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흰 털이 났습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처음 흰 털을 발견했을 땐
정말이지 화들짝 놀랐더랬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의 기분이
이해됐습니다 그녀는 거기 난 흰 털을
염색하려다 빨간 털로 만들어버린 적이
있었지요 그걸 보곤 배꼽 잡고 웃었는데
내 일이 돼버리니 남편에게 들킬까
전전긍긍하게 됐습니다 한동안은
머리에 듬성듬성 흰 털 난 사람만 보면
묻고 싶어졌습니다 저기요 혹시
거기도 거기에 흰 털이 났나요
이미 거기가 흰 털로 뒤덮인 분들이 들으면
흰 털이면 어떻고 빨간 털이면 대수냐
흰 털이나마 소복이 덮여 있으면 따숩고
고마운 줄 알거라 머리털 빠지듯 그 털도
죄 빠지고 맨송맨송 민둥산 되고 나면
허 참 그 얼마나 허전 시린 일인 줄 아는가
그깟 흰 털 세 가닥 가지고 흰소리 치지 마라
호통칠 일이겠지만 무시로 거기에 흰 털이
더 늘었나 그대로인가 확인하고 싶어지고
은근히 거기 난 흰 털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저는 아직도 거기의 흰 털에는 이렇게
아리송한 초짜라서 흰 털 세 가닥 값도
못하고 이렇게 흰 털 타령이 늘어집니다
― 성미정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문학동네, 2011)에서
혹 당신도 화들짝 놀랐는지요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한밤중에 샤워를 하다가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거기’가 거뭇거뭇한 것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들고 있던 샤워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바닥에 누운 샤워기에서 분수처럼 물이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욕실이 수증기로 가득 찼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나는 사타구니를 더욱 박박 문질러 씻었다. 비누질을 열심히 하면 거웃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웃이 나는 걸 받아들이기에 열세 살 소년은 너무나도 순진했다.
한동안 나는 그 사실을 잊었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그 사실을 그저 모르고 싶거나 절대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아빠를 따라 목욕탕에 갔다. 목욕탕 입구에서, 갑자기 열세 살 소년은 울상을 짓고 말았다. 그제야 그 사실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뭇한 거웃을 연상하자, 남몰래 나쁜 짓을 한 것처럼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단 하나, 뭔가 못마땅한 게 있는 아이처럼 쭈뼛거리기. ‘전전긍긍하는’ 나를 보고 아빠가 인상을 썼다. 순순히 목욕탕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다가 나는 “정말이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거웃은 정말이지 겁도 없었다. 그새 “듬성듬성”에서 수북수북이 됐던 것이다. 봄볕 아래 펼쳐진 숲처럼 한껏 우거졌던 것이다. 경악한 나는 두 손을 모아 사타구니를 가렸다. 또다시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형이 “그걸 보곤 배꼽 잡고 웃었”다. 사춘기가 “내 일이 돼버리니”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 마시며 돌아오는 길은 괜히 더 구슬펐다. 이러다 훌쩍 어른이 돼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니, 그때는 왜 그렇게 호들갑을 피웠는지 피식 웃음이 난다. 당시에는 “큰일”이나 “대수”였던 게 지금 와서는 별일 아닌 게 돼버린 것이다. 머리는 약아지고 태도 또한 한층 능글맞아졌다. 그러나 앞으로 나는 한 번 더 놀라게 될 것이다. 다름 아닌 “흰 털”이 났을 때. 털이 나는 것도 놀라운데, 그 털이 흰 털이라니! 성인이 되고 노인이 되는 순리를 깨닫고 무르팍을 탁 칠지도 모른다. 또 한 번 호들갑을 떨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아리송한 초짜”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 한바탕 껄껄 웃을 것이다.
*오은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
큰일이 났습니다 처음 흰 털을 발견했을 땐
정말이지 화들짝 놀랐더랬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의 기분이
이해됐습니다 그녀는 거기 난 흰 털을
염색하려다 빨간 털로 만들어버린 적이
있었지요 그걸 보곤 배꼽 잡고 웃었는데
내 일이 돼버리니 남편에게 들킬까
전전긍긍하게 됐습니다 한동안은
머리에 듬성듬성 흰 털 난 사람만 보면
묻고 싶어졌습니다 저기요 혹시
거기도 거기에 흰 털이 났나요
이미 거기가 흰 털로 뒤덮인 분들이 들으면
흰 털이면 어떻고 빨간 털이면 대수냐
흰 털이나마 소복이 덮여 있으면 따숩고
고마운 줄 알거라 머리털 빠지듯 그 털도
죄 빠지고 맨송맨송 민둥산 되고 나면
허 참 그 얼마나 허전 시린 일인 줄 아는가
그깟 흰 털 세 가닥 가지고 흰소리 치지 마라
호통칠 일이겠지만 무시로 거기에 흰 털이
더 늘었나 그대로인가 확인하고 싶어지고
은근히 거기 난 흰 털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저는 아직도 거기의 흰 털에는 이렇게
아리송한 초짜라서 흰 털 세 가닥 값도
못하고 이렇게 흰 털 타령이 늘어집니다
― 성미정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문학동네, 2011)에서
혹 당신도 화들짝 놀랐는지요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한밤중에 샤워를 하다가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거기’가 거뭇거뭇한 것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들고 있던 샤워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바닥에 누운 샤워기에서 분수처럼 물이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욕실이 수증기로 가득 찼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나는 사타구니를 더욱 박박 문질러 씻었다. 비누질을 열심히 하면 거웃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웃이 나는 걸 받아들이기에 열세 살 소년은 너무나도 순진했다.
한동안 나는 그 사실을 잊었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그 사실을 그저 모르고 싶거나 절대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아빠를 따라 목욕탕에 갔다. 목욕탕 입구에서, 갑자기 열세 살 소년은 울상을 짓고 말았다. 그제야 그 사실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뭇한 거웃을 연상하자, 남몰래 나쁜 짓을 한 것처럼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단 하나, 뭔가 못마땅한 게 있는 아이처럼 쭈뼛거리기. ‘전전긍긍하는’ 나를 보고 아빠가 인상을 썼다. 순순히 목욕탕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다가 나는 “정말이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거웃은 정말이지 겁도 없었다. 그새 “듬성듬성”에서 수북수북이 됐던 것이다. 봄볕 아래 펼쳐진 숲처럼 한껏 우거졌던 것이다. 경악한 나는 두 손을 모아 사타구니를 가렸다. 또다시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형이 “그걸 보곤 배꼽 잡고 웃었”다. 사춘기가 “내 일이 돼버리니”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 마시며 돌아오는 길은 괜히 더 구슬펐다. 이러다 훌쩍 어른이 돼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니, 그때는 왜 그렇게 호들갑을 피웠는지 피식 웃음이 난다. 당시에는 “큰일”이나 “대수”였던 게 지금 와서는 별일 아닌 게 돼버린 것이다. 머리는 약아지고 태도 또한 한층 능글맞아졌다. 그러나 앞으로 나는 한 번 더 놀라게 될 것이다. 다름 아닌 “흰 털”이 났을 때. 털이 나는 것도 놀라운데, 그 털이 흰 털이라니! 성인이 되고 노인이 되는 순리를 깨닫고 무르팍을 탁 칠지도 모른다. 또 한 번 호들갑을 떨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아리송한 초짜”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 한바탕 껄껄 웃을 것이다.
*오은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