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에서 난 찻잎으로 만든 발효차다. 단맛이 길고 신맛이 부드러우며 배 향이 난다.
한국인 밥상에는 한국 전통 음료가 없다. 수정과와 식혜가 있긴 하지만, 커피처럼 일상에서 수시로 마시는 음료가 없다는 얘기다. 물이 좋아 그 물을 그냥 마셔도 되니 차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또한 숭늉이 일상 음료라는 얘기도 있지만, 숭늉은 음식이지 음료가 아니다. 옛날에는 있었는데 없어졌다는 말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차다. 불교가 융성하던 고려시대까지 차를 흔히 마셨지만 유교국가인 조선에 와서 이 전통이 사라졌다는 주장이다. 옛날이야 어찌했든, 현재 한국에서 일상 음료는 커피다.
차가 한국 전통 음료이니 이를 되찾아야 한다며 한때 녹차 붐이 일었다. 전통 찻집에 앉아 다도를 배우는 사람도 많았다. 햇찻잎이 나오는 5월이면 경남 하동과 전남 보성 등지로 차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녹차 붐은 잠시 일다가 말았다. 1990년대 녹차 붐에 맞춰 차나무 재배 농가가 부쩍 늘었는데, 소비는 쥐꼬리여서 최근에는 폐원하는 차밭도 많다. 녹차 붐이 일다가 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녹차에 허세가 붙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 않나 싶다. 일상에서 편하게 마셔야 할 음료에 다도니 다례니 하며 ‘폼’을 잡으니, 대중은 녹차를 몇몇 호사가의 기호음료 정도로 치부해버리고 만 것이다. 차를 일상 음료로 마시는 일본, 중국, 영국이 차 마시는 일에서 그렇게 도를 찾는지 묻고 싶다. 녹차를 마시는 데 도가 있으면 커피에도 도가 있고 콜라에도 도가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녹차가 과연 한반도의 대표 차가 될 수 있는지 따져봤어야 했다. 찻잎을 어떻게 가공하는지에 따라 차 종류는 다양해진다. 차나무의 어린잎을 덖어 말린 것이 녹차다. 찻잎을 고온에서 덖으면 산화효소의 작용이 정지돼 발효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녹차를 불발효차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찻잎을 적당히 발효시킨 반발효차, 인도와 유럽에서는 완전발효차를 즐긴다. 일본은 불발효차가 주를 이루는데, 증기로 찌는 증제차라는 점이 다르다.
차 전문가의 자료를 보면 한반도에는 녹차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발효차 전통이 더 깊다 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가 주고받았다는 그 차도 떡차라는 발효차다. 그럼에도 녹차가 한국 전통차인 것처럼 포장했는데, 차 가공 산업과 관련 업체의 ‘장난’이 아닐까 싶다. 대량 제조가 쉬운 증제차도 녹차라는 이름으로 팔린다는 것이 녹차 전통 만들기가 ‘장난’일 수 있다는 짐작의 근거다.
녹차 붐이 다시 일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다도를 들먹이는 사람들의 허세에 질렸을 수도 있고, 대기업의 싸구려 녹차 티백에 입맛을 버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차나무를 다 베어버릴 것은 아니다. 아직 대중화를 시도해보지 않은 아이템이 있다. 바로 발효차다.
발효차는 중국과 인도의 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고급 제품이 국내에서도 비싸게 팔린다. 이 시장을 보고 덤비자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발효차 시장을 개발해보자는 의미다. 발효차는 차나무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인데, 한반도에서 나는 발효차도 개성이 뚜렷해 새로운 시장을 여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느 홍차류에 비해 발효취가 적고 단맛이 길며 신맛이 부드러운 차가 한국인의 입맛에 더없이 어울릴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우전이니 세작이니 하며 어린잎의 차만 최고급품으로 취급하고, 차 등급이 곧 신분 등급이나 되는 듯 얘기하는 호사가들의 반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 발효차는 다 큰 찻잎으로도 훌륭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