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한나라당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 소속 의원들이 홍준표 대표의 퇴진을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태근, 신성범, 권영진, 김세연, 김성태, 김성식, 박민식, 황영철, 현기환 의원.
2008년 3월 18대 총선을 앞두고 남경필, 정두언, 정태근 등 당시 한나라당 수도권 총선 출마자 55명은 이렇게 주장한다. 그와 동시에 이상득(SD) 의원의 총선 불출마를 요구했다. 이명박 정부 1기 내각이 ‘강부자(서울 강남 부자) 내각’이라고 비판받고, 당내 공천 잡음이 커지자 소장파들이 ‘형님 저격’을 통해 반전을 도모한 것. 이 사건으로 남경필, 정두언, 정태근 의원은 ‘반(反)SD 라인’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정두언 의원은 당시 SD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을 향해 “권력을 사유화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후 이들 의원과 가족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측 대립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른바 ‘55인의 반란’이다. 이 ‘반란’에 참여했던 한 소장파 의원은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임기를 갓 시작한 대통령의 형님을 도모하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국민의 목소리를 청와대와 당에 전해야 하는 게 이른바 소장개혁파의 구실 아닌가.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목숨 걸고’ 했다.”
“의원이 성실한 공무원 집단인가”
그러나 최근 여의도에서는 “소장파가 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10여 년간 명맥을 이어온 새누리당 소장파는 남경필 의원이 중심이 된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 소속 의원들이 그나마 소장파의 새 길을 모색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의 기(氣)에 눌린 형국이다. 이들은 당 지도부와 달리 ‘경제민주화 속도 조절론’에 반기를 들며 ‘경제민주화 박차’를 강조하지만 역부족으로 보인다.
최근 국가정보원(국정원)의 2007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와 관련해서는 김용태, 김영우, 박민식 의원 등 이른바 ‘안보 소장파’가 반발하며 국정원 대화록 공개를 비판한 바 있지만 쇄신파 특유의 응집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여당 A 중진의원의 말이다.
“소장파라는 게 ‘젊고 기운찬 기개를 지닌 사람으로 이뤄진 무리’ 아닌가. 예전에는 초선을 중심으로 소장파 행세를 하는 의원이 너무 많아 걱정이었는데, 요즘은 다들 무난하게 정치를 하려고 해 걱정이다. 국회의원이라면 정치적 상상력과 개혁 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의원들은 그냥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공무원 집단이 돼가는 것 같다.”
민주당은 총선과 대통령선거(대선)에서 잇달아 패배해 당의 존재감 자체가 약화하면서 소장파 입지가 더 좁아졌다. 급기야 민주당 486정치인 중심의 개혁 그룹인 ‘진보행동’은 3월 19일 ‘기존 정치와 정당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적 노력을 기울이는 데 부족했다. 기존 정치 문법을 배웠고, 기존 관행을 혁파하는 데 주저했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쓰고 공식 해체했다. 일부 초선의원이 새 정치를 주장하지만, 추진력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결국 소장파의 존재 약화는 박근혜 정부 초기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 지연이나 국정원 국정조사에서 보듯 국회의 타협 기능을 떨어뜨리고 있다. 양극단으로 향하던 여야를 중간 지점으로 돌아오게 하는 구실을 하지 못한다.
최근 10여 년간 정치권이 권위주의나 구태정치에서 한 발 벗어날 수 있었던 데는 분명 소장파의 구실도 컸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의 소장파 모임 ‘미래연대’는 2002년 ‘제왕’으로까지 불리던 이회창 총재에게 쓴소리를 했다. 정당 구조 및 지도부 시스템 개혁, 밀실정치 타파 등은 ‘미래연대’ 소장파의 단골 주장이었다. 17대 국회 ‘수요모임’과 18대 국회 ‘민본21’ 등은 한나라당이 ‘꼴통보수’ 이미지를 벗고 ‘부자정당’ 노선을 재검토하도록 촉구했다. 특히 18대 국회 당시 김성식, 정태근, 권영진 의원 등 개혁 성향 소장파 의원 14명으로 구성된 ‘민본21’은 ‘여당 내 야당’ ‘의총군’(의원총회에서 의견을 활발히 개진해 붙은 별명)으로 불리며 맹활약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부자 감세로 지목된 종합부동산세 개편안 철회, ‘MB(이명박) 측근’ 권재진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 등 꾸준히 개혁담론을 제기해 집권 여당의 중심을 잡아나갔다.
소장파 모임은 신인 정치인을 키워내는 인큐베이터 구실도 했다. 18대 국회에 대거 입성한 ‘젊은 피’ 권영진, 권택기, 김성식, 정태근 의원 등은 모두 ‘미래연대’ 출신. 변호사였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정치를 배우고 차세대 주자로 발돋움할 기반을 마련한 곳도 ‘미래연대’였으며, 새누리당 소장파의 명맥을 이어온 이른바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역시 ‘미래연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새누리당 한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2008년 정두언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작은 식당에 들어갔는데, 밥을 먹던 아저씨들이 갑자기 ‘정두언, 잘했어’라고 박수를 쳤다고 하더라. 정치인 남경필, 정두언에 대한 총체적 평가는 놔두고라도 소장파의 활동에 대해서만 보자면 적어도 그들이 민심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민주당의 경우 당명 변화와 분당, 통합 등의 역사를 거친 탓에 소장파 기준을 정하기는 애매하지만, 10년간 활동을 기준으로 구분하면 세 그룹의 소장파가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을 중심으로 결성된 ‘민주평화국민연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진보적 노선, 복지 정책 강화를 주장했고, 486정치인의 결사체인 ‘진보행동’은 하청정치 청산과 또래집단의 정치철학 실현을 목표로 활동했으며, 정세균 대표 시절 비주류를 중심으로 결합한 ‘쇄신연대’는 꾸준히 당 개혁을 강조했다.
