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초상화.
명성에 비해 증거가 적다 보니, 급기야 셰익스피어에 관한 여러 억측과 소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라는 사람은 실존하지 않았으며 다만 누군가의 필명, 또는 가명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진짜’ 셰익스피어의 후보로 종종 거명되는 인물로는 월터 롤리, 에드먼드 스펜서, 크리스토퍼 말로, 대니얼 디포, 옥스퍼드 백작인 에드워드 드 비어 같은 당대 저명한 문인과 정치가가 있다. 심지어 엘리자베스 1세나 펨브로크 백작의 부인 메리 시드니 같은 여성도 후보로 거명되며, 나아가 이들 중 몇 명이 사이좋게 합작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50명이 넘는 후보자 중에서도 가장 유력하게 지목되는 사람은 바로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그리고 이 가설의 창시자는 흥미롭게도 딜리아 ‘베이컨’이라는 이름의 여성이다.
1811년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난 딜리아 베이컨은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말솜씨와 탁월한 지성으로 많은 사람을 사로잡은 대중 강연자 겸 문필가였다. 초절주의 철학자 랠프 월도 에머슨은 한때 그를 가리켜 시인 월트 휘트먼에 버금가는 미국의 천재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한 가지 주제에 관심을 가졌다 하면 끝까지 파고드는 악착같은 성격은 그의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었는데, 훗날 평생에 걸쳐(또는 평생을 낭비하며) ‘셰익스피어-베이컨’ 가설을 입증하려고 악전고투를 벌인 것도 분명 그런 성격의 연장이었으리라. 그는 “무식하고 비천하고 상스러운 촌뜨기”인 셰익스피어가 그런 걸작을 썼을 리 없다는 확신에 근거해 셰익스피어 작품의 ‘진짜’ 저자가 따로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셰익스피어의 후보로는 당대 저명한 문인과 정치인 등 수많은 인물이 거론된다. 엘리자베스 1세, 에드워드 드 비어, 에드먼드 스펜서, 대니얼 디포, 크리스토퍼 말로(왼쪽부터).
그가 점찍은 후보자는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에 살았던 철학자 겸 정치가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마침 그의 친구인 새뮤얼 모스(모스부호의 창시자)는 베이컨이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독특한 암호 체계를 개발했다는 사실을 귀띔해줬다. 모스의 조언을 토대로 딜리아는 베이컨이 직접 작품을 집필한 다음 셰익스피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러면서 군주제하에서는 차마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혁명 사상이 암호화되어 작품에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급기야 그는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려고 셰익스피어와 베이컨 관련 자료가 보관된 영국으로 향한다. 이때쯤 셰익스피어-베이컨 가설에 대한 그의 집착은 망상으로 발전한 상태였다.
에머슨의 소개로 알게 된 역사가 겸 저술가 토머스 칼라일은 딜리아의 가설을 허무맹랑하다고 일축하면서도, 정말 자신 있다면 구체적인 자료 조사를 통해 분명한 증거를 찾아내라고 마지못해 독려했다. 그러나 딜리아는 관련 자료를 폭넓게 섭렵하기는커녕 자기 방에 틀어박혀 버렸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작품 몇 편을 거듭해 읽으며, 그 안에서 ‘내적 증거’를 찾겠다고 강박적으로 골몰했다. 급기야 셰익스피어와 베이컨의 무덤 안에 뭔가 결정적 증거가 들어 있으리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나머지 한밤중에 혼자서 이들의 무덤을 찾아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셰익스피어 희곡 철학 해설’(1856)이라는 675쪽짜리 저서를 펴냈지만, 비평가와 독자 모두에게서 외면과 조소를 받았을 뿐이다.
“무언가를 추구하다 결국 추락한” 사람들, 즉 “세상을 바꾸지 못한 열세 명” 가운데 하나로 딜리아 베이컨을 선정한 서지학자 겸 저술가 폴 콜린스는 셰익스피어-베이컨 가설을 소개한 그의 저서를 직접 읽어본 소감을 다음과 같이 한 마디로 요약한다.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 원고를 집필하던 당시 딜리아는 이미 중증 정신질환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시하기는커녕 조리 있는 문장을 쓰는 데도 실패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자살 기도와 망상 증세(이번에는 자기가 베이컨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끝에 고향으로 돌아와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1859년 정신병원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도 셰익스피어-베이컨 가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심심찮게 나왔다.
아전인수와 침소봉대의 책
딜리아와 달리, 그 나름대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한 사람도 있었다. 가령 이그나티우스 도널리는 ‘위대한 암호’(1888)에서, 그리고 에드윈 더닝 로렌스는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다’(1910)에서 저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숨겨진 베이컨의 암호 메시지를 찾아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이 사용한 철자 재조합식 암호 해독법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 워낙 자의적이고 일관성 없는 해독법이다 보니, 똑같은 방법을 이용해 “진짜 저자는 베이컨이 아니라 셰익스피어다”라는 비밀 암호를 찾아낼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진짜’ 셰익스피어의 정체에 관한 저서는 지금까지 5000종 이상 간행됐지만, 어떤 것도 견강부회와 아전인수, 침소봉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셰익스피어-베이컨 가설은 많은 사람이 신봉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초상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셰익스피어-베이컨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아직까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이 가설을 신봉하는 사람이 계속 나오는 것은 어째서일까. 앞서 설명했듯이,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의 생애 자체에 관한 증거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에 관한 증거 자체가 의외로 드물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나머지 여기엔 분명히 어떤 수수께끼가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미 납득할 만한 설명이 나왔다. 셰익스피어 생애에 관한 자료가 드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자료 보관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동시대의 다른 극작가 중에도 생애가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사람은 많다. 셰익스피어만 예외는 아니라는 뜻이다.
추적하는 사람의 ‘속물근성’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스탠리 웰스는 셰익스피어-베이컨 가설을 신봉하며 위대한 작가의 ‘진짜’ 정체를 추적하는 사람의 심리를 ‘속물근성’이라고 꼬집는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무척 멋지고 아름답지만, 정작 우리가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스펙’은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인다.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좋은 교육을 받지도 못했으며, 생전에만 해도 2류 배우 겸 극작가로 여겨졌기 때문에 어딘가 탐탁찮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셰익스피어만 아니라면 그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진짜’ 셰익스피어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어떤 문학작품이 매우 훌륭하다고 해서, 그 작품의 저자조차 매우 훌륭한 사람이리라 지레짐작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일 것이다.
이런 황당무계한 가설은 셰익스피어가 죽고 수백 년이 지나면서부터 우후죽순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며 기록이 유실되고 기억이 쇠퇴하자 의심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수백 년 뒤에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진짜’ 저자에 관한 ‘롤링-킹 가설’도 나올 가능성이 있겠다.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가난한 미혼모인 조앤 K. 롤링이 썼을 리 없다. 정황 증거로 보아 이는 동시대 최고의 인기 소설가 스티븐 킹의 작품일 것이다. 실제로 킹은 이전에도 다른 필명으로 작품을 간행한 적이 있고, ‘J. K. Rawling’이란 이름에는 ‘King’ 철자가 숨어 있으니까.”
그야말로 일고의 가치도 없어 보이는 엉터리 이론이 아니냐고? 물론이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베이컨 가설을 바라보는 전문가의 심정도 딱 그렇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