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아버지라 하고 형을 형이라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다 그냥 ○○○ 씨라고 부르죠. 분위기요? 말 그대로 살벌합니다.”
상속 관련 분쟁 사건을 많이 맡아온 강치훈 법무법인 정앤파트너스 변호사가 혀를 내두르며 한 말이다. 그는 “법정에서 서로 잘잘못을 다투고 ‘내 몫’ ‘네 몫’을 챙기다 보면 가족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것 같다”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최소한 소송에 뛰어든 가족 사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이러한 가족 내 소송이 크게 늘고 있다. 특히 가장(家長) 사망 후 유산을 두고 남은 식구들끼리 다투는 사례가 빈발한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다 받지 못했다며 다른 상속인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는 ‘유류분(遺留分) 반환 청구 소송’이 최근 9년 새 5배 이상 늘었다(2005년 158건→2014년 811건).
유류분은 상속인이 유산 중 일정 비율을 법률상 반드시 취득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로, 통상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에 해당한다. 만약 A씨가 배우자 B씨와 자녀 C씨를 남긴 채 사망했다면 B씨의 유류분은 현행법상 배우자 법정상속분 ‘2.5분의 1.5’에서 2분의 1인 ‘5분의 1.5’가 된다. 유산이 1억 원일 경우 최소 3000만 원은 B씨 몫이라는 뜻이다. 자녀 C씨는 법정상속분 ‘2.5분의 1’에서 2분의 1인 ‘5분의 1’, 즉 2000만 원을 유류분으로 확보한다. 만약 A씨가 이를 무시하고 재산 전체를 B나 C에게 남길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부모 사망 후 남은 형제자매가 많으면 분쟁 여지도 커진다. 일단 소송이 시작되면 당사자들은 재판정에서 “형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재산을 독차지했다”거나 “어머니가 내 몫까지 부당하게 받아갔다”며 다툰다. 경태현 법무법인 천명 변호사는 “특히 요즘에는 부모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을 청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부모 형제 안 가리는 재산 다툼
경 변호사에 따르면 ‘좀 부당해도 가족 사이니까 내가 참자’라는 문화도 사라지고 있다. 2011년 서울 서초구에 사는 D씨는 아버지 사망 후 형이 자신보다 재산을 더 많이 받아갔다며 146만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E씨는 상속 재산을 둘러싼 소송 과정에서 “아버지에게 매달 30만 원씩 생활비를 지급하고 가전제품 등을 사줬다”며 재판부에 기여분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아버지를 매주 병원에 모시고 다녔다”는 이유로 더 많이 상속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자녀도 있다.
이 밖에도 크지 않은 액수를 놓고 법원 문을 두드리는 가족이 적잖다. 한 변호사는 “종종 ‘홀로 되신 아버지가 새로 만나는 여성에게 재산을 넘겨줄 것 같다. 돌아가시기 전에 재산을 미리 확보해둘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유류분은 피상속인 사망 후 발생하는 권리로, 그전에는 자기 몫을 주장하는 게 불가능하다.
분명한 건 과거에는 재벌가의 일로나 여겨지던 형제간 재산분쟁이 대중화했다는 점이다. 2012년 전국 법원에 접수된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의 평균 소송가액은 1억2681만 원으로, 2002년의 1억7458만 원에 비해 오히려 27.4% 줄었다. ‘가족 사이라도 내 몫을 빼앗기는 건 참을 수 없다’는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단면이다(상자기사 1 참조).
상속 재산을 둘러싼 가족 사이 법적 분쟁이 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는 친생부인(親生否認) 소송 건수다. 피상속인 사망 후 재산을 분할하는 과정에서 주로 제기되는 이 소송은 2009년 186건에서 지난해 536건으로 역시 크게 늘었다.
