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현대인의 소통 창구로 자리매김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독되면 마음의 병을 얻게 돼 주의가 필요하다.
놀라운 건 두 사람이 단지 SNS에서만 친구일 뿐 실제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은 SNS를 통해 알게 된 사람과 얼마든지 현실에서의 친구처럼 교제하고 우정도 느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SNS를 통해 질투 감정을 느끼고 실제로 친구를 음해하는 행동까지 보일 수 있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부각했다.
한편 SNS에서 연예인이나 유명한 일반인을 사칭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해 논란이 되고 있다. 1년 전엔 한 여고생이 SNS를 통해 접한, 일면식도 없는 한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와 예쁜 얼굴을 찍은 사진을 마치 자신의 모습인 양 도용하고 사진 속 주인공을 사칭해 SNS 활동을 벌이다 경찰에 잡힌 경우도 있다. 이는 상대적 박탈감과 질투, 선망의 감정이 잘못된 행위로 이어진 사례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왜 SNS에 빠져들고, 그 결과 마음의 병까지 얻게 될까.
실시간 중계되는 ‘자랑질’에 멍드는 마음
첫째, SNS가 누구나 원하면 볼 수 있는 개방형 창구이기 때문이다. 보지 않고 몰랐다면 느끼지 않았을 부러움, 선망, 질투의 감정을 SNS를 통해 느끼는 경우가 늘었다. 과거에는 친구의 대학 합격 소식을 누군가로부터 건너 전해 듣는 수준이었고 마음속으로 질투를 느꼈을지언정 친구의 불행까지 바라진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SNS에 친구가 자랑스럽게 올린 합격통지서를 원하지 않아도 보게 된다. 자신의 고통을 배려하지 않은 친구의 자랑 행위를 마음의 준비 없이 접하면서 박탈감이 극대화하는 것이다.
또한 예전에는 부자 친구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소식이나 명품 옷과 가방을 걸치고 돈을 펑펑 쓴다는 얘기를 소식으로만 전해 들었다면 이제는 SNS를 통해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 부자 친구의 화려한 외모나 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이를 보는 이들의 질투심은 끓어오른다. 이와 동시에 자신의 모습은 더욱더 초라하게 느껴진다. 과거엔 크고 좋은 집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기에 추측만 남발했다면 지금은 SNS를 통해 실시간 중계 수준으로 남의 집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고통도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둘째, SNS는 문자언어적 의사소통만 가능하기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간의 대화 방식은 언어적 의사소통과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결합된 형태로 이뤄져 있다. 말을 주고받는 것 외에 표정, 몸짓, 자세 등의 방식이 합쳐져 의사소통이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SNS는 언어적 수단, 그중에서도 음성이 아닌 문자언어로만 소통이 이뤄지므로 속마음과 진짜 감정을 알기가 더욱 어렵다. 개인이 SNS에 올린 글과 사진을 보고 다른 사람이 좋다는 표시나 댓글을 달지만 사실 속으로는 엄청난 시기, 질투, 비난, 음해를 하고 있음을 그 대상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혹여 나중에라도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크나큰 심리적 상처와 배신감을 느낀다. 이 경우 SNS에 대한 공포증까지 생길 수 있다.
셋째, SNS는 조작 가능한 거울이기 때문에 현대인은 거짓된 설정에 피해를 입게 된다. 거울은 자신을 비추는 도구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깨끗하고 단정해 보이면 자신감을 얻고, 그렇지 못해 피곤하거나 어두워 보이면 새롭게 용모를 가꾸거나 현재 생활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SNS는 다른 사람이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좋은 모습, 밝은 모습, 제일 멋져 보이는 사진들과 얘기로만 꾸미게 된다. SNS라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마치 자신의 전부인 양 조작하게 되고 부작용이 따르는 것이다.
넷째, SNS는 착각하기 쉬운 통로이므로 현대인이 마음의 병을 얻기 쉽다. SNS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그 아래 무수히 달린 댓글을 접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반대 경우도 있다. 악성 댓글을 접하면서 괴로워하다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수많은 사람이 항상 자신만 지켜보며 음해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들이 별다른 의도 없이 배설하듯 쏟아놓은 비난과 욕설을 읽으면서 어느새 화가 난 채 무서운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며 죽이려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엿보고 있다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 SNS를 건강하게 이용하려면 다음과 같은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첫째, 대면 대화를 나눈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확장하는 도구로 SNS를 이용하자. 인간관계에서 SNS는 결코 제1의 소통 수단이 될 수 없다. 건전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싶다면 SNS를 제2의 수단, 보조적인 의미로 평가절하해야 한다. 좀 더 정확하고 의미 있는 의사소통은 가장 기본적인 대화 방식인 대면 대화로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최소한 전화통화를 하면서 음성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둘째, SNS에 중독되지 않게끔 지속적으로 다짐해야 한다. SNS 중독성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예견돼왔고, 앞으로도 가장 우려되는 점이다. SNS에 재미를 느낀다고 할지라도 지나치게 빠져서 이에 집착하는 삶을 산다면 일상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에너지는 모두 소진되고 삶은 피폐해질 것이다.
셋째, SNS를 통해 알게 돼 친구 또는 연인으로 발전한 사람의 실제 모습은 SNS에서와는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하자. 이것이 어렵다면 자신에게 반문해보라. 나는 SNS에서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눌 때 얼마나 솔직한가. 우리는 보통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고 사귀는 과정에서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며 점차 솔직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오래 알고 지내는 것이 상대방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인 것이다. 하지만 SNS에서의 만남은 나 자신과 상대방 모두 보여주고 싶은 일부분으로만 연결돼 있어 진정성이 부족하다. 비록 자신은 솔직했다고 하지만, 상대방도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넷째, SNS를 통해 드러난 멋지고 화려하며 행복한 모습이 그들 인생의 전부가 아닌 극히 일부임을 잊지 말자. 그들은 인생의 특별한 순간과 기억하고 싶은 모습들을 SNS에 올려놓을 뿐이다. 사람은 대부분 그것을 보면서 ‘이 사람은 매일 이처럼 행복하고 화려하게 산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자신을 한없이 비하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질투와 적개심을 불태운다. 우울과 분노가 동시에 교차하는 것이다.
만약 부러운 삶의 단면을 타인의 SNS에서 접하게 됐다면 ‘이 사람은 자신의 특별한 순간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어서 올린 것이다. 그리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덤덤히 넘어가자. 계속 보기가 어렵다면 SNS를 끄고, 내 할일을 하러 가자. 또 만약 타인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멋진 자신의 모습을 SNS에 올려놓고 싶다면 과시 욕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 다음 신중하게 행동하자. 누군가 나를 엿보면서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