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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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방위비 분담 셈법’ 샅바싸움

연합전구사령부 창설, 기지이전 등 시기 규모 따라 손익 달라져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3-07-15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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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방위비 분담 셈법’ 샅바싸움

    서울 용산구 한 주상복합빌딩 옥상에서 내려다본 용산 미군기지 전경.

    8695억 원. 2013년 한 해 동안 한국이 미국 측에 제공하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규모다. 이 분담금 규모를 내년부터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결정하는 협상의 막이 올랐다. 7월 2일 한국 외교부와 미 국무부 대표가 미국 워싱턴에서 첫 회의를 가진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 개정 협상. 1991년 협정 발효 이래 아홉 번째인 이번 협상은 8차 협상 이후 5년 만에 열렸고, 10월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협정 발효 이후 20여 년간 한국이 미국 측에 제공하는 방위비 분담금 규모는 증가를 거듭해왔다. 전시작전권(전작권) 전환과 주한미군 감축 논쟁이 한창이던 2005, 2006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증액돼온 것. 처음에는 1000억 원 남짓이던 분담금이 이제 8배 이상 증가했고, 미국 측은 이를 주한미군 시설 건설사업과 고용인 인건비, 군수지원비 등으로 사용한다.

    협상 전망은 녹록지 않다. 시퀘스터(Sequ- ester) 사태 등으로 강한 예산 압박에 시달리는 미국 측은 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주장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군인과 군무원에게 지급하는 인건비를 제외한 나머지 주둔비용의 절반 이상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미국 측은 한국의 분담금이 1조 원 이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한국 측은 ‘인건비를 제외한 주둔비용’이라는 개념 정의가 자의적이어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외견상 양측 견해는 이렇듯 팽팽해 보이지만, 실제 상황은 사뭇 다르다. 우리 측 당국자들도 한미 간 다양한 현안이 얽힌 탓에 목소리를 강하게 내기 쉽지 않다고 토로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는 당장 협상이 진행되는 일정만 살펴봐도 확인할 수 있다.

    6월 초 국방부는 2015년 12월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현재의 연합사령부와 유사한 지휘구조를 유지하며, 새로 창설되는 연합전구사령부의 사령관은 한국군 합참의장(대장)이 맡고 부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대장)이 맡는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양국 합동참모본부가 합의했다는 이 방안에 대해 미 국방부와 백악관은 여전히 아무 견해도 밝히지 않고 있다. 10월 양국 국방부 장관이 만나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최종 결정하겠다는 얘기다.



    교묘한 협상 일정 선정

    양국군이 2개로 분리된 사령부를 운영한다는 당초 방안에서 크게 선회한 이러한 구조를 한국 측은 적극 환영하지만, 워싱턴 당국자들은 “따져볼 대목이 있다”며 모호한 태도를 굽히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방위비 분담 협상은 바로 양국 합참의 합의와 SCM에서의 최종 결정 사이에 진행된다. 연합전구사령부 창설을 원하는 한국 측이 방위비 분담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뒤집어 말해 워싱턴의 속내는 ‘SCM에서 연합전구사령부 방안에 도장을 찍고 싶으면 분담금에서 우리 요구를 받아들여라’인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연합전구사령부 방안은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 우리에게 불리하기만 한 이슈일까. 꼼꼼히 따져보면 전혀 다른 대답도 가능하다. 지금의 연합사령부가 연합전구사령부로 사실상 존속할 경우 주한미군의 주둔비용과 관련해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이 지급해왔거나 향후 지급하기로 한 지원사업의 규모와 내용이 크게 축소되고, 따라서 이를 명분으로 분담금 축소를 주장하고 나설 논리적 근거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잠시 2003~2004년 상황을 돌이켜보자. 이 무렵 한미 양국은 서울 용산을 비롯해 곳곳에 흩어진 주한미군기지를 경기도 평택으로 통합하는 기지이전 협상을 시작한다. 그 결과 체결된 것이 용산기지이전협정(YRP)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 이 가운데 용산기지의 경우 한국 측이 이전비용을 부담하고, 경기도 동두천의 미 2사단 등 다른 23개 기지의 이전비용은 미국 측이 부담한다는 게 두 협정의 주된 골자였다. 한국 측이 용산기지 이전비용으로 총 5조5900억 원을 부담하게 된다는 게 2004년 국회 비준 당시의 설명. 그러나 최근 들어 국방부는 사업일정 지연으로 이전비용이 9조 원까지 늘어나게 됐다고 말한다. 평택에 짓는 새 기지의 건설비용만 5조 원이 넘는다는 것이다.

