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1. 강세황의 가짜 ‘간찰’(왼쪽). 그림2. 강세황의 ‘간찰’을 위조할 의도 없이 모사만 한 경우를 가상한 예.
서화작품 수명은 표구에 달렸다. 우리나라 가짜 고서화작품을 보면, 대부분 표구에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된다는 듯이 지저분하고 엉망이다. 유행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 표구 형식이 때로 진위 감정에 결정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감정가가 아니더라도, 표구에 대한 기본 상식은 작품 감상에 유용하다. 꼼꼼히 살핀 결과 작품 표구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되면 의심할 필요가 있다.
그림3. 편지만 표구한 김정희의 ‘서찰’.
2003년 서울 예술의전당 기획 한국서예사특별전 ‘표암 강세황’에 출품했던 학고재 소장품인 강세황(1713~1791) ‘간찰’(그림1)은 위조자가 어처구니없이 실수한 가짜다. 위조자가 종이 한 장에 봉투와 편지를 같이 쓴 것이다. 봉투는 편지를 넣는 것이기에 당연히 분리돼야 마땅하다. 만일 처음부터 위조할 의도 없이 모사만 한 것이라면 봉투는 편지 뒤쪽(왼쪽) 부분에 썼어야 한다(그림2).
그림4. 편지와 봉투 앞뒷면을 펼쳐서 표구한 김정희의 ‘서찰’(왼쪽). 그림5.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최북의 가짜 ‘나무 그늘 아래서의 여유’, 종이에 수묵담채.
그림6. 겉면이 뜯긴 김구의 ‘재덕겸비’.
작품을 표구하는 과정에서 흔히 사용하던 위조 방법으로, 한 번만 알면 다음부터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게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중국에서 크게 유행하던 방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사용하는 위조 방법이다. 위조자가 종이에 완성한 그림이나 글씨의 겉면과 속층을 분리해 각각의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림7. 김정희의 가짜 ‘자화상, 자제소조’, 종이에 수묵담채(위). 그림8. 예산 김정희 종가가 소장한 ‘김정희 초상’ 부분, 비단에 채색.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호생관 최북’전에 출품한 최북의 ‘나무 그늘 아래서의 여유’(그림5)는 전체적으로 그림이 희미한데, 이는 그림 겉면을 벗겨내서 그런 것이다. 위조자는 속층으로 표구한 다음 대충 덧칠을 하고 위조한 도장 ‘호생관’을 찍었다. 이 원작의 겉면은 이미 없어졌지만 최북의 그림은 아니다.
전시회 설명에 따르면, 이 작품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1917년 일본인으로부터 사들인 ‘제가화첩’ 가운데 한 작품이다. ‘제가화첩’ 가운데 ‘푸른 바다의 해돋이를 보다’는 겉면이 벗겨진 속층을 표구한 다음 색깔을 덧칠하고 글씨와 도장을 위조했다. 참고로, ‘제가화첩’은 작품 전부가 허접한 가짜다.
가짜 그림에 가짜 글씨의 추사 자화상
2005년 제32회 한국미술품경매 당시 1300만 원에 나왔던 김구(1876~1949)의 ‘재덕겸비(才德兼備)’(그림6)는 원작의 겉면이 뜯긴 속층으로 작품을 만든 경우다. 이 작품은 작가가 먹물을 흥건하게 사용해 종이 아래까지 먹물이 스며든 것을 위조자가 이용했다. 겉면이 사라진 흔적은 글자 중 ‘備’자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2006년 추사 김정희(1786~1856) 서거 150주기를 기념한 서울 예술의전당 한국서예사 특별전 ‘추사 문자반야’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서울 시내버스에 외부광고까지 한 김정희의 ‘자화상, 자제소조’(그림7)는 가짜 그림 위에 가짜 글씨를 오려붙인 황당한 위조작이다.
김정희의 자화상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얼굴 모습(그림8)과도 너무 다르고, 자화상 윗부분에 따로 붙인 글씨 부분은 아무렇게나 자른 종이를 마구 붙여놓아 지저분할 뿐이다. 후대 사람이 종이 부분만 붙였다고 해도, 전혀 근거 없이 자르고 붙인 것이다. 당연히 고급문화 중심에 서 있던 김정희가 그렇게 했을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