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돈 대한설비건설협회장(63·성아테크 대표·사진)이 6월 18일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2013년 건설의 날 기념식’에서 최고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금탑산업훈장은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게 주는 1등급 훈장. 올해는 정 회장과 최상준 남화토건 대표가 받았다.
한일월드컵 방송센터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신공법으로 시공해 주목받은 정 회장은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36년간 건설업에 종사하며 국가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여기에 민관합동 건설산업 공생발전위원으로서 저가하도급 심사제를 개선하고, 기능공 무상기술교육을 실시하며, 소외계층 장기 주거지원에 기부하는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앞장선 공로도 인정받았다.
6월 17일 서울 청담동 대한설비건설회관에서 만난 정 회장은 “수상의 기쁨보다 분리발주 법제화와 최저가 낙찰제 폐지 등 건설업계 현안을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하다”며 천천히 입을 뗐다.
▼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네요.
“기계설비 분야에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훈장을 받게 되니 솔직히 부끄럽기도 하고, 과분한 상을 받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어요. 기계설비인 50만 명에게 주는 상으로 알고 그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어요.”
▼ 1983년 성아테크 대표가 되고 30년간 회사를 키운 비결은 뭔가요.
“비결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기계설비는 제 영혼입니다. 회계사가 그러더군요. 대한민국 법인이 45만 개 정도인데, 그중 30년간 유지되는 곳은 5%(2만2500곳) 정도고, 거기에서도 5%(1125곳)만이 외부 감사와 회계를 받는다고요. 기업 회계와 운영을 투명하게 하고 외부 목소리를 존중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웃음).”
기계설비는 인체에 비유하면 두뇌와 신경, 순환기, 소화기에 해당한다. 건축물의 냉난방, 환기시설, 급배수 등으로 건축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핵심 건설산업이다.
건설도 패러다임 바꿔야 할 시대
▼ 성아테크는 1996년 국립중앙박물관 신공법 시공 등 국내 기계설비 분야에서 신기술 개발로 주목받았는데요.
“박물관은 다양한 기상 조건에서도 일정한 실내 환경을 유지하는 게 관건입니다. 국가 문화유산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려면 소음을 60dB 이하로 묶는 게 핵심이죠. 공조기기 소음을 잡으려고 원형 덕트(환기용 관로) 내부에 흡음재를 부착해 공조기기 소음이 실내로 전달되지 않게 했어요. 수많은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고안해냈죠. 1998년 아셈타워, 2002년 한일월드컵 방송센터를 시공할 때도 소음을 차단하고 설치공정을 최소화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한국의 랜드마크 건물에 온 외국 손님들에게 한국 기계설비의 우수성을 알려주고 싶기도 했고요.”
▼ 10년간 7억 원을 기부하는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열심인데요. 특히 장학사업이 눈에 띕니다.
“저도 시골(충남 천안)에서 자라 어려움을 잘 알아요. 공부하고 싶은데 학비가 없을 땐 정말 힘들죠. 학창시절 공부를 등한시했어도 성인이 돼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 돕고 싶어요. 그래야 개인과 나라가 발전할 수 있거든요. 직원들에게도 ‘춤과 노름 빼고 배우고 싶으면 다 배워라’고 해요. 요즘은 설비 분야 기능공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직원을 대학에 진학시켜요. 신입생이 없어 대학 기계설비학과가 문을 닫을 판이거든요. 이대로라면 20년 뒤 기계설비업계 기능공은 대부분 외국인일 거예요.”
그는 테이블에 놓인 매실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천장을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화는 자연스레 건설산업계 문제로 향했다.