    반면 미 2사단 등 다른 기지 이전비용을 미국 측이 부담한다는 약속은 깨진 지 오래다. 주한미군은 한국 측이 제공한 방위비 분담금 가운데 매년 1000억 원 내외를 축적해두었고, 이를 기지이전비용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2012년 9월 현재 이렇게 쌓인 방위비 분담금 규모는 총 7611억 원. 미군 측은 이 돈을 이자가 나오지 않는 영내은행 계좌에 넣어두었다고 주장하지만, 이 영내은행은 다시 이 자금을 국내 시중은행 여러 곳에 정기예금 형태로 분산해 맡겨두었다. 문제는 이 영내은행이 매년 정산을 통해 영업이익을 미 국방부에 납부한다는 것. 공식적으로는 이자가 나오지 않지만, 결국 시중은행에서 나오는 이익을 미 국방부가 쓰는 셈이다(‘신동아’ 2007년 4·5월호 관련 기사 참조).

    더욱 꼼꼼히 따져볼 대목은 연합전구사령부가 만들어진 이후 상황이다. 6월 1일 국방부 설명에 따르면, 새로 구성하는 연합전구사령부는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에 설치되고 수백 명 규모의 미군 측 인원이 이곳에 들어와 함께 근무하게 된다. 문제는 용산기지다. 현재 이 기지는 연합사와 주한미군사령부가 대부분을 사용하는데, 국방부 발표대로라면 연합사·주한미군사령부 근무인원 상당수가 앞으로는 한국군 영내에서 근무하게 된다. 당초 이들이 평택기지로 옮겨간다는 전제 하에 지원하기로 한 용산기지 이전비용도 논리적으로는 발생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주한미군사령부용으로 평택에 지어주기로 한 청사나 C4I(지휘통제체계) 등 관련 설비도 불필요해진다. 평택기지 건설비용으로 한국이 부담하는 5조 원 가운데 적잖은 부분이 실제로는 부담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얘기다.

    한미 ‘방위비 분담 셈법’ 샅바싸움

    2007년 11월 13일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서 열린 미군기지 이전 기공식.

    지휘부 핵심 전력 빠지면 ‘제2 세종시’ 꼴

    반대로 미군 측 인원 수백 명이 한국군 합참에서 함께 근무하는 데 필요한 시설이나 경비는 누가 부담할까. 국방부는 이와 관련해 현재의 국방부·합참 청사를 활용하거나 새로 건물을 신축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관련 비용을 우리가 부담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을 찾기 어렵다. 연합전구사령부라는 아이디어를 한국이 요구하고 미국이 수용하는 모양새이다 보니 재정부담은 모두 우리 몫이 되리라는 것. 여기에는 주한미군 지휘부와 예하부대를 연결하는 주요 C4I 관련 네트워크·장비 구축비용은 물론, 미군 측 근무자의 숙소나 식당, 종교시설 같은 부대시설 비용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그 정확한 규모를 추산하기 어렵지만, 최소 수천억 원 규모가 되리라는 게 군 안팎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렇듯 주한미군사령부 등 용산기지의 주요 기능과 인원이 서울에 남게 될 경우 현재 건설 중인 평택기지의 위상이나 쓰임새는 사뭇 달라진다. 총면적 1465만m2에 달하는 평택기지는 단일 기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 시설이다. 원래는 주요 공군비행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력이 한곳에 집결해 최적·최강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기지가 되리라는 게 양국 국방부의 설명이었지만, 주한미군 지휘부가 서울에 남게 되면 이러한 취지도 크게 퇴색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원래 평택기지에 합류하기로 했던 현재의 미 2사단 전력을 동두천과 의정부 일대에 잔류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지난해 6월 국내 주요 언론들은 한국군 1개 여단을 미 2사단에 배속해 연합부대를 편성하고 사단장은 미군 소장이, 부사단장은 한국군 준장이 각각 맡는 방안 등을 협의 중이라고 전한 바 있다. 주한미군 지상군 전력의 핵심인 2사단이 평택으로 이전하지 않는다면, 미국 측이 부담하기로 한 이전비용도 당연히 발생하지 않는다. 주한미군이 이전비용으로 축적해놓은 7611억 원의 방위비 분담금도 쓰임새가 모호해지기는 마찬가지.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기지를 지어놓고도 지휘부와 핵심 전력이 빠진 ‘속 빈 강정’이 될 공산이 커진 셈이다.