2006년 남편 사망 후 아들을 상대로 친생부인 소송을 제기한 F씨 역시 상속 재산에 대한 다툼 때문에 법원 문을 두드렸다. F씨는 남편의 전처소생인 G씨가 남편의 친자식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품었고, 그 사실이 확인되면 유산을 나눌 필요가 없을 것으로 여겨 유전자 감정을 의뢰했다. 결과는 G씨의 아버지가 남편이 아닌 제3자라는 것. 이를 근거로 F씨는 ‘G씨가 남편의 친자식이 아님을 확인해달라’는 취지의 친생부인 소송을 법원에 냈다.
대법원이 매년 통계를 모아 발간하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상속을 둘러싼 소송은 최근 꾸준히 늘고 있다(2004년 2만1709건→2013년 3만5030건). 전문가들은 고령화가 지속되고, 노년층의 재산이 중·장년층에 비해 많은 상황이 지속되는 한 상속 관련 소송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내다본다.
유언장의 법적 효력
하나금융연구소가 1월 발표한 ‘상속 시장 분석 및 고객 세분화 방안’ 보고서도 국내 상속 자산 규모가 2016년 89조 원에서 2020년 108조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상속분쟁이 늘고 있음에도, 사회적 인식이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H씨와 I씨가 어머니 사망 후 유언장의 효력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인 사건이 한 사례다. 두 사람의 어머니는 사망 전 ‘모든 재산을 H에게 준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쓴 뒤 작성연월일, 주민번호, 이름을 쓰고 날인했다. H씨와 I씨는 이후 ‘어머니가 사망할 경우 I는 상속 재산에 대한 권리와 유류분 반환 청구권을 전부 포기한다. 그 대가로 H는 4500만 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하고, 실제로 H씨가 I씨에게 4500만 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어머니가 사망하자 I씨는 상속을 주장했다. 어머니가 유언장에 정확한 주소를 쓰지 않고 ‘○○동에서’라고 행정구역 명만 기재한 게 문제가 됐다.
이어진 소송에서 1, 2심은 H씨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민법 제1066조 1항 규정에 따라 유언자가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모두 자서하고 날인해야만 효력이 있고, 자서(自書)가 필요한 주소는 반드시 주민등록법에 의해 등록된 곳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으로서 다른 장소와 구별되는 정도의 표시를 갖춰야 한다’며 ‘이 유언장은 주소의 자서가 누락돼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나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유언장의 효력이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최근 이러한 유언장 관련 분쟁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분쟁이 빚어질 때마다 대법원은 ‘민법이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므로 민법에서 정하는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아무리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는 판결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날인이 돼 있지 않거나 날짜, 주소 등이 제대로 기재되지 않은 자필 유언은 무효로 본다. 전문가들은 사망 후 자식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는 걸 방지하려면 생전에 유언장 작성 요령을 숙지해 법적 요건에 맞는 유언을 남겨야 한다고 조언한다(상자기사 2 참조).
부모가 돈이 없어도 법적 다툼은 발생한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부모가 자녀에게 부양료 지급을 요구하는 부양료 지급 청구 소송이 대표적이다. 우리 민법 제947조에 따르면 직계비속인 자식들은 직계존속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 1955년 민법 제정 당시부터 있었으나 사실상 사문화 상태였던 이 조항이 최근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다퉈지는 분위기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2003년 127건이던 부양료 지급 청구 소송은 2013년 250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자식을 상대로 부양료를 요구하는 부모 가운데 상당수는 자녀 부양 과정에서 재산을 모두 써버린 이들이다. 2012년 2월 한 어머니가 아들을 상대로 제기한 부양료 지급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아들은 어머니에게 매월 6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면서 ‘아들은 안정된 직업과 재산을 갖고 있으며, 그 기반이 상속에서 비롯됐다. 반면 어머니는 수입과 재산이 없어 곤궁하다’고 이유를 들었다. 김상용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처럼 평생 자식 뒷바라지를 하고 재산까지 모두 물려준 뒤 생활비가 없어 고통받는 부모가 적잖다”며 “자식에게 재산을 준다고 훗날 자식들이 노후를 책임져주는 게 아닌 만큼 재산 증여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족 소송은 변호사업계 ‘블루오션’
최근 법조계는 이러한 가족 간 법률분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은 지난해 가사·상속 사건 전담팀을 만들었다. 2013년 허영섭 전 녹십자 회장의 재산 상속 사건을 대리한 김상훈 변호사가 주축이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세종, 율촌, 로고스 등에도 가사 관련 법률서비스 전담팀이 있다. 이런 로펌들은 수백억~수천억 원대 상속 다툼이나 이혼 및 재산분할 사건을 담당한다.
