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1개국 젊은이가 한국인 게스트와 함께 다양한 사회·문화적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 출연자들.
종합편성채널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을 향한 반응이 꽤 뜨겁다. 7월 7일 첫 방송 시청률 1.8%(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한 뒤 꾸준히 상승해 5회에서는 4%까지 치솟았다. 7월 리서치 전문회사 한국갤럽이 발표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순위에도 이름을 올렸다. JTBC 홍보국 관계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자의 반응도 엄청나다. 방송이 있을 때마다 각종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에 랭크되고, 이 프로그램 SNS 가입 회원 수도 1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체감 인기가 높다”고 밝혔다. 이렇듯 인기가 뜨거운 ‘비정상회담’은 전현무, 유세윤, 성시경 등 MC 3명이 각국을 대표하는 11명의 외국인 남성 패널과 한국 청춘의 고민거리를 놓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청춘의 고민 놓고 자유로운 토론사자성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유식자’ 미국인 타일러 라쉬를 비롯해, 보수적이고 반듯한 모습을 보여 ‘터키 유생’으로 통하는 에네스 카야, 2008년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올해의 탐험가’로 화제를 모은 영국인 제임스 후퍼 등 첫 회 방송부터 뚜렷한 캐릭터를 보여준 출연자들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어를 조리 있게 구사하는 외국인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9년 KBS 2TV에서 방송한 ‘남희석 이휘재의 한국이 보인다’의 경우, 국토순례에 나선 중국인 보쳉, 이탈리아인 브루노 콤비가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여성이 대거 출연해 토크를 펼친 KBS 2TV ‘미녀들의 수다’도 2006년부터 2010년까지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랑받았다. 비교적 최근에는 병영체험을 다룬 MBC ‘일밤’의 ‘진짜사나이’에 출연하는 호주 남자 샘 해밍턴과 캐나다 국적 헨리가 화제를 모았으며, MBC ‘나 혼자 산다’ 역시 프랑스 청년 파비앙의 독거생활을 카메라에 담아 큰 관심을 모았다. 한국인이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 속에서 외국인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은 낯선 문화에 적응하느라 진땀 빼는 외국인의 에피소드를 단순히 나열하는 과거 예능프로그램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게 특징이다. 출연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할 뿐 아니라,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히 높다. 이 덕분에 프로그램 안에서 출연자들은 단순한 수다가 아니라 수준급 토론을 펼칠 수 있다.
다르다는 이유가 곧 재미JTBC ‘비정상회담’을 진행하는 ‘국경 없는 청년회’ 사무총장 유세윤(가운데), 의장 전현무(왼쪽), 성시경.
1회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하는 청춘, 2회 혼전 동거, 3회 꿈과 현실 사이의 방황 등을 주제로 가나, 미국, 벨기에, 영국, 이탈리아, 일본, 중국, 캐나다, 터키, 프랑스, 호주 등에서 온 11명의 출연자는 꽤 살벌하고 치열한 토론을 펼쳤다. ‘비정상회담’ 이전 한국 예능프로그램이 한국이라는 견고한 세계에 부딪히는 외국인의 좌충우돌을 통해 한국과 외국으로 철저히 이분화된 세계관을 보여줬다면, ‘비정상회담’은 다양한 세계관이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문제 해결 방식을 균등하게 드러냄으로써 그 차이를 존중하는 다원화된 세계를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출연진 각자의 서로 다른 가치관을 듣고 있으면 ‘한국에서 살아가는 어느 개인의 고민’이 동시대 청년이 공통적으로 사유하는 고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때로는 문화 차이가 소통의 벽이 되기도 한다. 중국인 출연자 장위안은 여러 차례 뚜렷한 중화사상이나 반일감정을 드러냈다. 제작진은 이 내용을 유머러스하게 채색해 예능과 어울리게 접목했다. ‘국경 없는 청년회’라는 거창한 문구를 걸고 사무총장 유세윤, 의장 성시경, 전현무 등 각각 직함을 줘 MC들이 “우리는 국제 평화 유지와 국제 안전성 보장에는 관심 없지만 전 세계 청년의 평화와 미래를 위해 뭉쳤다”고 말하게 하는 식이다. 결국 프로그램 안에서 장위안이 “일본은 싫지만 타쿠야(일본인 출연자)는 좋다”고 말하게 된다.
출연자들은 각국을 대표하는 정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정상(non-submit)이고, 또 다른 문화권을 기준으로 볼 때 때로는 정상이 아닐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비정상(abnormal)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비정상회담’은 11개 시선, 그리고 한국의 시선을 동등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재미있으며, 다르다는 이유로 모두가 같은 곳이 바로 ‘비정상회담’이다.
인터뷰 | 터키인 에네스 카야
한국은 형제의 나라 외치는 ‘보수 끝판왕’
| ‘보수 끝판왕’ 한국인보다 더 보수적이다. 미성년 자녀의 독립, 혼전 동거,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 모두를 결사반대하는 터키인 에네스 카야(31·사진) 얘기다. 그는 JTBC ‘비정상회담’ 세트장에서 가장 끝자리에 앉아 가장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출연자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만 15세 자식을 독립하게 해도 되는지에 대한 찬반토론을 펼친 첫 회, 그는 “딸이냐 아들이냐에 따라 (의견이) 달라질 것 같다”라는 MC 유세윤의 말에 손뼉으로 맞장구치고, 호주인 다니엘의 “준비가 돼 있다면 (독립해도) 괜찮다”라는 말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급기야 “어린아이에게 나가 살라고 하는 부모는 자식을 버리는 것”이라고 해 어린 나이에 독립한 다니엘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터키 유생’이라는 별명을 얻은 카야는 이에 대해 “비록 한국 사회에 많은 변화가 생기긴 했지만 대다수 한국인은 나의 보수적인 생각에 공감하는 것 같다”며 “‘비정상회담’ 출연 후 거리를 지나갈 때 알아봐주는 사람이 늘었고, 모국 터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아버지 권유로 한국 대학에 진학하면서 우리 땅을 밟은 그는 아직도 한국에 온 날짜를 정확히 기억한다. 2002년 9월 22일이다. 이후 12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그는 현재 터키와 한국을 오가며 무역업에 종사하는 틈틈이 방송활동도 한다. 처음에는 한국 특유의 술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웠고 지금도 술은 잘 마시지 않는 편이지만, 언어나 생활방식 등에는 금세 적응했다는 그는 “한국은 내게 형제의 나라, ‘제2의 고향’보다 더 가까운 나라”라고 밝혔다.
“2007년부터 방송활동을 하고 있어요. 제가 터키 사람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죠. 부담을 느낄 때도 있지만 제게 터키어로 인사하는 한국인이 늘고, 터키에 대해 배우고 싶다거나 터키를 찾아가보고 싶다고 말하는 분이 많아져 자부심을 느껴요.”
‘비정상회담’을 통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출연자들을 알아가는 것이 좋다고 밝힌 카야는 “방송활동의 목표가 ‘형제국’ 하면 터키, 터키 하면 ‘형제의 나라’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인 만큼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