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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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지혜 쇠젓가락 이렇게 좋을 수가

젓가락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입력2014-07-14 14: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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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지혜 쇠젓가락 이렇게 좋을 수가
    우리에겐 하루에 세 번씩 사용하는 특별한 도구가 있다. 누군가는 칫솔을, 또 누군가는 거울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자동차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겐 커피를 담은 컵일 수도 있다. 솔직히 세 번은 스마트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적고 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다. 우리 일상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남녀노소, 빈부 상관없이 누구나 쓰는 보편적인 도구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젓가락이다. 하루 세끼를 다 챙겨먹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하루 세 번씩 젓가락을 만난다.

    세계적으로 음식을 먹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그중 하나가 손으로 쥐고 먹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나이프와 포크,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젓가락을 사용해 먹는 것이다. 우리에게 밥을 먹는다는 건 젓가락질을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젓가락이라고 하니 중국집이나 치킨집에 배달을 시키면 여러 개씩 가져다주는 공짜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한 번 사면 평생 쓸 수도 있다는 한 벌에 몇천 원 하는 스테인리스 젓가락? 이런 것이 먼저 떠오른 사람에겐 ‘젓가락은 싸다’는 인식이 강할 것이다.

    하지만 젓가락이 싸다는 건 편견이자 오해일 뿐이다. 비싼 젓가락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은수저를 떠올려보자. 결혼할 때 은수저 세트를 장만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필수 혼수 품목이다. 물론 은수저로 밥을 먹은 기억이 있는 이는 드물 것이다. 은제품은 관리가 여간 번거롭지 않아 일상에서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느 구석에서 먼지가 쌓여 있을 은수저를 꺼내 과감히 써보는 용기를 내볼 필요가 있다. 은수저를 혼수로 챙기는 건 귀하고 비싼 은수저로 평생 먹을거리 걱정 없이 호사를 누리며 잘살라는 의미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겁고 번거롭지만 정교함



    한국인의 지혜 쇠젓가락 이렇게 좋을 수가

    다양한 재료와 디자인 기법을 사용한 각양각색 젓가락들.

    비싼 젓가락 하면, 방짜유기 그릇에 어울릴 놋젓가락도 빼놓을 수 없다. 전통 장인이 제대로 만든 방짜유기는 값이 비싸지만 기능이 좋고, 결정적으로 식탁을 더욱 우아하게 만드는 데 손색없다.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어떤 식기에 담아서 먹느냐가 중요하듯, 어떤 젓가락을 쓰는지도 중요하다.

    젓가락은 3000년 전 중국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젓가락 문화권에 속하는 한국, 중국, 일본 가운데 유독 우리만 쇠젓가락을 쓴다. 해외에는 상아로 만든 젓가락이 있고, 별의별 비싼 목재로 만든 젓가락도 있지만 금속으로 젓가락을 만들 궁리는 우리밖에 안 했다. 사실 금속 젓가락은 무거워 사용하기 번거롭지만 그 대신 정교함이 있다.

    젓가락은 한 나라의 식문화와 연관 깊은데, 우리나라는 온 식구가 좁은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다. 각자 접시에 덜어 먹는 게 아니라, 반찬을 공유한다. 찬을 흘리지 않으려면 더 섬세하고 정확한 젓가락질이 요구된다. 이래서 금속 젓가락이 나왔다.

    게다가 우리나라엔 국물 음식과 절임 음식이 많다. 나무젓가락을 쓰면 금세 음식 냄새나 색깔이 배 시각적으로나 위생적으로 좋지 않다. 우리나라의 쇠젓가락은 우리가 쌓아온 삶의 지혜이기도 한 셈이다.

    젓가락 예찬론의 근거로 가장 많이 제시되는 건 젓가락을 쓸 경우 30여 개 관절과 50여 개 근육이 움직여 지능 발달, 집중력 개발, 근육 조절 능력 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로버트 크라우스 교수팀은 기억하기 힘든 단어를 상기하는 데 손동작이 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들도 한국인의 손재주가 모바일 시대에도 빛을 발할 것이며, 미래에 쓰임이 많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자녀 교육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열정을 자랑하는 한국이기에 쇠젓가락을 쓰는 문화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우리 식문화가 서구화하고 포크와 나이프를 쓸 일이 많아진다 해도 아이 두뇌 발달에 좋다는 젓가락질을 외면할 부모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젓가락질이 서툰 아이를 위해 손잡이를 고리처럼 붙인 어린이용 젓가락이 잘 팔리는 것도 젓가락질을 가르치겠다는 부모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여하튼 지능 발달이나 치매 예방 등 좋은 건 다 갖다 붙일 수 있는 만능도구 같은 게 바로 젓가락이다. 그중에서도 쇠젓가락이 최고다. 나무젓가락보다 사용하기 더 힘들고, 그래서 더 많은 관절과 근육을 쓰게 되니 말이다.

    서울 부암동에는 ‘저집’이라는 젓가락 갤러리이자 고급 젓가락 매장이 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해외 순방 선물로 이곳 젓가락을 선택했다는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 발길이 많아진 곳이다. 나무에 옻칠을 한 것부터 자개를 박거나, 사용자 이름을 새긴 것 등 다양한 제품이 있다. 공예 장인이나 건축가와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을 한 젓가락도 있다. 이곳에 가면 식탁의 존재감 없는 조연 같은 젓가락이 순식간에 빛나는 주연이 된다. 호사스럽고 화려하면서 우아하기까지 하다.

    개인 젓가락 보관해두는 식당

    한국인의 지혜 쇠젓가락 이렇게 좋을 수가

    좋은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은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한 방법이다.

    물론 좀 예쁘다 싶으면 가격이 몇만 원대가 되지만, 나 자신을 위한 일상의 사치라 여긴다면 그리 부담 가는 것도 아니다. 몇십만 원 하는 은수저 값에 비하면 저렴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곳이 아니더라도 전통 공예품을 파는 곳에서 고급 젓가락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젓가락은 우리가 쓰는 도구 중 가장 귀하게 다뤄야 할 것이기도 하다. 입 속에 들어가고, 심지어 쪽쪽 빨기까지 하지 않나. 그래서 고급 일식집 중에는 개인 전용 젓가락을 보관해두는 곳도 있다. 자신이 사용할 젓가락을 자기 이름이 새겨진 전용 젓가락 보관함에서 꺼내면 귀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 든다. 단골을 만드는 가장 매력적인 방법이 되기도 한다. 전용 젓가락을 보관해둔 곳이 있는데, 어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으랴.

    원래 식당이란 곳은 남이 쓰던 식기와 수저를 사용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위생적으론 문제없어도 심리적으론 이를 꺼려하는 이가 있고, 좀 극성스러워 보일지라도 자기 전용 수저를 갖고 다니는 이도 있다. 아직은 극소수이고 남들한테 유난스럽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 또한 자기만의 선택이자 자기가 정한 일상의 가치이며 기준이다. 그러니 누가 주변에서 그런다면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자. 그리고 젓가락에 좀 더 신경 쓰자.

    누구나 다 같은 세끼를 먹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음식의 질이 다를뿐더러, 어떤 수저로, 어떤 환경에서 먹느냐도 다르다. 그렇다고 무조건 비싼 걸 먹자고 말하는 게 아니다.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일상을 좀 더 풍요롭게 꾸밀 줄 아는 사람이다. 멋을 아는 것, 그게 바로 삶의 질이다. 작지만 일상의 사치를 당신의 식탁 위, 젓가락에서부터 누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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