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 있게 만드는가?’, 해밀턴, 1956년, 콜라주, 26×25, 독일 튀빙겐 미술관 소장.
그렇다고 대화하면 가정이 행복해지리라 생각하면 착각이다. 가정은 수도원이 아니다. 부부에게 중요한 것은 대화보다 섹스다. 밤의 천국은 낮의 지옥을 상쇄한다. 신혼 시절이 가장 행복한 이유도 만족스러운 섹스 때문이다.
서로에게 만족하는 신혼부부를 그린 작품이 리처드 해밀턴(1922~)의 ‘도대체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 있게 만드는가?’다.
근육질의 남자가 빨간색 포장지에 싸인 막대사탕을 들고 거실 한가운데 서 있고, 여자는 소파에 앉아 브래지어를 내린 채 자신의 손으로 풍만한 가슴을 받치고 있다. 그들 뒤에서는 붉은색 옷을 입은 여자가 청소기로 계단을 청소 중이다. 속옷 차림의 남자와 여자는 부부임을 알 수 있다.
1950년대 가정집 실내를 콜라주로 재현한 이 작품에서 조각 같은 몸을 지닌 남자와 풍만한 가슴을 드러낸 여자는 잡지 속 속옷 광고를 오려서 붙인 것이다. 몸매 가꾸기에 열성적인 현대인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여자의 선정적인 자세는 여자가 가정에서 성적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오디오, TV, 토스트 기계는 현대 기술을, 커피와 토스트는 현대인의 소비주의를 상징한다. 거실 벽에 로맨스라고 적힌 액자는 연애결혼을 암시하며, 턱시도를 입은 남자의 초상화는 전통의 단절과 해체된 가족 관계를 의미한다. 청소기로 계단을 청소하는 여자의 모습은 현대 가정의 깨끗한 환경을 나타낸다. 거실에 널린 신문과 TV를 통해 현대인이 무의식적으로 많은 매체에 노출돼 있음을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 남자가 든 막대사탕에 노란색 글씨로 팝이라고 쓴 것은 팝아트를 의미한다. 새로운 미술운동(팝아트)을 시각적으로 처음 인용한 이 작품은 미술사에서 획기적인 이정표가 됐다. 해밀턴은 영국 런던의 화이트채플 아트 갤러리에서 기획한 ‘이것이 내일이다’전에 출품하려고 이 작품을 제작했다. 1950년대 해밀턴은 미래에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여자, 음식, 신문, 영화, 가정용품, TV, 전화기, 정보를 꼽았다. 그는 잡지에서 오려 붙인 이미지에 자기 생각을 담았다.
(위)‘자동인형 조지와 결혼했다’, 그로스, 1920년, 펜과 연필 및 먹물에 수채, 콜라주, 42×30, 독일 베를린 갤러리 소장. (아래)‘부부’, 앤더슨, 2004년, 마일라에 유채, 105×157, 독일 뮌헨 그림 로젠펠트 소장.
외음부가 드러난 흰색 속옷을 입은 여자가 고개를 돌려 인형을 바라보고 있다. 여자의 드러난 젖꼭지를 콜라주로 된 남자의 손이 더듬는다. 젖꼭지를 더듬는 남자의 손 때문에 여자는 성적 욕망을 느끼는데, 붉은 뺨이 그것을 강조한다.
그림 오른쪽 남성복을 입은 인형의 몸은 온통 기계로 이뤄졌고 머리 위에 올린 손은 숫자가 적힌 종이를 잡고 있다. 인형 몸속의 톱니바퀴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사회를 의미하며, 얼굴 한가운데에 있는 종이의 숫자는 남자의 노동량을 나타낸다. 외음부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속옷은 여자가 유부녀임을 암시한다. 여자가 결혼하면 성적 욕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남자를 기계인형으로 표현한 것은 결혼 후 남자는 성적 욕구를 채우는 일보다 돈 버는 일에 더 관심 둔다는 것을 말하려는 의도다. 여자 손이 허공을 더듬는 모습은 결혼 후 남편에게서 성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기계인형은 그로스 자신을 가리키며 여자는 1920년에 결혼한 아내 루이제 페터다. 그로스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결혼 후 부부의 섹스 시간은 남편에게 맞춰진다. 하지만 남편이 발기하는 것에 맞춰 여자의 성욕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남편의 성적 욕구를 해결하려는 일방적인 섹스는 아내 처지에선 강간이다. 남편의 일방적인 섹스를 그린 작품이 맷 앤더슨(1975∼)의 ‘부부’다. 이 작품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마르타’(1974)의 한 장면을 묘사했다. 앤더슨은 영화 속 사디스트 남편이 뜨거운 햇볕에 피부를 그을린 아내를 성추행하는 장면을 표현했다.
검은색 정장 차림의 남자가 침대에 벌거벗은 채 누워 있는 여자에게 입을 맞춘다. 벌거벗은 여자와 양복 입은 남자는 부부다. 검은색 정장 차림은 남자의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며, 남자가 일방적으로 여자에게 키스하는 모습은 부부간 성추행을 표현한 것이다. 사실적으로 표현한 여자의 붉은빛 피부는 성추행으로 인한 고통을 드러낸다.
아내에게 봉사하려고 섹스를 하는 순간부터 집 안에 찬바람이 분다. 아내는 어쩌다 한 번, 가물에 콩 나듯이 하는 섹스에 결코 감사하지 않으며 짧게 하는 섹스에 희망도 걸지 않는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