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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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 꼬인 ‘대응정무’…분통 터진 민심

세월호 참사 청와대 연이은 실책…‘수첩 참모’만으로는 조력 못 받아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4-05-19 09: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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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텝 꼬인 ‘대응정무’…분통 터진 민심

    박근혜 대통령이 4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두 개의 장면이 있다. 먼저 1월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행된 신년 기자회견. “통일은 대박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우리 경제가 실제로 크게 도약할 기회라고 생각한다.” 메시지는 간결하고 강렬했다. 곧장 이어진 남북 고위급 접촉과 이산가족 상봉, 드레스덴 선언까지, ‘통일 대박론’은 1분기 정국의 최대 화두였다. “솔직히 무력감을 느낀다.” 오랜 기간 남북관계에 종사해온 한 야당 중진의원은 사석에서 기자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석 달 남짓 지난 4월 29일, 역시 청와대에서 열린 제19회 국무회의.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 가슴이 아프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첫 공식사과는 실종자 가족들은 물론 대다수 언론으로부터도 ‘간접사과’라는 비판을 받았다. 유족들의 반발에 대해 ‘유감’이라고 표현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은 기름을 끼얹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48%로 곤두박질친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공교롭게도 이날을 전후해 사흘간 실시됐다.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인식은 이제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 원인이 무엇이냐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유능한 청와대’와 ‘무능한 청와대’라는 두 얼굴이 사실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걸 인정해야 문제를 풀 단초가 열린다고 본다. 충분한 사전준비가 가능한 ‘작품’에는 강한 면모를 보이지만, 분초를 다퉈 결정해야 하는 사안에서는 계속해서 스텝이 엉키고 있는 것이다.”

    5월 중순 한 청와대 관계자가 남긴 이 말은 청와대 보좌진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돌이켜보면 통일 대박론 역시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디테일이 완벽하게 마련된 정책 이슈는 아니었다.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7글자에 담긴 정치적 파괴력을 간파해낸 ‘기획정무’의 결과물이라는 게 정치권 인사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반면 세월호 침몰 이후 대응과정에서 청와대가 보여준 연속적인 실책은 한마디로 ‘대응정무’의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것. 말 한마디, 동작 하나가 어떤 정치적 결과를 낳을지 동물적으로 판단해 즉각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능력의 부재라는 평가다. 이전 정부에서 대통령 정무수석을 지낸 한 인사의 말이다.

    통일 대박은 ‘기획정부’의 결과물



    “그간의 과정을 복기해보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눈에 띈다. 비판이 불거지면 대안이나 대책을 내놓는 데 최소 일주일은 걸린다는 점이다. 4월 17일 대통령의 진도실내체육관 방문이 긍정적인 평가를 얻지 못하자 국무회의 석상에서 사과하는 데까지 12일이 걸렸다. ‘받아쓰기 국무회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 뒤 ‘브레인스토밍 국무회의’를 준비하는 데도 열흘이 필요했다. 상황의 엄중함에 비해 피드백 속도가 너무 느리고 헐겁다.”

    문제는 피드백에 일주일을 소요하는 동안 청와대 정무기능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 참모들이 ‘완벽한 대안’을 만들겠다며 고심하는 동안 부정적 여론은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타고 빠르게 번져나간다. 앞서의 전직 대통령 정무수석은 “대통령의 모든 공개행사는 정무적 영향을 계산해 준비돼야 한다. 진도 방문에 앞서 ‘지금은 실종자 가족들과 정서적 교감을 나눌 타이밍’이라고 권하는 참모가 한 사람도 없었단 말인가”라고 되물었다.

    스텝 꼬인 ‘대응정무’…분통 터진 민심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세월호 사고 희생자 가족들이 5월 9일 오후 경찰에 가로막혀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 앉아 있다.

    눈길은 정무보좌 기능을 책임지는 박준우 정무수석에게로 쏠린다. 외무고시 출신으로 35년 경력을 모두 외교부에서 보낸 박 수석은 지난해 임명 당시부터 국회와의 의사소통 등 해당 직책에 필요한 경험과 전문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애초에 날카로운 정무판단이나 적극적 행보를 기대하고 임명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임명된 주광덕 정무비서관의 경우 검사 출신 법조인으로, 18대 국회의원을 지내긴 했지만 ‘여의도에서 잔뼈가 굵은 정무통’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한계가 청와대 참모들의 행동이나 발언에서까지 부정적 여파를 낳고 있다는 점. 대표적인 경우가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발언이 몰고 온 일련의 논란이다. 4월 23일 민경욱 대변인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발언을 전하면서 처음 불거졌지만, 이후 실무부처 매뉴얼 지휘체계에 국가안보실이 명기돼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자 5월 1일 청와대가 다시 한 번 “매뉴얼 개정이 늦은 것일 뿐 사실과 다르다”고 선을 긋고 나섰다. 전직 대통령 정무수석을 지낸 또 다른 인물의 평가다.

    “법적으로는 청와대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강조해 얻는 실익과 ‘청와대가 자꾸 책임을 피하려 한다’는 인상이 주는 정무적 손실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미 호되게 비판받은 발언을 일주일 뒤 재차 강조하는 건 내 기억으로는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본 적이 없다. 대변인이나 국가안보실이 정무 담당 참모들의 조력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방증이라고 본다.”

    대국민사과 이후 민심은 어떻게?

    정치권 인사들과 정부 당국자들이 보는 원인은 크게 둘로 엇갈린다. 하나는 박 대통령 본인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자신감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국회 경력에 ‘선거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했던 위기 돌파 경험까지, 정무 판단은 본인들이 제일 뛰어나다는 생각이 정무보좌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한 근본 원인 아니냐는 견해다. 한 여당 중진의원은 “정치 경력이 없는 정무수석 임명은 그게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촌평했다.

    다른 하나는 비공식 보좌그룹에 지나치게 무게가 실린 탓이라는 관점이다. 특히 정부 실무부처 당국자들로부터 제기되는 이런 견해는 기획정무와 대응정무에서 ‘실력 차이’가 나타나는 원인이 무엇인지 가늠케 해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동안 선 굵은 기획정무 카드 중 상당수는 대통령이 자문하는 원로그룹이나 청와대 비서진 ‘문고리 3인방’을 통해 나왔음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

    이들 카드가 연이어 성공함에 따라 비공식 보좌그룹은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지만, 그만큼 정무 담당 청와대 공식조직의 몫이 제한되면서 이들이 전담하는 대응정무에 힘이 빠졌다는 시각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좋게 말하면 대통령의 신뢰고 나쁘게 말하면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이다. 자신의 생각을 제시하고 관철할 ‘밑천’이 있는 참모가 드문 게 문제”라고 촌평했다. 정무 기능의 공식화야말로 약한 고리를 복구할 첫 번째 과제라는 것이다.

    위기의식을 느낀 청와대는 세월호 침몰 한 달을 맞아 새로운 대국민사과와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 대책을 내놓기 위해 그간 총력을 기울여 준비해왔다고 청와대 당국자들은 전한다. 국무총리 경질과 개각 등 지방선거 일정과 맞물린 ‘쇄신 조치’도 마련 중이다. 기자회견 이후 민심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까. 청와대는 이제까지와 다른 성적표를 받을 수 있을까.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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