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프랭클린 J. 샤프터 감독의 ‘혹성탈출’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탈출이라는 제목과 달리, 주인공 테일러(찰턴 헤스턴)가 고난 끝에 얻어낸 결론이 뫼비우스의 띠에 갇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혹성탈출’의 원제는 ‘원숭이들의 행성’(Planet of the Apes)이다. 놀라운 점은 그 원숭이들이 지성과 이성을 갖춘 진화한 유인원이라는 것이다. 미개인으로 전락한 인간, 그런 인간을 동물 취급하는 이상한 유인원으로부터 테일러는 도망치려 한다. 그런데 불시착한 행성이 지구다. 테일러는 공간적으로 다른 행성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뛰어 미래 지구에 왔다. 인간이 달나라에 도착하던 그 시절, 인류 지성에 대한 낙관론은 가히 최고였다고 할 수 있다. ‘혹성탈출’은 그 유토피아적 자만심을 건드렸다.
2011년 루퍼트 와이엇 감독의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리부트(reboot)’(전작의 연속성을 거부하고 시리즈를 새로 만드는 것)라는 영민한 선택을 보여줬다. 유인원이 지성을 갖게 된 까닭, 인류를 지배하게 된 이유 등을 허구적 상상력과 기술적 새로움으로 채워 넣은 것이다. 유인원 ‘시저’가 지성을 갖고, 인간에게 반감을 갖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을 통해 매우 흥미진진하게 재현됐다. 인류의 욕심이 인류의 파멸을 가져오게 되는 과정 역시 꽤나 설득력 있다.
올여름 개봉하는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은 우리에서 벗어난 시저와 유인원 무리의 10년 후 모습을 보여준다. 유인원들은 매우 기초적인 주거시설과 공동체를 조직해 살아간다. 반면 인류는 바이러스에 전염돼 개체 수가 형편없이 줄어든 상태다. 유인원은 진화하고 인류는 파멸함으로써 두 종 사이의 생활 격차가 그리 크게 차이나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흥미로운 것은 주요 갈등이 인간과 유인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갈등은 오히려 종 내에서 발생한다. 언어를 습득한 유인원 사이에서는 배신이 일어나고, 협잡도 발생한다. 지성을 갖게 된 유인원의 세계는 인간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인간에게 사랑과 증오를 모두 배운 시저는 평화가 최고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폭력적으로 착취당한 ‘코바’는 유인원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코바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고 유인원의 제1원칙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를 어기고 시저를 살해한다. 영화적으로 보자면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은 인간과 유인원의 싸움이 본격화할 3부로 가는 징검다리 구실을 한다. 본격적 갈등은 등장하지 않고 갈등의 씨앗이 여기저기 뿌려진 형국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 3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한 이모션 캡처의 사실감이다. 이모션 캡처는 배우 머리에 초소형 카메라를 씌우고 연기하게 한 뒤 눈동자, 눈썹, 심지어 모공 떨림까지 잡아내 컴퓨터 그래픽(CG)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이 덕에 유인원이 8할 이상을 차지하는 스크린에서 불편함이나 어색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모션 캡처 전문 배우가 된 앤디 서키스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농담처럼 매년 나오는 말이긴 하지만, 서키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는 날이 머지않은 듯싶다.
‘혹성탈출’의 원제는 ‘원숭이들의 행성’(Planet of the Apes)이다. 놀라운 점은 그 원숭이들이 지성과 이성을 갖춘 진화한 유인원이라는 것이다. 미개인으로 전락한 인간, 그런 인간을 동물 취급하는 이상한 유인원으로부터 테일러는 도망치려 한다. 그런데 불시착한 행성이 지구다. 테일러는 공간적으로 다른 행성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뛰어 미래 지구에 왔다. 인간이 달나라에 도착하던 그 시절, 인류 지성에 대한 낙관론은 가히 최고였다고 할 수 있다. ‘혹성탈출’은 그 유토피아적 자만심을 건드렸다.
2011년 루퍼트 와이엇 감독의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리부트(reboot)’(전작의 연속성을 거부하고 시리즈를 새로 만드는 것)라는 영민한 선택을 보여줬다. 유인원이 지성을 갖게 된 까닭, 인류를 지배하게 된 이유 등을 허구적 상상력과 기술적 새로움으로 채워 넣은 것이다. 유인원 ‘시저’가 지성을 갖고, 인간에게 반감을 갖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을 통해 매우 흥미진진하게 재현됐다. 인류의 욕심이 인류의 파멸을 가져오게 되는 과정 역시 꽤나 설득력 있다.
올여름 개봉하는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은 우리에서 벗어난 시저와 유인원 무리의 10년 후 모습을 보여준다. 유인원들은 매우 기초적인 주거시설과 공동체를 조직해 살아간다. 반면 인류는 바이러스에 전염돼 개체 수가 형편없이 줄어든 상태다. 유인원은 진화하고 인류는 파멸함으로써 두 종 사이의 생활 격차가 그리 크게 차이나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흥미로운 것은 주요 갈등이 인간과 유인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갈등은 오히려 종 내에서 발생한다. 언어를 습득한 유인원 사이에서는 배신이 일어나고, 협잡도 발생한다. 지성을 갖게 된 유인원의 세계는 인간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인간에게 사랑과 증오를 모두 배운 시저는 평화가 최고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폭력적으로 착취당한 ‘코바’는 유인원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코바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고 유인원의 제1원칙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를 어기고 시저를 살해한다. 영화적으로 보자면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은 인간과 유인원의 싸움이 본격화할 3부로 가는 징검다리 구실을 한다. 본격적 갈등은 등장하지 않고 갈등의 씨앗이 여기저기 뿌려진 형국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 3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한 이모션 캡처의 사실감이다. 이모션 캡처는 배우 머리에 초소형 카메라를 씌우고 연기하게 한 뒤 눈동자, 눈썹, 심지어 모공 떨림까지 잡아내 컴퓨터 그래픽(CG)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이 덕에 유인원이 8할 이상을 차지하는 스크린에서 불편함이나 어색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모션 캡처 전문 배우가 된 앤디 서키스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농담처럼 매년 나오는 말이긴 하지만, 서키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는 날이 머지않은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