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열린 제117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1차 폭발(사진 오른쪽 위)로 인한 흰 연기가 높이 솟아오른 가운데 2차 폭발(사진 가운데)이 발생했다. 일반인 마스터스 참가자 수천 명이 결승점을 향해 달리던 때라 피해가 컸다.
그러나 미국 국민은 이번 사건으로 2001년 9·11테러 이후 다시 테러 공포에 떨어야 했다. 9·11테러 이후 작은 테러 사건이 끊이지 않았지만, 미 언론과 국민은 이번 사건을 12년 만에 미 본토에 대한 테러로 여겼다. 사건 발생 장소와 시기 때문이다. 9·11테러가 발생한 뉴욕이 세계 경제의 심장이라면 보스턴은 사실상 미국 건국운동의 발생지와도 같은 곳이다.
영국 청교도 신자 100여 명이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처음 닿은 곳이 보스턴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플리머스. 그들은 천혜의 항구와 지형을 갖춘 보스턴으로 이동해 거점으로 삼은 뒤 영국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려고 치열한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테러가 일어난 4월 15일은 독립전쟁이 발발한 날을 기념하는 ‘애국자의 날’이었다. 애국자의 날에 미국 건국운동 발상지인 보스턴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다는 것은 뉴욕에서 일어났던 9·11테러만큼이나 상징성이 컸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 계엄도시로 변모
더구나 보스턴 폭탄테러가 발생한 지 이틀 만인 17일 밤 미국 텍사스 주의 한 비료공장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해 14명이 사망하고, 160명 이상이 부상하자 미국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결국 단순 사고로 밝혀졌지만, 사고가 터졌을 때만 해도 또 다른 테러 시도라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기자가 사건 소식을 접한 뒤 4시간가량 차를 몰고 보스턴에 도착한 시간은 4월 15일 저녁 11시경. 보스턴은 이전에 몇 차례 들렀던 그 평화로운 도시가 아니었다. 경찰은 사건현장인 보스턴 마라톤 결승선 근처 몇 블록을 철저히 통제했다.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는 경찰차와 주 방위군을 싣고 분주히 이동하는 지프 차량 수십여 대가 마치 계엄도시를 연상케 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보스턴 경찰, 국토안전부 등 미국의 동원 가능한 모든 인력을 투입한 이번 수사팀은 “보스턴에서 일어난 가장 복잡한 사건”으로 규정해 사건 전모가 밝혀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사건 다음 날인 16일 테러에 사용한 폭탄이 ‘압력솥 폭탄’임이 밝혀졌다. 압력솥에 장약과 뇌관장치, 쇠못 구슬 등 각종 금속장치를 넣은 조잡한 사제(私製)폭탄이었다. 인터넷에서 제조법을 익히고 100~200달러만 들이면 만들 수 있는 범행도구였다. 당초 해외 테러조직에 무게를 뒀던 수사팀은 미국 내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일컫는 ‘외로운 늑대’의 소행이라고 조심스럽게 점찍었다.
수사팀은 12개 블록에 설치한 폐쇄회로(CC)TV뿐 아니라, 인근 상점의 CCTV, 통화기록 등을 수집하고 시민들에게서 현장을 찍은 동영상과 사진을 받았다. 그렇게 수집한 데이터만 영화 1만 편에 해당하는 10테라바이트(TB) 분량이었다. 결국 이번 사건의 해결 실마리는 방대한 데이터를 뜻하는 ‘빅데이터’의 힘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마라톤 참가 선수와 관람객까지 합하면 50만 명을 훌쩍 넘는 인파 속에서 용의자를 추려내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사람은 테러현장에서 두 다리가 잘려나간 제프 바우먼(27) 씨다. 그가 수술 뒤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수사관들에게 적어준 ‘가방, 이 사람을 봤다, 나를 쳐다봤다’는 메모가 결정적이었다.
용의자를 좁혀가는 도중에 사건의 해결 실마리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18일 오후 10시 30분경 보스턴 경찰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인근 워터타운의 한 편의점에서 강도 사건이 일어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공교롭게도 이 현장에 용의자인 형제가 있었다. 형제는 자기들을 잡으러 온 것으로 착각해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경찰 한 명이 사망했다.
처음 이 사건은 보스턴 테러와 관련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곧바로 용의자의 차량 탈취 소식이 전해졌고, 편의점 CCTV에 찍힌 모습이 용의자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추적해 총격전을 벌였다. 편의점 총격 사고 3시간 뒤 용의자 형제 가운데 형인 타메를란 차르나예프(26)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 총격전 와중에 그는 러시아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총격전을 벌이고 있다. 동생도 같이 있다. 엄마를 사랑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숨졌다. 이후 경찰은 블랙호크 헬기를 동원하고 인근 자택을 일일이 방문 수색했지만 동생 조하르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이라크-아프간 전쟁에 대한 반발
4월 19일 테러 용의자 검거 소식을 듣고 거리로 뛰쳐나와 성조기를 흔들며 기뻐하는 보스턴 시민들.
범인은 러시아 체첸공화국 출신으로, 10여 년 전 미국에 이민 와 영주권(형)과 시민권을 획득한 이슬람교도 형제다. 수사당국은 수사 초기에 이번 사건이 차르나예프 형제의 단독 범행으로, 국제 이슬람 테러조직과는 연계되지 않았다고 잠정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이 외부 이슬람세력의 지원을 받지 않은 독자적, 자생적 테러로 결론 날 개연성이 높아지면서 미 당국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졌다. 미국은 알카에다 등 국제 테러조직 척결에 치중한 나머지 정작 자국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자생적 테러에 소홀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범행 동기는 밝혀졌다. 조하르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인 것에 반발해 나와 형이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면서 “형이 2011년 사망한 미국 출신의 알카에다 지도자 안와르 알 알라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인터넷 설교에 고무돼 테러를 저질렀으며 폭탄 제조법은 알카에다 웹사이트에서 배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그는 형이 주모자이며 자신은 테러사건 일주일 전까지 계획조차 몰랐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마바 미 대통령은 범인 검거 뒤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살아온 그들이 왜 테러를 생각하게 됐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미국인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이번 테러사건은 총기규제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형제가 범행에 쓴 총과 화약을 손쉽게 구한 탓에 “테러리스트가 무기를 살 수 있는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미 의회에서 다시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미 의회는 지난해 12월 코네티컷 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지자 총기 구매자의 전과 조회를 예외 없이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보스턴 테러사건 발생 이틀 뒤 열린 상원에서 부결함으로써 더는 할 말이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