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율 질병관리본부장이 11월 11일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부 브리핑실에서 논란이 된 가습기 살균제 6개에 대한 수거 명령을 발표하고 있다.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면 그 손해 정도에 맞게 배상하는 게 우리나라 불법행위법의 원칙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의료사고의 경우 일반인이 시술 의사의 잘못을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주가조작으로 수만 명에게 10만 원씩 이득을 취한 경우에도 개인이 10만 원을 찾자고 소송하기 어렵다. 제조물도 제품마다 사소한 하자가 있는 경우 소비자 개인의 피해는 크지 않으나 전체 손해액은 막대할 수 있다. 자동차는 리콜을 하지만 이러한 제도로 모든 하자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럴 때 제기하는 것이 집단소송(class action)이다.
미국법에서는 개개인이 소송하기에 적절치 않은 상황에서 피해자를 대표하는 조직체가 있고 그 대표자가 적절한 변론을 할 수 있을 경우 집단소송제도를 이용한다. 그렇다고 대표자가 구성원 전부에게 일일이 위임받을 필요는 없다. 영미법에서는 가해자가 위험성을 알면서도 손해를 발생시켰다면 실제 손해액의 수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을 명할 수 있다.
변호사에게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줘 소송 남발의 원인이 되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비난도 있지만, 사회 전체의 이익을 보호하므로 공익소송제도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을 제정해 주가조작 등의 경우 예외적으로 집단소송을 인정한다.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했다.
단체소송(Verbandsklage)은 개별적 권리구제가 적절치 않을 경우 피해자를 대표한다고 생각되는 단체가 그 이름으로 소송을 진행하는 제도다. 국내에선 침해행위가 있는 경우 그 행위의 금지 및 중지를 구하는 소송을 단체가 제기할 수 있다(소비자기본법 제70조). 생산 금지는 가능하지만, 직접적으로 개개인의 손해배상을 구하지는 못한다. 물론 그 단체가 손해배상을 구하는 분쟁조정을 신청해(제65조), 만들어진 조정안에 대해 생산자의 이의가 없으면 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다(제67조). 그렇지만 생산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조정안에 동의할 리 없으므로 권리구제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집단소송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에서는 피해자가 일일이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해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비용을 절감하려면 피해자가 함께 모이는 것이 필수적인데, 이 과정에는 실제 소송에 견줘 결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인 점은 우리의 경우 이미 제조물책임법을 둬 피해자가 먼저 하자가 있음을 입증할 필요는 없고, 제조업자가 당해 제조물을 공급한 때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결함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 등을 입증하도록 했다는 것이다(제조물책임법 제4조 제1항 제2호). 물론 그렇더라도 전문 기술을 갖춘 생산자와 과학·기술적 논쟁을 벌이는 일은 부담스럽고, 열정이 없으면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