    평택에 집결하기로 한 미군 전력이 서울과 동두천, 평택으로 뿔뿔이 흩어질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령부와 예하부대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군사작전상의 문제는 없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효율이나 비용 발생은 피하기 어렵다는 것. 이들 기지 사이를 최고 보안 및 방호 시스템이 완비된 통신망으로 연결해야 하고, 협의나 회의를 위해 출장이 잦아지는 일도 피하기 어렵다. 쉽게 말해 평택기지가 또 하나의 세종시가 되는 셈이다.

    한미 ‘방위비 분담 셈법’ 샅바싸움

    2009년 1월 15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오른쪽)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가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8차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 조인식을 가졌다. 양측은 2008년 7월부터 5차례에 걸쳐 관련 협의를 진행한 바 있다.

    한창 진행 중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통해 이 문제를 강하게 어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원론적으로는 용산기지이전협정 자체를 개정해야 옳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분담금 협상에서라도 꼼꼼히 따져야 한다는 것. 한국 정부 돈으로만 5조 원 이상을 투입하는 평택기지가 애초 합의했던 기능을 수행하지 않게 된다면, 방위비 분담금을 감액함으로써 이를 보전하거나 최소한 미국 측의 증액 요구를 반박하는 논리로라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한 관계자의 말이다.

    “물론 미국 측은 방위비 분담금과 기지이전비용은 별개라고 주장하겠지만, 애초 이 둘을 연결한 것은 미국 측이었다. 한국이 제공한 방위비 분담금을 자신들이 부담하기로 한 2사단 등의 이전비용으로 쓰겠다고 쌓아두지 않았나. 이렇게 놓고 보면 가뜩이나 불리한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카드로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동맹의 가치 소중…국민 세금도 중요”

    이렇게 놓고 보면 워싱턴이 전작권 문제의 최종 합의를 방위비 분담금 협상 이후로 미룬 속내가 무엇인지도 뚜렷이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연합전구사령부가 공식화할 경우 관련 편제와 근무인원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 부담과 평택기지의 용도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그 후 분담금 협상을 진행한다면 한국 측이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지나치게 많이 부담한다는 사실이 논의 대상이 될 테고 분담금 협상도 영향을 받을 공산이 크다. 미국 측으로서는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현 상태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이다. 미국 측이 협정 유효기간을 5년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도 연합전구사령부 창설이나 기지이전이 완전히 끝난 뒤인 2018년에 다음 협상을 벌이는 게 한결 유리하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는 4월 발간한 ‘해외기지 주둔 비용 보고서’를 통해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 사용실태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바 있다. 1040만 달러를 들여 2사단 박물관을 짓는 등 필수적이지 않은 사업에 너무 많은 지출을 한다는 것. 보고서는 “한국 측이 제공한 분담금을 사실상 ‘공돈(free money)’으로 취급했다”며 주한미군사령부를 강하게 질책하기도 했다. 2004년 주한미군 기지이전 협상에 관여했던 한 전직 당국자의 말이다.

    “동맹의 가치는 소중하다. 방위비 분담금보다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에 자국민 세금이 중요하듯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돈을 내는 당사자보다 미 의회가 이 사안에 훨씬 더 비판적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7월 하순 서울에서 2차 협상을 벌이게 될 외교부 협상팀의 양식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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