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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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위험한 ‘부채의 계절’

경제위기 반복에 반사이익 누리려면 자산운용 폭 좁혀야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4-02-10 1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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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초부터 미국의 양적완화(장기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장에 돈을 푸는 것) 축소 조치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당초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던 아르헨티나, 터키, 인도뿐 아니라 헝가리,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국가의 통화와 주가까지 동반 하락하면서 긴장감을 더한다.

    우리나라도 양적완화 축소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해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1997년 말 아시아 통화위기 때처럼 신흥시장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마저 나온다. 사실 양적완화 축소로 촉발한 글로벌 자금 이동이 신흥시장 위기로 이어질지는 논란 여지가 있다. 늘 그렇지만 논란은 사건이 발발한 후에야 정리될 것이다.

    경제위기는 잔인한 단기 처방전

    투자, 즉 자산운용 관점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좀 더 본질적인 문제, 다시 말해 위기의 성격이다. 먼저 위기는 잔인한 방법이긴 하지만 산적한 경제 문제의 가장 강력한 단기 처방전이다. 그동안 곪아왔던 여러 경제적 질병을 짧은 시간에 일소하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은 문을 닫고, 부채에 의지해 연명하던 기업이나 개인도 퇴출된다.

    승자와 패자가 확실하게 나뉜다. 시장은 정화되지만 패자 고통은 크다. 위기를 겪고 나면, 승자 시장에서 승자 몫이 커지는 양극화가 심화한다. 패자 몫을 승자가 가져가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 승자가 된 기업의 주식이 재평가되고 크게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또한 금융위기는 과도한 부채나 자산 거품의 성격을 지닌다. 일반적인 경우는 부채와 자산 가격의 상승이 만나는 것이다. 자산 거품도 주식이냐, 부동산이냐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진다. 부동산 거품이 주식 거품에 비해 질(質)이 더 나쁘고 후유증도 더 길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버블은 희망을 절망으로 바꿔놓았지만 그 후유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큰 그림에서 보면 IT라는 새로운 산업 분야로 엄청난 자금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산업과 기업이 성장했다. 투자자는 돈을 날렸지만 산업과 기업은 성장해 경제에 플러스로 작용했다.

    반면 부동산 거품은 투자자, 기업, 금융시스템, 정부 모두에게 나쁘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모두가 손실을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 부동산은 팔리지 않고, 대출은 부실화하며, 그 결과 금융시스템의 핵심인 은행이 위기에 처한다. 정부는 금융시스템 안정이란 명분 아래 공적자금, 즉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을 투입해 은행을 살린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부동산 거품의 전형적 사례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 근저에는 과도한 부채가 자리한다. 2012년 경제 분야 최고 유행어였던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도 부채 문제였다. 현재 위기설에 시달리는 국가는 부채, 그중에서도 단기 부채 비중이 높고 재정이 나쁘며 수출보다 수입이 많다. 저축한 돈이 없고(재정), 급하게 상환해야 할 빚이 많으며(단기 부채), 버는 돈이 나가는 돈보다 많은(경상수지 적자) 것이다.

    부채도 국내 부채보다 대외 부채가 문제다. 국내 부채는 필요하면 돈을 찍거나 채권을 발행해 충당하면 된다. 일본 정부가 세계에서 빚이 가장 많으면서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정부가 발행한 국채의 90%를 일본 자국민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의 나라 돈으로 표시된 빚이 있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미국에서 양적완화 축소를 하면서 달러 표시 부채가 많은 나라로부터 달러를 빼나가면 그 나라는 유동성이 급속히 악화될 수밖에 없다. 최근 위기설이 불거진 국가들 모습이다.

    국가 경우를 살펴봤지만 기업이나 개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저축한 돈이 없고 갚아야 할 빚이 많으며 버는 돈이 적은 기업이나 개인에겐 자그마한 금융시장의 출렁거림도 해일처럼 다가오는 법이다.

    약한 고리 vs 강한 고리

    위기는 약한 고리부터 잘라낸다. 현 시대 약한 고리는 부채에 대한 노출도다. 지금의 부채는 최소 10년 이상 쌓여온 것이다. 우리나라 가계 부채만 보더라도 2000년대 초 400조 원대 초반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해 1000조 원을 돌파했다. 경기가 좀 좋아졌다고 이 부채가 단기간에 해소되리라 낙관하는 것은 세월 무게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날씨와 계절의 관계와도 같다. 겨울에도 따스한 볕이 들 때가 있다. 이상 기후로 기온이 높아졌다 해도 겨울을 여름이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 부채는 날씨가 아니라 계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뜻한 겨울 날씨라 해도 겨울옷을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부채 시대에는 자산운용 폭을 좁혀 금융위기 같은 이상 한파에 대비해야 한다.

    첫째, 벌어놓은 돈이 이미 많은 곳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부와 개인은 돈이 없고 기업, 그중에서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기업만 돈을 쌓아두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도 글로벌 다국적 기업은 돈이 많고 정부와 개인은 여전히 빚이 많다. 주식시장과 개인의 체감 경기에 차이가 나는 이유다.

    글로벌 기업은 또한 선진국과 이머징마켓에 자신의 고객 기반을 분산한 형태로 갖추고 있다. 돈을 쌓아두고 고객 기반을 선진국과 이머징마켓에 분산해 갖고 있는 글로벌 기업은 부채 시대 안정적인 자산군 가운데 하나다.

    둘째, 1등 기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위기라는 쓰나미가 휩쓸고 가면 누가 진짜 경쟁력을 지녔는지가 만천하에 드러난다. 호시절 숨겨졌던 약점들이 드러난다. 경쟁력이 약한 기업은 도태하거나 몸집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들이 주춤하는 사이 1등 기업들은 앞으로 나아간다. 위기를 겪을 때마다 1등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은 높아지고, 그에 비례해 주가도 오른다.

    셋째, 현금흐름이 있으면 부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현금흐름은 부채에 대한 확실한 안전판이다. 현금흐름이 있으면 빚을 갚을 수 있다. 물론 빚이 없으면 더 좋다. 현금흐름이 고스란히 수익이 되기 때문이다. 부채 시대 주식시장의 배당은 그야말로 확실한 투자 지표 가운데 하나다. 배당은 회사가 임금과 세금 등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남은 이익에서 주는 돈이다. 이익을 내지 않으면 절대 줄 수 없는 게 배당이다. 은행 금리 이상의 배당금을 지급하고 꾸준히 배당해왔다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부채의 계절을 살고 있다. 위기는 반복될 테고, 그때마다 부채에 취약한 존재는 흔들릴 것이다. 부채에 대비하는 방법은 스스로 부채를 줄이고, 부채로부터 자유로우며, 더 나아가 경쟁자가 약해질 때 반사이익을 볼 수 있는 대상에 투자하는 것이다. 부채의 계절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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