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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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율 낮을수록 연금 매력은 ‘쑥’

연금 자산의 현재 가치 급상승…소비와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도 급증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4-05-12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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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자율 낮을수록 연금 매력은 ‘쑥’

    올바른 공무원연금법 개혁 공동투쟁본부는 2008년 11월 22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와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무원, 교원, 공공부문 노동자 총궐기 대회’를 가졌다.

    “요즘 인기 있는 시댁은 부자가 아니다. 물론 부자 시댁도 좋지만 공무원, 교사, 군인 등 연금이 있는 시부모를 더 선호한다.”

    얼마 전 저녁 술자리에서 들은 얘기다. 재산보다 연금이 더 매력적인 조건인 이유가 궁금했다. 부자 시댁은 돈으로 위세(?)를 떨고, 형제자매 간 유산 문제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경쟁이 존재하지만, 연금 있는 부모는 그럴 문제가 적다는 것이다. 예비 남편의 부모 재산까지 결혼 조건이 된 세상에서 이제 연금도 한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공무원연금의 매력이 높아진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예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서 통계 하나를 보자. 공무원 퇴직연금은 20년 이상 근무해야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1982년부터 2012년까지 20년 이상 재직하고 퇴직한 공무원 가운데 연금 선택 비율을 보면 뚜렷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82년부터 98년까지 연금 선택 비율은 50%가 되지 않았다. 2명 중 1명은 일시금을 선택했다. 99년부터 이 비율이 본격적으로 역전되기 시작해 2012년 기준으로 약 93%가 연금을 선택하고 있다. 특히 2005년 이후부터는 단 한 해도 90%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그래프 참조).

    당장 만족 ‘탈러의 사과 실험’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연금 선택 비율이 높아진 점은 단순히 수치 이상의 많은 것을 의미한다. 사실 연금은 현재 시점에선 그리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다. 인간은 현재보다 미래 가치를 더욱 할인해보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행동재무학자 리처드 탈러 교수의 이름을 딴 ‘탈러의 사과 실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탈러는 사과 선택에 관한 간단한 문제를 만들었다.



    다음 중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① 1년 후 사과 1개 받기

    ② 1년이 지난 바로 그다음 날 사과 2개 받기

    이번에는 두 번째 문제.

    다음 중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① 오늘 사과 1개 받기

    ② 내일 사과 2개 받기

    만일 일관되고 논리적인 사람이라면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 모두 같은 답을 해야 할 것이다. 둘 다 하루만 참으면 사과 1개를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다수 응답자가 첫 번째 질문에서는 ②를 선택했고, 두 번째에선 ①을 선택했다. 현재 시점에선 사과 1개를, 1년 뒤 미래 시점에선 사과 2개를 골랐다. ‘시간의 길이’에 따라 다른 답변을 한 것이다. ‘탈러의 사과 실험’이 말하는 바는 인간은 당장의 만족을 선택하거나 즉각적인 비용을 피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노후 걱정을 하면서 연금 등 노후 준비를 위한 행동은 하지 않는 심리적 이유 가운데 하나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연금은 할인율이 높은 미래 자산이다. 그런데 왜 연금을 선택하는 공무원이 늘어난 것일까. 다시 말해 연금 가치가 올라간 이유는 무엇인가.

    이자율 낮을수록 연금 매력은 ‘쑥’
    연봉에서 ‘평생 총소득’으로

    연금 가치가 상승했다는 것은 거꾸로 할인율이 낮아졌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자본시장에서는 이자율이 높아질수록 할인율도 커진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공무원의 연금 선택 비율이 높아진 것은 이자율 하락과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다. 초저금리 정착으로 할인율이 크게 떨어져 연금 자산의 현재 가치가 크게 상승한 것이다.

    또한 연금 수령자가 사회적으로 계속 증가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미래 자산이 현재 자산이 됐기 때문에 심리적 할인율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제 주변에서 연금 생활자의 삶이 어떠한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연금 이슈가 크게 부각하는 이유는 인구구조에서 50대가 주축을 이루기 때문이다.

    소득에 대한 관점 변화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샐러리맨의 로망 중 하나는 억대 연봉이다. 억대 연봉은 샐러리맨에게 성공 표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과거보다 억대 연봉이 주는 이미지는 강렬하지 못한 듯하다. 오히려 상당수 직장인이 ‘가늘고 길게’를 더 선호하는 분위기다. 이는 구조조정 등 고용 환경 변화, 그리고 결정적으로 평균 수명 증가로 소득에 대한 관점이 연봉 크기에서 ‘평생 총소득’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평생 총소득은 말 그대로 평생 동안 벌어들이는 소득이다. 평생 총소득은 오래 살고 오랫동안 수입이 있으면 증가한다. 이는 아주 간단한 산수다. 수명은 그 어떤 변수보다 평생 총소득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수명 증가로 종신토록 지급받을 수 있는 연금 가치가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연금에 대한 할인율 변화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정리해보자. 앞으로는 연금 자산에 대한 할인율이 더 낮게 적용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금리는 낮고 저성장으로 고용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연금 수령자 증가로 연금이 소비와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도 가시화하고, 그 흐름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은 자신의 자산 가운데 어느 정도를 연금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사람은 어느 시점이 되면 보유 자산을 연금화한 뒤 현금흐름으로 만들어 생활비로 써야 한다. 그러나 연금 가치가 오른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행동은 여전히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일례로 우리나라 가구 중 80%는 개인연금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금융감독원 패널조사).

    행동재무학에선 미래 가치를 지나치게 폄하(할인)하는 사람을 ‘갈등 회피자’로 여긴다. 지금 아니면 나중에라도 어차피 해야 할 일을 미루다가는 나중에 더 큰 대가를 지불하게 될 수도 있다. 연금은 할인율이 높은 대표적인 미래의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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