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정도 환자(의 목숨)를 잃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바로 수술에 들어가지 않으면 이 환자는 죽습니다.”
이국종(45) 아주대병원 교수(권역외상센터장)는 갑자기 인터뷰 중단을 선언했다. 1월 20일 ‘아덴만 여명작전’ 3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오후 6시 무렵이었다. 불과 10초 전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그는 기자와 마주 앉아 우리나라 중증외상의료 실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각종 자료를 보여주던 참이었다. ‘중증외상’은 심한 외상이 여러 곳에서 발생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 보통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등으로 발생한다. “중증외상환자는 과다 출혈로 위급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생명을 구하려면 특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응급환자 도착을 알리는 벨이 울린 것이다.
전화로 환자 상태를 파악하자마자 이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꼭 3년 전, 해적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을 구하러 떠난 오만에서 “옥쇄(玉碎)를 각오했다”고 하던 때처럼 결연한 표정이었다.
응급환자 전원(轉院) ‘폭탄 돌리기’
당시 석 선장은 온몸에 여섯 발의 총상을 입고 쇼크와 다발성 복강 내 장기파열, 우측 대퇴골 분쇄골절, 범발성 혈관 내 응고이상증, 광범위 괴사성 근막염 등에 시달리는 상태였다. 숨이 붙어 있을 뿐, 사실상 이승을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그가 의식을 되찾고, 마침내 두 발로 걸어 병원 문을 나서던 순간, 온 국민이 의학의 위대함에 새삼 전율했다. 보고도 믿기 힘들던 이 ‘기적’을 만든 인물이 바로 이 교수다. 3년이 흐른 지금도 그는 여전히 매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옥쇄’를 각오하고 있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병원 내 트라우마 베이(trauma bay·외상외과집중치료실)로 걸음을 옮기는 이 교수를 따라 나섰다. 침상에는 경기 평택에서 막 앰뷸런스에 실려 온 19세 여성이 누워 있었다. 김지영 간호사는 이 환자가 교통사고로 목뼈와 허리뼈가 부러지고, 비장이 파열됐으며, 심각한 근육 손상을 당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복강 내 과다 출혈로 혈압이 급속히 떨어져 즉시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상태였다.
“어차피 치료 못 할 거면 빨리 보내기나 하지, 하루를 깔아두고 있다 이제야….”
이 교수가 혀를 찼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깔아둔다’는 건 환자를 응급실에 방치하는 걸 뜻하는 의료계 속어다. 알고 보니 이 환자는 사고를 당한 지 이미 하루가 지난 상태였다. 사고 이후 근처 병원에 실려 갔는데, 이제껏 별다른 처치를 하지 않았던 거다.
그러다 위급 상황이 닥치자 아주대병원으로 전원(轉院)시킨 참이었다. 이런 일종의 ‘폭탄 돌리기’를 의료계에서는 ‘쏜다’고 한다. 환자를 ‘깔아두다’ 다른 병원으로 ‘쏘는’ 일이 현장에서는 부지기수로 벌어진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가 어쩌면 피할 수도 있었을 죽음을 맞는다.
“중증외상환자는 애물단지거든요. 병원 처지에서 보면 돈도 되지 않고 골치만 아파요. 그런데 응급실에 찾아온 환자를 쫓아내면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으니 눕혀만 두는 겁니다.”
한 의료진이 귀띔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골든타임(golden time)’이 속절없이 흘러간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고가 난 뒤 1시간을 ‘골든타임’이라고 부릅니다. 이 시간 안에 수술받은 환자의 회생률이 극적으로 높기 때문이죠. 미국의 경우 중증외상환자의 82%가 1시간 안에 수술을 받아요. 메릴랜드처럼 의료 시스템이 잘 돼 있는 주는 거의 100% 수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에요. 우리 병원에 오는 중증외상환자의 절반 이상이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옵니다.”
인터뷰 도중 이 교수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실례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참이었다.
“제가 이 정도 환자를 잃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더 늦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죠.”
마취과 전문의가 수술실로 내려오고, 수술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 기자 곁으로 다가온 이 교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는 석 선장을 회생시켜 세상의 주목을 받았을 때도 언론 인터뷰에서 “선장님은 중증도로 봤을 때 내 환자 중 상위 30% 정도였다. 석 선장님 차트엔 증상이 두 줄이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치료한 이 중에는) 네 줄짜리 환자도 수두룩하다”고 했다. 일각에서 ‘오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런 자신감은 의사로서 이 교수가 가진 큰 자산이다. 아니 어쩌면, 그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인지도 모른다.
