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만 앞세우는 우리 사회
세월호 참사와 서울메트로 2호선 열차 추돌 사고 등 대형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대한민국 재난방재 시스템 전반에 빨간불이 켜졌다. 시민들을 더욱 참담하게 만드는 건 비슷한 사고가 20년 전, 30년 전에도 일어났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도 같은 생각이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심재현 실장은 “22년 전 막 박사학위를 받고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마침 부산 구포역에서 열차 전복 사고가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와 지하철 사고를 겪으면서 당시부터 지금까지 내가 해온 언론 인터뷰 내용을 다시 한 번 쭉 살펴봤는데, 안타깝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하는 얘기에 큰 변화가 없더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런 대형 사고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예산과 인력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는 게 저의 한결같은 주장이에요. 지금까지도 이 얘기를 해야 하는 현실이 우리나라 재난방재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4월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해 뱃머리만 보이고 있다(왼쪽). 서울메트로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성수역 방면으로 향하던 전동차 2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한 5월 2일 사고 열차가 처참한 모습으로 서 있다.
한국해양대 항해학부 공길영 교수 역시 세월호 침몰 사건을 “1993년 서해훼리호 사건의 복사판”이라고 평가했다.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그가 제안하는 것은 국가적 시스템 개조와 지속적인 관리감독이다. 공 교수의 말이다.
“당시 과적과 승선 인원 초과가 사고 원인으로 밝혀졌죠. 또 사고 발생 후 컨트롤타워 부재에 따른 부적절한 대응이 문제가 돼 각종 권한을 건설교통부 산하 해양항만청에서 해양경찰(해경)로 이양했습니다. 또 10명도 채 안 되던 한국해운조합의 운영관리자 인원을 100명 이상으로 대폭 늘렸어요. 1995년에는 해양수산부까지 신설했고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무부처가 왔다 갔다 하면서 혼란만 가중됐습니다. 해운사고 발생 빈도는 더 높아졌고요. 관리자 수만 늘었지 제대로 된 관리감독은 이뤄지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한국방재학회 정상만 회장 역시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부서를 신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늘 인력과 규모를 대폭 축소해 허울뿐인 기관이 되도록 방치한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서해훼리호 사고 이후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재난대응 컨트롤타워가 해양수산부에서 안전행정부로, 국무총리로, 또다시 해양수산부로 수차례 이관됐다”며 “해양에서 발생하는 불의의 사고에 신속 정확히 대응하려면 각 지역의 방재 역량을 강화하고 컨트롤타워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9·11테러 당시 뉴욕소방서가 현장 지휘 권한을 행사한 것을 제시하기도 했다.
서울 종로소방서가 2012년 푸른학교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대상으로 119 소방안전체험 투어를 실시한 모습. 참가자들은 영등포 수난구조대를 방문해 물놀이 안전수칙과 구조기법 등을 배웠다.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해법으로 제시되는 ‘매뉴얼’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일어날지 모르는 모든 형태의 사고에 대해 매뉴얼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심재현 실장은 “설령 매뉴얼 상황과 꼭 맞아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그 긴급한 상황에서 모든 구성원이 매뉴얼 내용을 숙지하고 행동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관계자들이 직급별로 누구와 연락을 취해야 하고, 각자 위치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매뉴얼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공길영 교수는 심지어 세월호 사고 이후 해경 관계자로부터 ‘선내 진입을 강행하면서까지 생존자를 구조해야 할 의무가 해경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발언까지 들었다며 “실제로도 우리나라 수난구호법상 배 안에 갇힌 사람까지 구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는 것으로 안다. 법제도와 매뉴얼에 집착하면 이렇게 정작 규정에는 없으나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선상 안전 책임자들(선장 및 승무원)의 고용 및 급여 문제 또한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적됐다. 세월호 선장은 월 270여만 원, 항해사와 기관사, 기관장은 월 170만~200만 원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선박직원 15명 중 9명이 계약직일 정도로 고용 상태가 불안했고, 일당을 받는 아르바이트 승무원도 상당수 근무한 것으로 밝혀졌다. 선사가 어떻게든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격 미달인 3등 항해사가 거친 수역 항해를 담당하는 기형적인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처럼 전문성과 책임 의식이 부족한 이들이 해난 사고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이 참사를 키웠다.
서울메트로 2호선 열차 추돌 사고에서도 역시 인력 운용 문제가 불거졌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이 “이명박, 오세훈 전 시장 때부터 무차별적으로 전개된 구조조정으로 안전운행 시스템 전반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 사고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전문가들도 기관사가 보조기관사 없이 혼자 지하철을 운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번에는 다행히 기관사가 몸을 다친 중에도 신속하게 대응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했지만, 만약 그가 사고 당시 크게 다치거나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국회 등을 중심으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직종의 종사자는 정규직화하고, 임금과 근로조건을 개선한 뒤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강남대 도시공학과 김근영 교수는 세월호 사고를 “선장 및 승무원의 책임 의식 부재와 선장조차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기업의 기형적 고용 행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바쁜 공무원 조직, 전 국민의 안전 의식 부재,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 행태 등 우리 사회의 각종 문제점이 곪을 대로 곪아 한꺼번에 터진 사건”이라고 진단하면서 “재난은 아무리 조심해도 발생할 수 있지만, 발생 후 피해 규모는 평소 예방과 준비 여하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총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험 요소에 감시자 역할 필요
전문가들은 참사 책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례로 50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1심에서 고(故) 이준 전 삼풍건설산업 회장은 징역 10년 6월을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징역 7년 6월로 감형됐다. 2012년 승객 4200여 명을 태운 유람선이 이탈리아 토스카나 질리오 섬 해안에서 좌초해 승객 32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 당시, 법원이 배에 승객 300여 명을 남겨두고 먼저 탈출한 선장에게 직무유기죄를 적용해 총 2697년 징역을 구형한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나라가 재난 발생 시 신속하고 책임감 있게 대응할 수 있는 인력과 시스템을 전혀 갖추지 못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또 선박 침몰 당시 피해자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믿고 행동했다가 결과적으로 구조될 기회를 놓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은 앞으로 재난상황에서 누구 말을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불안감에 휩싸였다. 전문가들은 이를 해결하려면 앞으로 민방위훈련을 체계화해야 할 뿐 아니라 초중고 교육과정에도 방재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국민의 관련 지식을 높일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근영 교수는 “시민들도 좀 더 절실함을 갖고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와 위험요소에 대해 감시자 구실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