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코리아’의 한 장면.
흥행 대박의 주인공은 ‘2016 : 오바마의 미국’이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정치를 시작한 보수논객 디네시 드소자가 자신의 저서 ‘오바마 분노의 근원’을 바탕으로 직접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영화가 주장하는 바는 단순명료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급진주의, 사회주의, 반제국주의로 국운을 쇠퇴시키려 한다”는 것. 그러니 오바마 재집권은 미국인에게 악몽이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 영화가 텍사스에서 처음 개봉할 무렵 전문가들은 “어차피 관객 대부분이 오바마 반대 성향이라 (대통령선거 판도를 바꾸는 데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미국 전역으로 상영관이 확대되고,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이 약한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에서도 적잖은 관객을 끌어모으면서 영화가 대통령선거(이하 대선)에 미칠 파급력을 무시하기 어렵게 됐다.
극장가가 ‘정치의 계절’을 맞은 건 한국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정치색이 강하고 사회 비판 수위가 높은 폭로·고발성 작품이 잇따르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한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는 고(故)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1980년대 중반 민주화운동을 하다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받은 참혹한 고문에 대해 이야기한다. 강풀 웹툰이 원작인 ‘26년’은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고 양민을 희생시킨 전(前) 대통령을 응징하고자 나선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다큐멘터리영화 ‘유신의 추억-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는 박정희 독재 정권의 폭압과 암울했던 시대상, 이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을 그렸다. 반(反)보수 성향의 영화들이 압도적인 가운데, 보수진영에선 박정희와 육영수의 러브스토리를 이야기 중심에 놓은 감우성, 한은정 주연의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에 기대를 걸고 있다. 모두 대선 전 개봉할 예정이다.
당선 before · after
‘MB의 추억’의 한 장면.
영화는 당선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를 보여줄 뿐인데 관객은 폭로와 고발이라고 느낄 만하다. “아직도 배가 고프다”던 TV 광고나 “경제를 살리겠다” “교육을 지원해 가난의 대를 끊겠다”고 한 약속은 당선 이후 잇따른 반값등록금 시위 장면과 대비되면서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대선 후보 시절 군부대를 방문한 영상자료 바로 뒤에는 병역을 면제받은 장관들로 구성한 내각 모습이 따라붙는다. BBK 의혹은 당시 경선에서 맞붙은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의 목소리로 언급된다.
영화는 “앞으로 잘한다고 할 게 아니라 지난 5년간 잘했어야지, 어제 못한 사람이 내일 잘할 수 있어요? 정권을 바꿔야 합니다”라는 이 대통령의 당시 유세 발언을 새누리당 현판이 등장 하는 영상과 함께 들려준다.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쁜 X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문제”라고 한 전여옥 전 의원의 5년 전 발언도 들린다. 곧 치를 대선에서 정권을 심판하고 투표하자는 메시지를 현 집권세력의 입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맥코리아’는 서울시와 정부의 주요 민자사업 투자 유치과정에서 이 대통령과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이하 ‘맥쿼리’)의 유착 및 특혜 의혹을 파헤친 다큐멘터리영화다. 맥쿼리는 호주 시드니에 본사를 둔 글로벌 투자은행이자 금융서비스그룹으로, 2002년 한국지사를 설립한 이후 서울시 민자사업 1호인 우면산터널 건립과 지하철 9호선을 비롯해 백양터널, 광주 제2순환도로 1구간 및 3-1구간,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수정산터널, 천안논산고속도로, 용인서울고속도로, 서울춘천고속도로, 인천대교, 마창대교 등에 투자했다.
이 영화는 이 대통령이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될 무렵 한국지사를 설립한 맥쿼리가 국내 민자사업 중 13개 사업장에 약 1조8000억 원을 투자하면서 승승장구한 점에 주목했다. 맥쿼리가 서울시와 정부로부터 최소수입운영보장제(MRG) 같은 특혜성 조건을 보장받으면서 고리(高利)의 후순위 대출로 막대한 이자수입을 올린 것은 공공서비스를 기업 이윤을 위한 제물로 희생시킨 결과가 아니냐는 게 이 영화의 문제 제기다. 정부는 막대한 세금을 맥쿼리라는 민간기업의 손해보전과 이자수입을 위해 바치고, 국민은 과도하게 인상된 공공서비스 요금을 부담해야 하는 부당한 현상을 이 영화는 지적한다.
영화는 또 맥쿼리가 투자한 서울시와 정부의 주요 민자사업 13건이 모두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부터 진행됐으며, 이 대통령의 조카이자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의 아들인 이지형 씨가 맥쿼리 관계사인 맥쿼리IMM자산운용 대표이사를 지낸 점, 송경순 전 맥쿼리 감독이사가 이 대통령과 각별한 친분이 있다는 점 등을 내세워 민간기업의 권력유착 및 특혜의혹을 제기한다.
두 영화는 촬영기법 면에서도 흥미롭다. 두 영화 모두에서 ‘볼링 포 컬럼바인’ ‘화씨 9/11’ ‘식코’ 등을 연출한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점이 그렇다.
‘MB의 추억’은 극화나 연출, 내레이션을 배제한 채 제작진이 자체 촬영한 영상과 기존 인터넷 방송 미디어가 보도한 장면을 의도에 맞게 ‘편집’ 및 가공함으로써 이야기하려는 바를 강조한다. ‘화씨 9/11’과 똑같은 제작기법이다. ‘맥코리아’는 제작진이 문제 당사자를 무작정 찾아가 인터뷰를 시도하는 일종의 ‘게릴라식 촬영’ 장면을 보여준다. 제작진이 만나려는 사람들은 대개 기업이나 기관 고위층인데, 무어가 제네럴모터스(GM)의 대량해고 사태를 다룬 ‘로저와 나’, 그리고 컬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볼링 포 컬럼바인’에서 사용한 방식이다.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당하지만 그 시도와 무산 과정 자체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취재 대상에 대한 의혹과 혐의가 강조된다. 제작진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물론이다. 정치 계절을 맞아 극장가의 고발성 혹은 폭로성 작품들이 어떤 반향을 이끌어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