3D 직종서 중증외상환자 발생
각종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상환자의 예방가능사망률은 35%대 수준이다. 정상적인 응급조치 절차를 거쳤다면 사망한 이 10명 중 3명은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2003년 미국 UC샌디에이고에서 외상외과 연수를 마치고 귀국해 전문가로 첫걸음을 내디딜 때부터 이 교수는 줄곧 이런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중증외상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할 시스템을 만들고, 전문 의료진을 육성해 생사 기로에 선 이들을 더 많이 삶의 공간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의 연구실에는 2004년 이 교수가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중증외상환자를 위한 특성화센터 건립 방안’ 보고서가 꽂혀 있었다. 그러나 2011년 ‘석 선장의 기적’이 일어나기까지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이는 없었다. 이 교수는 “외상은 암 및 심혈관 질환에 이어 우리나라 사망 원인 3위다. 40대 이하에서는 1위다. 하지만 암이나 성인병 치료처럼 돈이 되지 않고 궂은 일만 생기니 병원에서 전문 치료기관을 만들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중증외상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계층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이 교수는 “암은 누구나 걸린다. 하지만 중증외상은 도시 정비가 잘된 서울 강남보다 외곽지역 변두리에서 더 많이 일어나고 건설노동자, 공장노동자,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게서 많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의료진 처지에서 봐도 중중외상외과는 3D 중 3D 직종이다. 낮이고 밤이고 응급상황이 이어지고, 매 수술에서 생사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며, 환자가 살아난다 해도 좋은 소리를 듣기 힘들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교수는 막 수술을 시작할 환자를 바라보며 “저 환자 부모로서는 이게 얼마나 날벼락이겠느냐”고 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딸이 수술실로 실려 들어갔는데, 의사가 와서 ‘무슨 일이 생기든 감수하겠다’는 수술동의서에 서명하라고 하면 좋은 기분이 들겠느냐”는 것이다.
“암환자는 보통 오래 고민하고 주위 사람들하고도 충분히 의논한 뒤 좋은 병원, 좋은 의사를 찾아가잖아요. 그런데 여기 온 환자 가운데 저를 만나고 싶어 한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갑자기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는데 깨어 보니 몸에 각종 의료장비가 주렁주렁 매달렸고, 심지어 몸 일부를 아예 못 쓰게 돼 있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중증외상외과에서는 고성이 오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가 이 길을 걸어온 건, 그리고 지금도 걷는 건 ‘이 정도 환자를 잃지는 않는다’는 자신감, 내 두 손으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공장에서 분당 수천 회 속도로 돌아가던 볼트가 빠져 배에 박힌 환자가 온 적이 있어요. 간장, 담도, 췌장이 다 터졌지만 결국 살아났죠. 공사판에서 철판이 목에 떨어져 다친 분도 있었어요. 목 절반이 갈라져 기관지와 식도가 다 드러나고 경동맥에서 피가 솟구쳤지만, 그분도 결국 살렸습니다.”
이 교수는 트라우마 베이에 누워 있는 한 중년 남성 쪽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침대 앞에 붙어 있는 이름은 이·#52059;·#52059;. 한국과 중국에서 벤처사업가로 성공했고, 불우이웃 돕기에도 열성적으로 나서 여러 언론에 보도됐던 인물이다. 초점 없는 눈으로 각종 의료장비를 몸에 단 채 누워 있는 현재 모습에서 과거의 그를 떠올리는 건 쉽지 않았다.
중증외상 전문 인력 태부족
이 교수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11월 첫날 중국에서 사고를 당했다. 4층 건물에서 떨어져 생사가 위험한 상태였다. 이 교수는 그를 살리려 직접 중국으로 들어갔고, 석 선장을 스위스제 ‘에어 앰뷸런스’에 태워 한국으로 이송했던 것처럼 외국 항공기를 빌려 그를 태우고 돌아왔다. 비행기 안에서부터 응급처치를 받은 이씨는 아직 위독한 상태지만, 이 교수는 언젠가 이씨도 석 선장처럼 제 발로 새로운 삶을 향해 걸어 나갈 것임을 믿는다.
