘비노’ 진영에서 무더기로 탈당하거나, 신당 추진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내부에 대선주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누군가 선도적으로 움직이면서 자금과 조직을 꾸릴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최근 새정연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특정 계파 승리를 점치기 어려운 것은 양 계파의 이런 딜레마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야당에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견제와 균형의 미학이 발휘되면 당의 쇄신이 촉진되겠지만, 권력 다툼 수준에 머문다면 그야말로 ‘망하는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소설가 출신인 김홍신 전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 등에서 새정연에 대해 “국민의 발걸음과 마음을 읽지 못하고 못 따라가는 느림보”라고 꼬집었다. 이어 “당이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만 국민을 보면 안 된다”면서 여당은 물론 야당의 변화도 촉구했다. 새정연의 내부 다툼이 건강한 경쟁으로 가야지, 총선과 대선이라는 잿밥만 염두에 둔 분란으로 흐르면 또 국민의 회초리를 맞을 거란 의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