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회화 전문강사들이 7월 4일 정부서울청사 교육부 앞에서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7월 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교육부 앞에서 소복 차림 여성들이 외친 구호다. 이들은 2009년부터 일선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쳐온 영어회화 전문강사(영전강)들. 실용영어를 강조한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상징이다. 1차 서류전형과 2차 원어민 면접, 강의 시연, 수업계획서 작성 평가 등을 거쳐 전국 학교에 배치됐던 이들이 거리로 나선 건 조만간 모두 교단을 떠나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 당시 제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영전강 고용기간을 ‘1년 단위 최대 4년까지’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2009년 9월 채용된 1기 526명의 계약이 곧 만료된다. 이후 공채를 통과한 2기 1500여 명과 3기 1000여 명에게도 머지 않아 닥칠 일이다. 이들은 “올 초까지만 해도 교육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계약을 연장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막상 만료시한이 닥치자 ‘방법이 없다’며 발을 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번 사건은 올 초 전국 학교에서 벌어진 전문상담사 계약만료 문제의 복사판이다. 교육계는 올 초 전국적으로 전문상담사 약 1000명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추산한다. 2011년 말 대구에서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대거 채용된 이들이다. 한 전문상담사는 “당시 정부가 학교폭력 대책으로 상담인력 확충을 발표하면서 많은 학교가 전문상담사를 뽑았다. 대부분 퇴직금 부담을 피하려고 11개월짜리 단기계약을 했기 때문에 올 초 집단적으로 계약이 만료된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6월 현재 전국 학교의 비정규직 종사자는 36만 명에 이른다. 배동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회계직연합회학교비정규직본부 국장은 “전체 교직원 약 80만 명 중 절반이 비정규직인 셈”이라며 “교육당국이 필요에 따라 수시로 새로운 직종을 만들고 비정규직으로 채웠다가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일을 반복하면서 교육의 안정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책 따라 새 직종 신설·폐지 악순환
최근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돌봄교실 확대 정책도 이런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오후 5시까지 ‘방과 후 돌봄’을 희망하는 모든 초등학생에게 관련 프로그램을 무상 제공하고, 맞벌이·저소득층·한부모 가정 학생에게는 오후 10시까지 추가 돌봄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먼저 1, 2학년을 대상으로 시작해 2016년까지 전면 시행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돌봄강사는 교사자격증이나 보육교사 1·2급 자격증 보유자 중 계약직으로 선발한다. 교육현장에서는 이들이 또 한 번 대규모 비정규직 고용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충분한 준비 없이 사람부터 뽑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미 현장에서 갖가지 문제점도 노출되고 있다. 감사원이 6월 말 ‘교육복지시책 추진실태’를 감사한 결과 조사대상인 돌봄강사 2594명 중 26.2%가 교육부가 정한 자격기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학교장은 관련 예산을 개인 수당으로 받다 적발됐다. 교육부는 “8~9월 중 프로그램 질 제고 방안 등을 담은 ‘학교 내 돌봄기능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하반기에 시도교육청별로 방과 후 무상돌봄 시범학교를 운영하며 미비점을 보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회에는 학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법안이 민주당 유기홍 의원과 새누리당 이에리사 의원 등의 대표 발의로 제출돼 있다. 배동산 국장은 “공공부문 중에서도 교육분야는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하는 영역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