“We are the spearhead of the whole medical staffs(우리가 전체 의료진의 선봉이다)!”
이 교수가 2007~2008년 영국로열런던병원 외상센터에서 근무하던 시절, 같이 근무하는 외상외과 전공의들에게 했던 말이라고 한다. 이 자신감과 사명감이 지금까지 그를 버티게 했다.
그의 노력으로 세상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중증외상환자 전문치료시설인 권역외상센터를 시도별로 1개씩 총 17개 세우기로 하고, 2012년 길병원 등 5개 병원, 지난해엔 아주대병원 등 4개 병원을 선정했다. 병원당 시설 및 장비비 80억 원과 운영비 등을 지원해 전국적인 중증외상 치료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이 교수는 “각지 권역외상센터가 명실상부한 ‘허브’ 구실을 하면, 우리나라의 예방가능사망률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며 “이제 관건은 전문 인력 수급”이라고 했다. 아직 우리나라엔 중증외상 전문의가 크게 부족하다. 전문 교육기관도 거의 없다.
“처음엔 힘들겠죠. 한동안은 몇 안 되는 의사가 몸을 던져 ‘때워나가야’ 할 겁니다.”
이 말을 남기고 그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날 오전 서해 풍도에 있는 응급환자를 이송하려고 직접 구급가방을 멘 채 헬기에 올랐고, 일주일에 한 번도 집에 들어가지 못할 만큼 줄곧 당직을 서면서 ‘몸으로 때우고 있는’ 그는 이내 메스를 들고 환자 몸에서 생과 사의 경계를 갈랐다.
병원을 나서 돌아오는 길, 김훈 소설 ‘칼의 노래’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이 교수가 가장 좋아한다는 소설이다. 작품에서 명량해전을 앞둔 새벽, ‘이순신’은 부하들에게 말한다.
“아무런 방책이 없다. 일자진뿐이다. 열두 척으로는 다른 진법이 없다.”
돌아보면 ‘이국종’도 그랬다. 방책 세우지 않고, 부족하나마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어 죽음과 맞섰다. 그의 칼 아래서 이날 열아홉 어린 생명이 새롭게 피어났다.
이국종(45) 아주대병원 교수(권역외상센터장)는 갑자기 인터뷰 중단을 선언했다. 1월 20일 ‘아덴만 여명작전’ 3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오후 6시 무렵이었다. 불과 10초 전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그는 기자와 마주 앉아 우리나라 중증외상의료 실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각종 자료를 보여주던 참이었다. ‘중증외상’은 심한 외상이 여러 곳에서 발생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 보통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등으로 발생한다. “중증외상환자는 과다 출혈로 위급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생명을 구하려면 특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응급환자 도착을 알리는 벨이 울린 것이다.
전화로 환자 상태를 파악하자마자 이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꼭 3년 전, 해적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을 구하러 떠난 오만에서 “옥쇄(玉碎)를 각오했다”고 하던 때처럼 결연한 표정이었다.
응급환자 전원(轉院) ‘폭탄 돌리기’
당시 석 선장은 온몸에 여섯 발의 총상을 입고 쇼크와 다발성 복강 내 장기파열, 우측 대퇴골 분쇄골절, 범발성 혈관 내 응고이상증, 광범위 괴사성 근막염 등에 시달리는 상태였다. 숨이 붙어 있을 뿐, 사실상 이승을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그가 의식을 되찾고, 마침내 두 발로 걸어 병원 문을 나서던 순간, 온 국민이 의학의 위대함에 새삼 전율했다. 보고도 믿기 힘들던 이 ‘기적’을 만든 인물이 바로 이 교수다. 3년이 흐른 지금도 그는 여전히 매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옥쇄’를 각오하고 있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병원 내 트라우마 베이(trauma bay·외상외과집중치료실)로 걸음을 옮기는 이 교수를 따라 나섰다. 침상에는 경기 평택에서 막 앰뷸런스에 실려 온 19세 여성이 누워 있었다. 김지영 간호사는 이 환자가 교통사고로 목뼈와 허리뼈가 부러지고, 비장이 파열됐으며, 심각한 근육 손상을 당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복강 내 과다 출혈로 혈압이 급속히 떨어져 즉시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상태였다.
“어차피 치료 못 할 거면 빨리 보내기나 하지, 하루를 깔아두고 있다 이제야….”