개인 변호사는 고액의 수임료를 부담하기 어려운 중산층, 서민을 대상으로 관련 업무를 확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최근 증가하는 가족 간 ‘극한 소송’의 배후에 변호사 수 급증을 맞은 우리 법조계의 현실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우리나라에 2만 번째 변호사가 탄생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1990년부터 2013년까지 소속 회원들이 수임한 소송 건수와 변호사 수 증가 추이를 분석한 결과, 사건 수가 6만9878건에서 25만1655건으로 260.1% 늘어나는 동안 변호사 수는 1253명에서 1만476명으로 736.1% 늘었다. 이에 따라 서울에서 활동 중인 변호사 한 명의 연간 평균 수임사건 수는 2009년 32.8건에서 지난해 24건으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 간 분쟁은 법조계의 ‘블루오션’일 수 있다.
법률 환경 변화도 가족 간 소송전을 부추긴다. ‘2014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3년 접수된 11만5292건의 이혼 사건 중 결혼 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가 3만2433건으로 전체의 28.1%를 차지했다. 이에 대해 박현정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는 “최근 법원이 재산 형성에 대한 배우자의 기여를 높이 평가하는 추세다.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한 전업주부의 경우 배우자 사망 후 상속으로 받는 돈보다 이혼을 통해 재산분할로 받는 돈이 더 많을 수 있다. 최근에는 연금까지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돼 황혼이혼 소송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의 경우에도 일단 소를 내면 얼마라도 돌려받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때문에 가족 간 법률분쟁을 막으려면 ‘사전예방’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상용 교수는 “경제적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한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가족 간 소송이 남의 일이 아니다. ‘가족끼리인데 뭘’ 하며 가벼이 여기다 가족이 풍비박산 나는 일을 막으려면 재산 증여 전, 사망 전 철저히 법적 요건을 따져 분쟁 여지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속 관련 분쟁 사건을 많이 맡아온 강치훈 법무법인 정앤파트너스 변호사가 혀를 내두르며 한 말이다. 그는 “법정에서 서로 잘잘못을 다투고 ‘내 몫’ ‘네 몫’을 챙기다 보면 가족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것 같다”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최소한 소송에 뛰어든 가족 사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이러한 가족 내 소송이 크게 늘고 있다. 특히 가장(家長) 사망 후 유산을 두고 남은 식구들끼리 다투는 사례가 빈발한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다 받지 못했다며 다른 상속인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는 ‘유류분(遺留分) 반환 청구 소송’이 최근 9년 새 5배 이상 늘었다(2005년 158건→2014년 811건).
유류분은 상속인이 유산 중 일정 비율을 법률상 반드시 취득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로, 통상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에 해당한다. 만약 A씨가 배우자 B씨와 자녀 C씨를 남긴 채 사망했다면 B씨의 유류분은 현행법상 배우자 법정상속분 ‘2.5분의 1.5’에서 2분의 1인 ‘5분의 1.5’가 된다. 유산이 1억 원일 경우 최소 3000만 원은 B씨 몫이라는 뜻이다. 자녀 C씨는 법정상속분 ‘2.5분의 1’에서 2분의 1인 ‘5분의 1’, 즉 2000만 원을 유류분으로 확보한다. 만약 A씨가 이를 무시하고 재산 전체를 B나 C에게 남길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부모 사망 후 남은 형제자매가 많으면 분쟁 여지도 커진다. 일단 소송이 시작되면 당사자들은 재판정에서 “형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재산을 독차지했다”거나 “어머니가 내 몫까지 부당하게 받아갔다”며 다툰다. 경태현 법무법인 천명 변호사는 “특히 요즘에는 부모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을 청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부모 형제 안 가리는 재산 다툼
경 변호사에 따르면 ‘좀 부당해도 가족 사이니까 내가 참자’라는 문화도 사라지고 있다. 2011년 서울 서초구에 사는 D씨는 아버지 사망 후 형이 자신보다 재산을 더 많이 받아갔다며 146만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E씨는 상속 재산을 둘러싼 소송 과정에서 “아버지에게 매달 30만 원씩 생활비를 지급하고 가전제품 등을 사줬다”며 재판부에 기여분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아버지를 매주 병원에 모시고 다녔다”는 이유로 더 많이 상속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자녀도 있다.
