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경남 합천 오도산에서 포획된 뒤 창경궁에 머물다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져 폐사한 표범.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한국 표범이다.
우리나라에 살던 표범의 정식 이름은 아무르 표범(Panthera pardus orientalis)으로, 황색 털에 검은 점무늬가 있다. 한때 한반도를 비롯해 러시아 극동지역과 중국 북부 등 동북아 전역에 분포했으나 현재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우리나라 경우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 해 100여 마리가 포획될 정도로 개체 수가 많았으나 지금은 사실상 멸종 상태다. 1962년 경남 합천 오도산에서 생포된 뒤 창경궁에 머물다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져 폐사한 표범이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생존 개체로 여겨진다.
이후에도 표범 사냥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다. 1963년 11월 경남 합천 인근 지역에서 포수들이 약 2m 크기의 암표범을 잡았고, 70년 3월 역시 경남 합천에서 포수들이 160cm 정도 되는 수표범을 사살했다. 이외에도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표범 발자국을 봤다는 제보와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례는 없다.
아무르 표범 지구상 겨우 50여 마리
사람들은 이번 사건에 일말의 기대감을 품었다. 하지만 전문가 대부분은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11년간 시베리아 숲에서 아무르 표범을 촬영해온 최기순 자연다큐멘터리 감독은 “러시아에서 관찰해 보니 아무르 표범은 나무에 올라가지 않더라”며 “시야가 트인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표범은 먹이를 나무로 갖고 올라가 먹는 습성이 있지만, 숲이 울창한 정글에서는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라니 사체가 발견된 지역 인근에 무인 카메라를 설치해 확인한 결과 카메라에 잡힌 건 걸어놓은 먹이를 먹으러 방문한 담비뿐이었다. 담비가 고라니를 사냥해 나무에 걸어놓았는지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표범을 발견하지는 못한 것. 무인 카메라는 결국 철거됐다. 강태구 원주청 주무관은 “주변에서 표범 흔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사실 원주청 등 현지 관계자들이 이번 사건을 표범 소행으로 의심한 건 단지 고라니가 나무에 걸려 있어서만은 아니다. 인근 지역에서 표범 것으로 의심되는 발자국이 관찰된 적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야생동물 전문조사원인 김대호 씨는 원주시 호저면 섬강 주변에서 고양잇과 대형 포유동물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 30여 개를 발견했다. 발가락 4개를 가진 이 발자국들은 55~ 60cm 보폭을 보이며 강변을 따라 치악산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김 조사원은 “발가락 넓이가 6~7cm로 4cm가량인 삵(살쾡이)과 비교해 월등히 컸다”고 증언했다. 그가 촬영한 사진자료를 공개하면서 학계 관심이 집중됐다.
1963년 경남 합천 가야산줄기 매화산에서 일반인이 표범을 포획한 뒤 촬영한 기념사진.
그렇다면 정말 한국 표범은 멸종했을까. 이 부분은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표범의 생태적 특성과 남북한 단절 상황 등 변수가 많아서다. 지구상에 5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아무르 표범을 직접 관찰해온 최 감독은 “표범은 매우 영리한 동물이라 사람이 오면 웅크려 발견하지 못하게 하고 이동할 때도 살금살금 바위 위로 이동해 흔적을 찾기 힘들다”고 밝혔다.
정부 역시 아직까지 한국 표범 멸종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국 표범이 서식할 가능성이 있는 백두대간을 따라 영상트랩 카메라 50여 대를 설치해 운영하는 등 표범 흔적을 쫓고 있다. 한상훈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장은 “2006년부터 표범을 호랑이와 함께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Ⅰ급으로 분류하고 있다”며 “남북한 전체를 범위로 생각하면 한국 표범이 멸종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어딘가에 숨어서 살고 있을까
2013년 4월 야생동물 전문조사원 김대호 씨가 강원 원주시 호저면 섬강변에서 발견한 야생동물 발자국. 당시 한국 표범 흔적으로 화제를 모았으나, 현재는 표범 발자국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난 상태다.
한때 표범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발견되는 야생동물이었다. 표범 개체 수가 급감한 것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부터. 조선총독부는 인간을 해치는 맹수를 없앤다는 ‘해수구제(害獸駒除)’ 정책을 펼치며 한반도에서 공식적으로 표범 624마리를 포획했다. 실제로는 그 수가 1092마리에 이른다는 일본 정부 기록도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국 표범의 존재를 확인하려면 민관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선총독부가 주도한 집중적인 남획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표범이 어딘가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면, 그 개체를 지금처럼 정부기관과 민간단체가 개별적으로 조사해서는 발견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다. 최 감독은 “표범은 수명이 20년 정도다. 한국 표범의 마지막 개체를 1962년 폐사한 창경궁 표범이라고 보면 이미 3세대 정도 지나온 셈”이라며 “만약 후손이 남았더라도 다섯 마리 미만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들을 찾아내려면 민관이 힘을 합쳐 중·장기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는 게 최 감독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