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실습을 하는 북한 대학생들.
최근 필자의 중국 내 취재원은 3월 옌지에 북한 IT 인력 75명이 들어왔다고 전했다. 3월 현재 기준으로 중국이 들여온 북한의 고급 IT 인력은 투먼에 50여 명, 옌지에 75명으로, 이 수치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취재원은 이들이 북한의 해킹전문 IT 회사인 KCC그룹 소속이라고 전했다. 연령대는 26~30세. 대부분 어린 6세 때부터 컴퓨터 전문교육을 받아 IT 분야 최고 수준으로 육성됐다고 한다.
이들의 임금 수준 등은 다른 분야에서 종사하는 북한 근로자의 몇 배에 이른다. 실력이 준수한 인력은 월급이 5000위안, 우리 돈 85만 원 정도로 책정돼 있다. 물론 한국이나 중국 IT 종사자의 인건비에 비하면 월등히 싸다. 비슷한 실력을 가진 인력을 중국에서 고용하려면 평균 2만 위안은 지급해야 하므로 대략 4분의 1 수준인 셈이다. 우수한 실력에 낮은 인건비. 중국 IT 기업이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다.
실력 준수 정말 탐나는 인재
이들 인력의 실력에 대해서는 취재원들의 이야기가 한결같다. 중국 남부 지역에서 북한 평양과학기술대 출신의 IT 인력을 면담한 한 사업가는 “정말 탐나는 인재”라는 표현을 썼다. IT 기초지식이 탄탄한 데다 배우고자 하는 욕구와 열정이 높더라는 것이다.
필자가 만난 평양과학기술대 관계자는 학생들의 우수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거의 천재 수준이다. 강의가 대부분 영어로 이뤄지는데도 집중력이 대단하다. 외국인 교수들이 깜짝 놀랄 정도다. 미국 학생보다 최소 30%는 더 우수하다고 말한다.”
특파원 시절 비공식적으로 중국에 들어온 북한 IT 인력의 활동과 관련해 몇 차례 취재를 진행했다. 북·중 접경 지역에는 비밀리에 운영되는 북한 IT 인력회사도 많았다. 이들이 중국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일부는 한국인과 연계해 사업을 진행했다. 한국인 IT 사업가는 값싸고 실력 있는 북한 IT 인력을 활용해 규제가 없는 중국 땅에서 각종 인터넷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직접 고용은 불법이므로 중국 회사와 손잡고 간접 고용하는 방식을 택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인 기업가가 배후에서 모든 업무 지시를 내렸다.
이런 방식으로 만드는 것은 주로 인터넷 게임, 특히 불법도박 게임이었다. 접경 지역에 있는 한 취재원은 필자에게 불법도박 프로그램 제조 현장을 안내해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한국에서 유출된 금융회사의 개인정보가 북·중 접경 지역을 경유해 중국인은 물론, 북한 측으로도 팔려나간다는 것이다. 필자의 취재원은 일부 한국인이 우리나라에서 금지된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중국 땅으로 건너와 북한 인력과 손잡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북한의 공식 IT 인력이 중국으로 송출되자 이들을 고용하려는 한국인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공식 송출된 IT 근로자는 검증받은 인력이므로 최장 6년까지 연속 고용이 보장된다. 다만 많은 한국 기업가가 과거처럼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한 불법게임 제작에만 관심을 둬 실제 계약이 성사되는 일은 드물다는 소식이다.
앞서 말했듯 이들이 소속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 KCC그룹이 해킹으로 악명이 높다 보니 북·중 접경 지역에는 ‘이들이 모이면 못 하는 일이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해킹 기술이 탁월한 북한 인력이 속속 자국으로 모이는 것은 중국 당국으로서도 신경 쓰이는 일일 것이다. 관련 기관에서 이들의 동향을 예의주시한다는 것이다. 한 취재원은 최근 중국 당국이 KCC그룹의 중국 내 활동에 대해 은밀하게 비공식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혹시 중국 내 전산망을 해킹하려는 시도는 없는지 관찰한다는 것이다.
평양의 訪中 의사 중국에선 난색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4월 1일 양강도 삼지연공항에 도착해 고려항공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해외 유학파인 김정은이 비행기를 이용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지만 그 장면이 공개된 건 처음이다(왼쪽). 중국 투먼의 북한 정보기술(IT) 인력들. 비교적 자유로운 복장과 행동이 눈에 띈다.
한편 4월 초 전해진 북한 관련 소식 2개가 필자 눈에 띄었다. 하나는 북한 ‘노동신문’ 4월 2일자에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비행기를 타고 지방을 방문한 모습이 처음 공개된 것이다. ‘노동신문’은 김 제1비서가 양강도 삼지연공항에 도착한 고려항공 비행기에서 내리는 사진을 실었다. 고(故)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열차를 고집하던 것과 대비돼 눈길을 끌었다. 이 기사는 필자가 지난해 중국 내 취재원으로부터 들은 ‘김정은 방중’과 관련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김 제1비서가 비행기를 타고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친중국파 인사인 장성택 처형이라는 돌발사태가 발생해 무산됐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필자의 취재원은 김 제1비서가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에 도착해 중국군을 사열하는 ‘당당하고 화려한 등장’을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그림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가 항공편을 이용한다면 중국으로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여덟 차례 있었던 김 전 위원장의 방중 때마다 중국 정부는 열차 이동 시간 내내 보안을 유지하느라 애먹었기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이 탄 특별열차가 통과할 때마다 해당 지역 열차 시간표가 엉망이 되는 통에 인근 주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중국 정부가 ‘김정은 방중’을 허락했을 때나 벌어질 일이다. 한 중국 측 유력 인사는 필자에게 “최근에도 평양은 방중 계획을 꾸준히 타진하지만 중국 측에서 여전히 난색을 보인다”고 전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소식은 외자 유치를 전담하는 기구인 북한 합영투자위원회의 인사가 최근 대폭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다. 3월 합영투자위원회의 주요 간부가 북·중 접경 지역을 찾았으나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고 필자의 취재원은 전했다. 적잖은 이가 장성택과의 연계 여부를 조사받은 뒤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김철진 국가경제개발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미래 역시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다. 김 부위원장은 장성택의 측근으로 합영투자위원회 수석 부위원장으로 활동했기 때문. 김기석 국가경제개발위원회 위원장은 2월 초 업무에 복귀했지만 김 부위원장은 여전히 노동교화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합영투자위원회 인사들이 교체됐다면 이들을 관리해온 김 부위원장에게 그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물을 공산이 크다. 그의 업무 복귀가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