이 밖에도 크지 않은 액수를 놓고 법원 문을 두드리는 가족이 적잖다. 한 변호사는 “종종 ‘홀로 되신 아버지가 새로 만나는 여성에게 재산을 넘겨줄 것 같다. 돌아가시기 전에 재산을 미리 확보해둘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유류분은 피상속인 사망 후 발생하는 권리로, 그전에는 자기 몫을 주장하는 게 불가능하다.
분명한 건 과거에는 재벌가의 일로나 여겨지던 형제간 재산분쟁이 대중화했다는 점이다. 2012년 전국 법원에 접수된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의 평균 소송가액은 1억2681만 원으로, 2002년의 1억7458만 원에 비해 오히려 27.4% 줄었다. ‘가족 사이라도 내 몫을 빼앗기는 건 참을 수 없다’는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단면이다(상자기사 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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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재산을 둘러싼 가족 사이 법적 분쟁이 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는 친생부인(親生否認) 소송 건수다. 피상속인 사망 후 재산을 분할하는 과정에서 주로 제기되는 이 소송은 2009년 186건에서 지난해 536건으로 역시 크게 늘었다.
2006년 남편 사망 후 아들을 상대로 친생부인 소송을 제기한 F씨 역시 상속 재산에 대한 다툼 때문에 법원 문을 두드렸다. F씨는 남편의 전처소생인 G씨가 남편의 친자식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품었고, 그 사실이 확인되면 유산을 나눌 필요가 없을 것으로 여겨 유전자 감정을 의뢰했다. 결과는 G씨의 아버지가 남편이 아닌 제3자라는 것. 이를 근거로 F씨는 ‘G씨가 남편의 친자식이 아님을 확인해달라’는 취지의 친생부인 소송을 법원에 냈다.
대법원이 매년 통계를 모아 발간하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상속을 둘러싼 소송은 최근 꾸준히 늘고 있다(2004년 2만1709건→2013년 3만5030건). 전문가들은 고령화가 지속되고, 노년층의 재산이 중·장년층에 비해 많은 상황이 지속되는 한 상속 관련 소송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내다본다.
지난해 6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이혼시 장래퇴직금 재산분할 소송 공개변론장에 양승태 대법관이 입장하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가 1월 발표한 ‘상속 시장 분석 및 고객 세분화 방안’ 보고서도 국내 상속 자산 규모가 2016년 89조 원에서 2020년 108조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상속분쟁이 늘고 있음에도, 사회적 인식이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H씨와 I씨가 어머니 사망 후 유언장의 효력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인 사건이 한 사례다. 두 사람의 어머니는 사망 전 ‘모든 재산을 H에게 준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쓴 뒤 작성연월일, 주민번호, 이름을 쓰고 날인했다. H씨와 I씨는 이후 ‘어머니가 사망할 경우 I는 상속 재산에 대한 권리와 유류분 반환 청구권을 전부 포기한다. 그 대가로 H는 4500만 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하고, 실제로 H씨가 I씨에게 4500만 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어머니가 사망하자 I씨는 상속을 주장했다. 어머니가 유언장에 정확한 주소를 쓰지 않고 ‘○○동에서’라고 행정구역 명만 기재한 게 문제가 됐다.
