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류중일 감독(가운데)이 2014 인천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24인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춘 대만 대표팀, 프로선수는 아니라지만 2~3년 후 요미우리 에이스로 성장할지 모르는 유망주가 많은 일본 대표팀이 있긴 해도 리그 최고 선수로 구성한 대한민국 대표팀이기에 팬들 눈높이는 무조건 금메달이다.
야구는 이제 올림픽 종목이 아니기에 리그 주축 선수가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아시안게임뿐이다. 또한 지금까지 국제 대회에서 거둔 뛰어난 성적은 프로야구 인기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그만큼 야구 대표팀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팀별 병역 미필 선수 안배 논란
인천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사령탑 류중일 삼성 감독은 선수 선발 전 “올 시즌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들을 뽑겠다. 병역과 상관없이 최고 선수들과 함께하겠다. 내야수는 두 가지 이상 포지션이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를 뽑겠다”는 3가지 원칙을 말했다.
그런데 이 3가지 원칙에서 여러 잡음이 나왔다. 2014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소속 클럽에서 꾸준히 뛰지 못하는 선수는 선발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가 스스로 그것을 무너뜨린 ‘엔트으~리’ 때문에 조기 낙마한 전례를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7월 28일 류 감독은 한국야구위원회 기술위원회 위원(김인식, 김재박, 이순철, 차명석, 김병일)들과 장시간 격론을 벌였다. 한 기술위원은 “포수, 투수 수, 그리고 내야 한 자리를 놓고 많은 논의를 했다. 그래서 시간이 예정보다 많이 길어졌다. 직접 그라운드에서 싸우는 감독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한 엔트리였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이날 24명 최종 엔트리를 직접 발표했다. 그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 기자실에 들어서며 수많은 취재진과 카메라를 보고 “큰일 났다. 큰일 났어”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평소 소탈한 성격과 달리 공식 인터뷰에서 단답형의 원론적 답변만 했다. 누가 봐도 큰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최종 엔트리였다. 그것은 류 감독이 스스로 정한 원칙과도 부딪혔다.
병역 미필 선수 안배라는 논란에 휩싸인 롯데 황재균(위)과 한화 이태양.
하지만 리그 최고 선수 대신 병역 미필 선수를 뽑은 포지션이 논란의 중심이었다. KIA 나지완(외야수), 두산 오재원(내야수)은 뛰어난 성적을 보여주고 있지만, 같은 포지션에 삼성 최형우, 넥센 서건창이 있었다. 또 투수이자 아직 병역 미필인 한화 이태양과 LG 유원상, 삼성 차우찬도 과연 대표팀에 뽑힐 만한 수준인지 의문이 따랐다. 3루수는 홈런 23개를 기록하고 있는 삼성 박석민을 놔두고 역시 병역 미필인 롯데 황재균을 뽑았다. 류 감독은 “박석민은 손가락 통증을 계속 갖고 있는 선수”라며 황재균 선발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박석민은 시즌을 정상적으로 뛰고 있다.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인 서건창의 탈락도 이변이었다. 내야는 ‘멀티플레이어 선발’ 원칙을 지키느라 타격과 수비 모두 정상급인 KIA 2루수 안치홍이 2차 엔트리에서 떨어졌다. 거센 후폭풍이 뒤따랐다. 결국 최종 엔트리에서 역시 멀티포지션이 되지 않는 2루수 서건창과 한화 정근우가 모두 제외됐다. 정근우는 국제 경험이 풍부한 내야의 리더감이었고, 서건창은 출루율이 매우 높은 대표팀 1번 타자 후보였다. 한 해설위원은 “멀티플레이어만 뽑다 보니 유격수 강정호(넥센)를 제외하고 누가 주전 2루수고 3루수인지 잘 모르겠다”고 평했다.
포수 강민호(롯데) 역시 류 감독이 제시한 원칙과 부딪힌다. 강민호는 8월 6일까지 78경기에서 삼진 75개를 당했다. 타율은 0.215, 득점권 타율은 0.148로 극도의 부진을 보이다 2군으로 떨어졌다.
국제 대회 경험이 풍부하고 지난해 ‘4년 75억 원’의 대형 계약을 맺은 최고 포수지만 올 시즌 타격은 최악의 성적을 보인다. 물론 포수는 수비가 더 중요한 포지션이다. 그러나 강민호는 포수 중에서도 공격 능력이 뛰어나 그 가치가 높은 유형이었다. 박경완 SK 2군 감독은 현역 시절 안타를 단 1개도 못 쳐도 상관없다고까지 했다. 수비 능력이 워낙 좋고 상대 타자의 약점을 잘 파고들어 투수 능력을 극대화하는 최고 포수였다.
강민호는 그동안 박경완, 진갑용 등 수비 능력이 빼어난 베테랑 포수의 백업으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사실상 국제 대회 붙박이 주전 포수는 이번 아시안게임이 처음이다. 스스로 입증해야 할 숙제가 많은 상황이다.
여러 논란이 따르면서 선발된 선수들도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화 이태양은 선발 직후 7월 29일 넥센전에서 2.2이닝 동안 8실점했다. 삼성 차우찬은 LG전에 구원 등판했지만 장원삼의 승리를 지키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표 선수 가운데 투수들이 연이어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무리 삼성 임창용과 LG 봉중근은 같은 날 함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과 대만 투수들 요주의
야구는 특급 선수가 언제든 최악의 부진을 보일 수 있는 종목이지만 이번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는 ‘최고 선수를 뽑은 팀이 아니다’라는 시선이 워낙 많다. 24명 선수와 류 감독이 자칫 이러한 소모적인 논란을 의식하는 순간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스포츠동아’ 이효봉 해설위원은 “투수들이 많이 부진하다고 하지만 아시안게임 때 리그가 중단되기 때문에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컨디션 조절을 잘하면 문제없을 것으로 본다. 대비해야 할 이들은 역시 일본과 대만 투수들”이라고 말했다.
LG 양상문 감독은 “일본에는 자신이 원하는 프로 팀에 가기 위해, 혹은 프로 2군 선수가 될 바에야 평생직장이 보장되는 대기업에서 뛰겠다는 생각으로 사회인 팀에 입단하는 실력 있는 선수가 많다. 프로에도 사회인 야구 출신이 굉장히 많다”고 설명했다.
포크볼로 메이저리그를 평정했던 노모 히데오도 사회인 야구 출신이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오승환(한신)에게 홈런을 날리며 한국에 굴욕적인 패배를 안겼던 조노 히사요시는 당시 혼다 소속이었지만, 2010년 요미우리에 입단해 신인왕까지 받았다. 이미 합숙훈련에 돌입한 일본 대표팀은 수준급 좌완 투수가 많이 포진해 있다.
대만의 경우 자국 리그를 중단하지 않아 정상급 프로 선수가 모두 참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외파 13명을 소집했다. 주로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지만 역시 경계해야 한다.
인천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류중일호’는 이처럼 여러 논란 속에서 출범했다. 류현진(LA 다저스)과 윤석민(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트리플A 노폭 타이즈), 그리고 이승엽(삼성)이 없는 대표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