“건설산업도 이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해요. 발주기관은 제값을 주고, 종합건설사는 제값을 받고, 전문 건설사는 제대로 시공하는 문화와 제도적 장치가 정착해야 합니다. 현재 같은 최저낙찰가제는 저가수주로 건설업체의 경영난과 부실시공 등 여러 문제점을 낳아요. 공사비도 안 되는 돈을 받고 공사하면 자재비와 인건비 대기조차 어려워요. (전문업체가 원도급 계약자로 참여하는) 주계약자공동도급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어요. 사실 적정공사비를 받고 회사가 이익이 나야 기술연구도 하고 인력도 키울 수 있잖아요. 이 문제는 좋은 일자리와 복지문제와도 연결돼요. 생산적 복지 차원에서 생각할 문제죠. 건설 카테고리를 넓게 봐야 해요. 국가적 측면과 해외 진출 측면을 동시에….”
하청구조 관행 제도적으로 바꿔야
6월 18일 건설의 날 기념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하는 정해돈 대한설비건설협회장.
“건설현장에선 ‘기능공 노후화’ 문제가 심각해요. 젊은 기능공을 찾아볼 수 없어요. 그러니 공정도 오래 걸리고 공사 원가도 더 들죠. 생각해보세요. 공사현장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샤워실과 휴식시설도 마련해주고, 급여를 제대로 준다면 우수 인력이 건설업계로 몰릴 거 아닙니까. 독일 중소 건설기업이 튼튼한 이유, 그리고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이 분리발주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해요. 그래야 인력과 기술로 해외시장을 노크할 거 아닙니까. 현 제도로는 해외시장 공략이 요원해요.”
▼ 6월 14일 정부가 발표한 ‘건설산업 불공정 거래관행 개선방안’에는 그동안 ‘뜨거운 감자’였던 분리발주 법제화는 빠졌던데요(분리발주는 하도급 업체가 원도급 업체를 거치지 않고 발주처로부터 직접 공사를 수주하는 걸 말한다. 박근혜 정부는 ‘갑을(甲乙) 관계’의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해 국정과제 중 하나로 분리발주 법제화를 채택했다).
“건설교통부(국토해양부 전신)는 2000년부터 기계설비공사의 경우 다른 공사와 분리발주하라고 공문을 내려보냈어요. 그래서 전국 학교와 대학, 우체국, 박물관은 이미 분리발주를 하고 있고요. 하지만 극히 일부에 한정됐죠.”
▼ 왜 그런 거죠?
“국가계약법상 분리발주는 ‘공정관리에 지장이 없는 공사’일 경우로 단서를 달았어요. 그런데 공정관리에 지장이 있는지 없는지가 명확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국가계약법 개정을 건의했고요. (법적으로 이미 분리발주하는) 전기나 통신설비처럼 기계설비 분야도 설계도서가 분리돼 있고 원가산정 기준이 되는 표준품셈도 따로 작성해요. 그런데 법제도의 미비로 대부분 입찰에서 종합건설사가 통합 수주하고, 우리는 100% 하도급을 받고 있어요. 정부가 약속한 만큼 논란과 토론이 끝나면 약속을 지킬 거라고 믿어요. 이젠 패러다임이 바뀔 때잖아요.”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그가 “인터뷰 자리에서 말해도 되나” 하면서 웃었다.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여의도동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한 말이라며 ‘머슴론’을 꺼냈다.
“1960년대까지 시골에 머슴이 살았어요. 머슴은 세경(머슴에게 지급하는 연봉)을 차곡차곡 모으고 숙식은 주인집에서 해결했죠. 그리고 때가 되면 모은 세경으로 땅을 사고 분가해 지주 노릇도 했어요. 주인은 머슴이 분가할 때 ‘그동안 고생했다’며 쌀 몇 가마니를 주면서 격려했고요. 이게 우리 인심이고 문화였어요. 생각해보세요. 우리 건설산업도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국가발전에 큰 공헌을 했잖아요. 하청구조라는 수직적 갑을관계에서 그만큼 국가경제에 이바지했다면, 이젠 수평적 관계로 가야 하지 않나요.”
▼ 당시 박 당선인은 뭐라고 했나요.
“‘관행이 고쳐지도록 실질적인 노력을 하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