이 교수가 혀를 찼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깔아둔다’는 건 환자를 응급실에 방치하는 걸 뜻하는 의료계 속어다. 알고 보니 이 환자는 사고를 당한 지 이미 하루가 지난 상태였다. 사고 이후 근처 병원에 실려 갔는데, 이제껏 별다른 처치를 하지 않았던 거다.
그러다 위급 상황이 닥치자 아주대병원으로 전원(轉院)시킨 참이었다. 이런 일종의 ‘폭탄 돌리기’를 의료계에서는 ‘쏜다’고 한다. 환자를 ‘깔아두다’ 다른 병원으로 ‘쏘는’ 일이 현장에서는 부지기수로 벌어진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가 어쩌면 피할 수도 있었을 죽음을 맞는다.
“중증외상환자는 애물단지거든요. 병원 처지에서 보면 돈도 되지 않고 골치만 아파요. 그런데 응급실에 찾아온 환자를 쫓아내면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으니 눕혀만 두는 겁니다.”
한 의료진이 귀띔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골든타임(golden time)’이 속절없이 흘러간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고가 난 뒤 1시간을 ‘골든타임’이라고 부릅니다. 이 시간 안에 수술받은 환자의 회생률이 극적으로 높기 때문이죠. 미국의 경우 중증외상환자의 82%가 1시간 안에 수술을 받아요. 메릴랜드처럼 의료 시스템이 잘 돼 있는 주는 거의 100% 수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에요. 우리 병원에 오는 중증외상환자의 절반 이상이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옵니다.”
인터뷰 도중 이 교수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실례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참이었다.
“제가 이 정도 환자를 잃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더 늦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죠.”
마취과 전문의가 수술실로 내려오고, 수술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 기자 곁으로 다가온 이 교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는 석 선장을 회생시켜 세상의 주목을 받았을 때도 언론 인터뷰에서 “선장님은 중증도로 봤을 때 내 환자 중 상위 30% 정도였다. 석 선장님 차트엔 증상이 두 줄이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치료한 이 중에는) 네 줄짜리 환자도 수두룩하다”고 했다. 일각에서 ‘오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런 자신감은 의사로서 이 교수가 가진 큰 자산이다. 아니 어쩌면, 그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인지도 모른다.
아주대병원 트라우마 베이 전경(왼쪽)과 긴급 이송된 교통사고 환자를 진찰하고 있는 이국종 교수.
각종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상환자의 예방가능사망률은 35%대 수준이다. 정상적인 응급조치 절차를 거쳤다면 사망한 이 10명 중 3명은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2003년 미국 UC샌디에이고에서 외상외과 연수를 마치고 귀국해 전문가로 첫걸음을 내디딜 때부터 이 교수는 줄곧 이런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중증외상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할 시스템을 만들고, 전문 의료진을 육성해 생사 기로에 선 이들을 더 많이 삶의 공간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의 연구실에는 2004년 이 교수가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중증외상환자를 위한 특성화센터 건립 방안’ 보고서가 꽂혀 있었다. 그러나 2011년 ‘석 선장의 기적’이 일어나기까지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이는 없었다. 이 교수는 “외상은 암 및 심혈관 질환에 이어 우리나라 사망 원인 3위다. 40대 이하에서는 1위다. 하지만 암이나 성인병 치료처럼 돈이 되지 않고 궂은 일만 생기니 병원에서 전문 치료기관을 만들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중증외상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계층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이 교수는 “암은 누구나 걸린다. 하지만 중증외상은 도시 정비가 잘된 서울 강남보다 외곽지역 변두리에서 더 많이 일어나고 건설노동자, 공장노동자,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게서 많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의료진 처지에서 봐도 중중외상외과는 3D 중 3D 직종이다. 낮이고 밤이고 응급상황이 이어지고, 매 수술에서 생사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며, 환자가 살아난다 해도 좋은 소리를 듣기 힘들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교수는 막 수술을 시작할 환자를 바라보며 “저 환자 부모로서는 이게 얼마나 날벼락이겠느냐”고 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딸이 수술실로 실려 들어갔는데, 의사가 와서 ‘무슨 일이 생기든 감수하겠다’는 수술동의서에 서명하라고 하면 좋은 기분이 들겠느냐”는 것이다.