이어진 소송에서 1, 2심은 H씨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민법 제1066조 1항 규정에 따라 유언자가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모두 자서하고 날인해야만 효력이 있고, 자서(自書)가 필요한 주소는 반드시 주민등록법에 의해 등록된 곳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으로서 다른 장소와 구별되는 정도의 표시를 갖춰야 한다’며 ‘이 유언장은 주소의 자서가 누락돼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나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유언장의 효력이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최근 이러한 유언장 관련 분쟁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분쟁이 빚어질 때마다 대법원은 ‘민법이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므로 민법에서 정하는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아무리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는 판결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날인이 돼 있지 않거나 날짜, 주소 등이 제대로 기재되지 않은 자필 유언은 무효로 본다. 전문가들은 사망 후 자식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는 걸 방지하려면 생전에 유언장 작성 요령을 숙지해 법적 요건에 맞는 유언을 남겨야 한다고 조언한다(상자기사 2 참조).
부모가 돈이 없어도 법적 다툼은 발생한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부모가 자녀에게 부양료 지급을 요구하는 부양료 지급 청구 소송이 대표적이다. 우리 민법 제947조에 따르면 직계비속인 자식들은 직계존속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 1955년 민법 제정 당시부터 있었으나 사실상 사문화 상태였던 이 조항이 최근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다퉈지는 분위기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2003년 127건이던 부양료 지급 청구 소송은 2013년 250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자식을 상대로 부양료를 요구하는 부모 가운데 상당수는 자녀 부양 과정에서 재산을 모두 써버린 이들이다. 2012년 2월 한 어머니가 아들을 상대로 제기한 부양료 지급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아들은 어머니에게 매월 6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면서 ‘아들은 안정된 직업과 재산을 갖고 있으며, 그 기반이 상속에서 비롯됐다. 반면 어머니는 수입과 재산이 없어 곤궁하다’고 이유를 들었다. 김상용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처럼 평생 자식 뒷바라지를 하고 재산까지 모두 물려준 뒤 생활비가 없어 고통받는 부모가 적잖다”며 “자식에게 재산을 준다고 훗날 자식들이 노후를 책임져주는 게 아닌 만큼 재산 증여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족 소송은 변호사업계 ‘블루오션’
상속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 다툼이 법정으로 향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개인 변호사는 고액의 수임료를 부담하기 어려운 중산층, 서민을 대상으로 관련 업무를 확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최근 증가하는 가족 간 ‘극한 소송’의 배후에 변호사 수 급증을 맞은 우리 법조계의 현실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우리나라에 2만 번째 변호사가 탄생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1990년부터 2013년까지 소속 회원들이 수임한 소송 건수와 변호사 수 증가 추이를 분석한 결과, 사건 수가 6만9878건에서 25만1655건으로 260.1% 늘어나는 동안 변호사 수는 1253명에서 1만476명으로 736.1% 늘었다. 이에 따라 서울에서 활동 중인 변호사 한 명의 연간 평균 수임사건 수는 2009년 32.8건에서 지난해 24건으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 간 분쟁은 법조계의 ‘블루오션’일 수 있다.
법률 환경 변화도 가족 간 소송전을 부추긴다. ‘2014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3년 접수된 11만5292건의 이혼 사건 중 결혼 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가 3만2433건으로 전체의 28.1%를 차지했다. 이에 대해 박현정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는 “최근 법원이 재산 형성에 대한 배우자의 기여를 높이 평가하는 추세다.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한 전업주부의 경우 배우자 사망 후 상속으로 받는 돈보다 이혼을 통해 재산분할로 받는 돈이 더 많을 수 있다. 최근에는 연금까지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돼 황혼이혼 소송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의 경우에도 일단 소를 내면 얼마라도 돌려받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때문에 가족 간 법률분쟁을 막으려면 ‘사전예방’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상용 교수는 “경제적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한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가족 간 소송이 남의 일이 아니다. ‘가족끼리인데 뭘’ 하며 가벼이 여기다 가족이 풍비박산 나는 일을 막으려면 재산 증여 전, 사망 전 철저히 법적 요건을 따져 분쟁 여지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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