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네이크 박정민(위)과 야스오 최재섭(왼쪽), 그리고 딸기소녀 김병춘.
한국 가요계는 지금 아이돌 가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콘셉트도, 개성도 다양한 남녀 아이돌그룹이 가요계를 장악했으니 말이다. 특히 걸그룹은 동년배 팬뿐 아니라, 나이가 2배 이상 많은 삼촌팬의 충성도 높은 ‘팬심’ 속에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해외에서도 한국 아이돌 가수의 케이팝(K-pop)이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나무는 그늘도 짙게 마련이다.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는 그만큼이나 어두운 그림자가 자리한다. 어린 나이에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아이돌 가수는 적잖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수년간 이따금 발생한 자살 사건이 이를 방증한다. 아이돌 가수의 자살 원인은 다양하지만, 이들의 죽음은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구조적 부조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코사와 료타 작/ 이해제 각색 및 연출)은 아이돌 가수의 돌연한 죽음을 다룬 무겁지 않은 미스터리 블랙코미디다. 이 작품은 미키짱 사망 1주기를 맞이해 모인 다섯 명의 삼촌팬이 ‘자살’로 판명된 미키짱 사망 사건의 전말을 새롭게 파헤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들의 이름은 이에모토, 키무라 타쿠아, 스네이크, 야스오, 딸기소녀로 미키짱 팬클럽 동호회에서 쓰는 이름 혹은 가명이다.
이들은 추모 행사를 하던 중 미키짱의 타살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면서 그의 ‘광팬’인 서로를 용의자로 의심한다. 각자의 알리바이를 캐낼수록 이들과 미키짱의 은밀한 관계가 하나하나 밝혀지고, 사건은 풀릴 것 같다가도 다시금 미궁으로 빠져들기를 반복한다. 결말은 희망적이고 따뜻하다. 미키짱의 죽음에 모두가 간접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후 죄책감에 시달릴 즈음, 새로운 단서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야기 전개를 보면 미스터리와 소극을 합쳐놓은 형상이다. 가설과 알리바이가 착착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논리적이지만, 상황 자체는 과장되고 황당하며 오해가 거듭되는 특징을 보인다. 바로 이 점이 ‘키사라기 미키짱’의 묘미다.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작품 저변에 깔린 진지한 주제를 한순간도 잊지 않게 한다.
이 연극은 주제 의식도 분명히 표출한다. 아이돌은 대중에게 허상이면서 판타지지만, 그들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삶을 개척하려 애쓰는 개인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또한 그들에게 아이돌 가수로서 살아갈 용기와 끈기를 주는 것은(그리고 빼앗는 것도) 매니저, 가족, 애인이 아니라 팬이라는 사실도 떠올리게 한다. 각색과 연출이 돋보인다. 주인공 다섯 명의 극 중 비중이 엇비슷한데도 캐릭터는 또렷하게 살아난다. 말장난이나 슬랩스틱보다 상황과 캐릭터로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며, 섬세한 타이밍의 액션도 완성도가 높다. 이에모토의 집을 단일 세트로 무대를 구성했지만 조명을 활용해 극 중 극 형식으로 사건 당시를 재현하는 장면은 효과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미키짱의 노래를 활용한 장면 전환과 마무리도 유쾌하다.
이에모토 역에 김남진과 김한, 키무라 역에 김원해와 이철민, 스네이크 역에 김민규와 박정민, 야스오 역에 윤상호와 최재섭, 딸기소녀 역에 염동현과 김병춘이 출연한다. 개막 직후여서인지 김남진의 연기가 안정적이진 않았으나, 서글서글한 순정남 이에모토 이미지와는 제법 어울렸다. 대체로 배우 모두가 재치 있게 자신의 역을 소화했다. 8월 7일까지, 컬쳐스페이스 엔유, 문의 02-766-6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