“암환자는 보통 오래 고민하고 주위 사람들하고도 충분히 의논한 뒤 좋은 병원, 좋은 의사를 찾아가잖아요. 그런데 여기 온 환자 가운데 저를 만나고 싶어 한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갑자기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는데 깨어 보니 몸에 각종 의료장비가 주렁주렁 매달렸고, 심지어 몸 일부를 아예 못 쓰게 돼 있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중증외상외과에서는 고성이 오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가 이 길을 걸어온 건, 그리고 지금도 걷는 건 ‘이 정도 환자를 잃지는 않는다’는 자신감, 내 두 손으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공장에서 분당 수천 회 속도로 돌아가던 볼트가 빠져 배에 박힌 환자가 온 적이 있어요. 간장, 담도, 췌장이 다 터졌지만 결국 살아났죠. 공사판에서 철판이 목에 떨어져 다친 분도 있었어요. 목 절반이 갈라져 기관지와 식도가 다 드러나고 경동맥에서 피가 솟구쳤지만, 그분도 결국 살렸습니다.”
이 교수는 트라우마 베이에 누워 있는 한 중년 남성 쪽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침대 앞에 붙어 있는 이름은 이·#52059;·#52059;. 한국과 중국에서 벤처사업가로 성공했고, 불우이웃 돕기에도 열성적으로 나서 여러 언론에 보도됐던 인물이다. 초점 없는 눈으로 각종 의료장비를 몸에 단 채 누워 있는 현재 모습에서 과거의 그를 떠올리는 건 쉽지 않았다.
이국종 교수가 교통사고로 비장이 파열된 중증외상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11월 첫날 중국에서 사고를 당했다. 4층 건물에서 떨어져 생사가 위험한 상태였다. 이 교수는 그를 살리려 직접 중국으로 들어갔고, 석 선장을 스위스제 ‘에어 앰뷸런스’에 태워 한국으로 이송했던 것처럼 외국 항공기를 빌려 그를 태우고 돌아왔다. 비행기 안에서부터 응급처치를 받은 이씨는 아직 위독한 상태지만, 이 교수는 언젠가 이씨도 석 선장처럼 제 발로 새로운 삶을 향해 걸어 나갈 것임을 믿는다.
“We are the spearhead of the whole medical staffs(우리가 전체 의료진의 선봉이다)!”
이 교수가 2007~2008년 영국로열런던병원 외상센터에서 근무하던 시절, 같이 근무하는 외상외과 전공의들에게 했던 말이라고 한다. 이 자신감과 사명감이 지금까지 그를 버티게 했다.
그의 노력으로 세상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중증외상환자 전문치료시설인 권역외상센터를 시도별로 1개씩 총 17개 세우기로 하고, 2012년 길병원 등 5개 병원, 지난해엔 아주대병원 등 4개 병원을 선정했다. 병원당 시설 및 장비비 80억 원과 운영비 등을 지원해 전국적인 중증외상 치료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이 교수는 “각지 권역외상센터가 명실상부한 ‘허브’ 구실을 하면, 우리나라의 예방가능사망률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며 “이제 관건은 전문 인력 수급”이라고 했다. 아직 우리나라엔 중증외상 전문의가 크게 부족하다. 전문 교육기관도 거의 없다.
“처음엔 힘들겠죠. 한동안은 몇 안 되는 의사가 몸을 던져 ‘때워나가야’ 할 겁니다.”
이 말을 남기고 그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날 오전 서해 풍도에 있는 응급환자를 이송하려고 직접 구급가방을 멘 채 헬기에 올랐고, 일주일에 한 번도 집에 들어가지 못할 만큼 줄곧 당직을 서면서 ‘몸으로 때우고 있는’ 그는 이내 메스를 들고 환자 몸에서 생과 사의 경계를 갈랐다.
병원을 나서 돌아오는 길, 김훈 소설 ‘칼의 노래’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이 교수가 가장 좋아한다는 소설이다. 작품에서 명량해전을 앞둔 새벽, ‘이순신’은 부하들에게 말한다.
“아무런 방책이 없다. 일자진뿐이다. 열두 척으로는 다른 진법이 없다.”
돌아보면 ‘이국종’도 그랬다. 방책 세우지 않고, 부족하나마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어 죽음과 맞섰다. 그의 칼 아래서 이날 열아홉 어린 생명이 새롭게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