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독자적인 운영체제(OS)인 ‘바다’의 점유율은 전 세계적으로 1.9%에 불과하다.
구글은 8월 15일(현지시간) 휴대전화 제조업체 모토로라모빌리티를 125억 달러(약 13조5125억 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과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를 소유한 구글이 휴대전화 제조업체까지 손에 넣으면서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지각 변동을 예고했다. 전 세계 정보기술(IT) 업체는 향후 파장을 분석하느라 숨 가쁘게 움직였다. 특히 안드로이드 진영의 대표주자로 애플을 위협하는 삼성전자의 향후 행보에 이번 인수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
구글 최고경영자(CEO) 래리 페이지는 “이번 인수로 안드로이드의 생태계 전체가 큰 힘을 얻을 것이며 이는 소비자와 파트너 회사, 개발자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토로라 CEO 산자이 자도 “이번 인수합병(M·A)으로 모토로라는 더욱 혁신적인 모바일 기기를 만들게 됐다”고 강조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OS로 스마트폰을 만드는 삼성전자 같은 제조사가 우려하는 안드로이드의 제한적 운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모토로라를 독립된 사업으로 운영할 예정이며, 안드로이드는 현재처럼 모든 제조사에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안드로이드 생태계 전체 요동
구글 측 발표대로라면 ‘그럼 구글은 왜 굳이 모토로라를 인수했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든다. 구글의 역대 M·A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현금 13조5125억 원을 선뜻 내놓았기에 더욱 그렇다. 전문가들은 안드로이드 진영과 비(非)안드로이드 진영 간 치열한 특허전쟁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 특허전쟁은 크게 ‘구글’ 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오라클’이 대결을 펼치는 양상이다. 구글 편에 속한 기업은 삼성전자, 모토로라, HTC 등이다. 이들은 반대편인 애플과 MS로부터 무차별 특허소송을 당하고 있다. 애플은 자사 디자인 표절 의혹 등을 이유로, MS와 오라클은 안드로이드 OS에 자사 특허기술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소송을 걸었다. MS는 이미 HTC로부터 스마트폰 1대당 5달러의 로열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삼성전자와도 로열티 문제로 협상 중이다.
최근 구글 최고법률책임가(CLO) 데이비드 드러몬드 부사장은 “20년 동안 서로 으르렁대던 MS와 애플이 안드로이드를 공격하려고 한 침대에 들어갔다. 특허는 혁신을 위해 써야 하는데, 경쟁을 회피하기 위한 무기가 됐다”면서 “안드로이드 진영을 향한 애플과 MS의 적대적이고 집단적인 공격을 구글도 보고만 있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구글, 애플과 MS는 전쟁에 앞서 무기(특허)를 사 모으려 애썼다. 애플과 MS는 컨소시엄을 만들어 캐나다 통신회사 노텔 특허를 당초 예상 가격의 3배가 넘는 45억 달러(4조8150억 원)에 사들였다. 구글도 곧바로 IBM 특허 1000여 개를 인수했다.
모토로라모빌리티는 올해 1월 모토로라의 휴대전화 부문을 분사해 만든 회사다. 올해 2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4%로, 1위 애플과 2위 삼성전자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모토로라는 통신 관련 특허만 1만7000여 개 갖고 있다. 이는 노키아의 2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구글이 제조업에 본격 뛰어든다면?
구글이 모토로라의 1만7000여 개 특허를 손에 넣으면서 안드로이드 진영은 특허전쟁의 지원군을 얻었다. 실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신종균 사장, HTC CEO 피터 초는 래리 페이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번 인수를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 관계자는 “최근 초유의 관심사인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전쟁이 완전히 묻힐 만한 초대형 특허전쟁이 올 것 같다”면서 “세계적인 IT 기업이 맞붙은 세기의 전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 드러몬드 부사장은 스마트폰 1대당 25만 개의 특허가 얽혔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장기전이다. 구글이 지금이야 특허전쟁의 급한 불을 끄는 데 정신없겠지만, 외부의 적이 사라진 후에는 내부 경쟁을 시작하게 마련이다. 현재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도 삼성전자, LG전자, HTC, 팬택계열은 치열하게 차별화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누가 더 화면이 큰지, 더 얇게 만들었는지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것. 여기에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이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를 만든 모토로라와 함께 제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시장의 지각 변동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국내 스마트폰 업계는 ‘제2의 아이폰 쇼크’가 오는 것 아니냐며 각각의 시나리오에 대응할 로드맵을 짜고 있다. 삼성전자는 제조경쟁력 측면에서 두려울 것이 없다는 분위기다. 현재 모토로라는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에서 LG전자보다 낮은 4%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글이 삼성전자나 HTC와의 파트너십을 버린다면 안드로이드 진영의 양 날개가 꺾일 것이라는 얘기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무기로 삼성전자나 LG전자를 위협한다면, 두 회사의 개인용 컴퓨터(PC) 사업 부문에서 오랜 파트너인 MS도 선택 대안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 최지성 부회장은 8월 16일 서초사옥에서 기자들과 만나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삼성은 자체 OS(바다)도 갖고 있고 MS도 활용할 수 있다”면서 “휴대전화 사업이 단순히 OS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결국 삼성전자는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애플과 소니의 관계처럼 구글과 ‘경쟁 및 협력관계’를 찾아갈 전망이다. 부품이나 하드웨어 제조기술에서 우위를 유지한다면, 구글도 삼성과 협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OS가 휴대전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OS를 중심으로 각각의 애플리케이션 생태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OS 전략’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구글이 OS를 무기로 제조사에 막대한 로열티를 요구하기 시작하거나 모토로라에만 특혜를 준다면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쓸 수 있는 카드가 생각보다 제한적일 수 있다.
다시 말해 MS로 간다 한들, 미흡한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이미 안드로이드에서 비싼 애플리케이션을 사들인 사람은 아무리 화면이 크고 좋아도 다른 OS 플랫폼으로 옮기길 꺼린다. OS를 외부에 의존하면, 결국 외부업체에 종속하는 결과를 낳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그나마 자체 OS 바다를 만들고, 삼성만의 플랫폼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LG전자나 팬택계열은 손에 든 자체 무기가 없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좌지우지하던 회사지만, 스마트폰 패러다임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넘어가면서 구글 의도에 따라 회사의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지경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