3월 19일 민주통합당 486정치인 모임인 ‘진보행동’ 주최로 열린 토론회. 이날 발제자로 나선 우상호 의원은 “계파정치를 해결하지 않고는 혁신할 수 없다”며 진보행동 해체를 선언했다. 왼쪽부터 진성준, 우상호, 김기식, 김현 의원.
그러나 19대 국회 들어 ‘목숨 걸고’ 지도부에 맞서던 소장파 의원이 더는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최근에는 김무성 의원에게 보낸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카메라기자에 잡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저는 요즘 어떻게든 형님(김무성 의원) 잘 모셔서 마음에 들어볼까 노심초사 중이었는데 이런 소문을 들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형님께서 무엇이든 시키시는 대로 할 생각이오니…’(6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무성 의원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대선 이전 입수 발언’ 유출자로 의심받는 김재원 의원이 김무성 의원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내용).
그렇다면 10여 년간 활약한 소장파 의원들은 왜 실종됐을까. 19대 국회는 전체 300석 중 초선이 147명이지만 새바람은 불지 않는다. 여의도 주변에선 다음과 같은 분석이 나온다.
먼저 새누리당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자칫 소장파로 나섰다가는 ‘찍히기 십상’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여기에 박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이던 시절 공천을 받은 데다, 관료 등이 대거 수혈되면서 총대를 메거나 쓴소리를 하는 초선의원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경실모’ 소속 한 의원의 말이다.
“경제민주화 정책에 진정성을 갖고 노력하는데 분열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을 때 가장 힘들었다. 젊은 의원들의 쓴소리에 대해 토론을 하기보다 ‘너만 잘났느냐’는 냉소적 반응을 보여서야 되겠나.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 당시 한마디 하려고 했더니 지도부의 한 선배 의원이 ‘지금이 어느 때냐. 힘을 합쳐야지 무슨 쓴소리냐. 당신 민주당 의원이야’라고 하더라. 이런 분위기에서 (3월 11일 새누리당 초선의원들의) ‘정부조직법 원안 통과 촉구 성명서’가 나왔다. 지도부의 설교 중심 의원총회나 여야 대립을 이유로 집단행동을 강요하는 문화, 공천을 미끼로 젊은 정치인을 줄 세우는 관행 역시 소장파를 멸종시킨다고 본다.”
2010년 12월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단상을 차지하려고 몸싸움을 하고 있다. 이후 여야 소장파 의원들은 ‘국회 폭력을 없애자’며 국회선진화법 입법에 함께 나섰다.
새누리당의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는 김용태 의원의 주장도 비슷하다.
“박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강하고 새 정부 출범 초기여서 요즘은 당 지도부에 반대되는 발언을 하면 면박을 당하기 일쑤다. 여기에 초선의원들이 소장파 구실을 해줘야 하는데 대부분 관료, 전문가 출신인 데다 박 대통령과 사적, 공적으로 인연 있는 사람이 대거 국회에 입성해 쓴소리를 못 하는 것도 문제다. 앞으로 서서히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의원이 나올 것으로 본다.”
야당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 한 중진의원은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대선 패배에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5·4 전당대회 때도 어디에 줄을 설지만 생각했지 당 개혁에 앞장서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
“친노(친노무현)계 의원이 현 지도부에 반대 목소리를 내려 해도 ‘대선 패배 책임을 져야 할 친노계가 반성은 않고 공격을 한다’며 공격한다. 현 지도부를 지지하는 의원 역시 친노계와 대립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니 초선의원은 보이지 않고 강성 야당 의원만 부각된다. 야권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단결을 내세워 소장파를 죽이면 전체주의로 흐를 수 있다.”
여기에 소장파 의원 모임의 중심을 이루던 의원들이 19대 국회 입성에 실패했고, 소장파 의원 자체의 개혁 노력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소장파 출신 의원은 ‘비주류일 때는 쓴소리맨, 주류일 때는 권력자와 한 몸’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이 시점에서 ‘영원한 소장파’로 불리는 김근태 전 의원의 말은 새겨볼 만하다. 2004년 6월 당시 열린우리당의 총선 공약이던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가’ 방침을 밝히자 김 전 의장은 “계급장을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며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정책 집행을 책임지는 청와대와 정부 처지에서는 많은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할 수 있고, 국민의 최일선에서 민심을 먹고살 수밖에 없는 정당은 모든 눈높이를 대다수 서민에 맞출 수밖에 없다. …공공주택 분양원가처럼 중요한 문제는 (당과 청와대가) 계급장을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