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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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비 덤터기 씌우고 환자 협박

일부 병의원 치료비 과다 청구 여전…심평원에 확인 요청하면 그제서야 환불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1-05-02 1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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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료비 덤터기 씌우고 환자 협박
    2010년 11월 퇴행성관절염 때문에 인공관절 삽입술을 받은 김모(83) 씨. 그는 30일간의 입원을 마치고 병원비를 정산하다 깜짝 놀랐다. 병원에서 청구한 금액은 125만1809원. 아무리 큰 수술을 받았다고 해도 병원비는 예상보다 훨씬 비쌌다.

    끙끙 앓던 김씨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진료비 확인 신청을 했다. 그 결과 청구된 금액 중 정당한 본인부담금은 73만1047원이고, 52만762원이 과다 청구된 사실이 드러났다. 병원 측에서 급여 대상 약제인 트로나마이신, 염산반코마이신, 곰세핀 주사 등을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으로 계산해 김씨에게 전적으로 부담시킨 것.

    지난해 48억 원 돌려받아

    “질병은 곧 가난”이라는 말이 극빈층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안 그래도 치료비가 비싼데, 만약 병원 측 잘못으로 환자에게 몇 배나 되는 치료비가 부과됐다면 더 큰 문제다. 요즘은 편의점에서 단돈 2000원을 써도 어디에 썼는지 영수증에 명시되지만, 병원 영수증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는 병원비 과다 청구에 눈 뜨고 당하기 십상이다.

    심평원은 2006년 ‘진료비 확인 신청 제도’를 도입했다. 심평원에 진료비 확인 신청을 하면 심평원은 개인이 낸 진료비가 어떻게 사용됐는지, 혹시 부당하게 사용된 내용은 없는지 병원을 상대로 조사한다. 만약 부당 청구 비용이 있으면 개인에게 돌려준다. 이 제도를 통해 2010년 한 해 동안 3892명이 총 48억 원의 진료비를 돌려받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다 청구되고 있지만 돌려받지 못하는 병원비에 비하면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입을 모은다.



    치료비 과다 청구의 주범은 ‘비급여’다. 비급여란 건강보험에서 급여를 지급하지 않아 치료비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는 것. 치료 과정에서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새로운 의료기술을 이용하거나 검사와 투약이 건강보험의 횟수 제한을 초과하는 경우, 병원은 이 치료비를 비급여로 처리해 환자에게 부담시킨다. 2010년 심평원을 통해 환자가 돌려받은 48억 중 처음 비급여로 처리해 환자가 부담했다가 그 행위가 부당한 것으로 드러나 돌려받은 돈이 35억6000만 원에 이른다. 한때 백혈병을 앓았던 한국백혈병환우회 박진석 사무총장 역시 완치 이후 진료비 확인 신청을 통해 총 진료비 3400만 원 중 1900만 원을 돌려받았는데, 잘못된 비급여 적용으로 더 낸 비용이 1392만 원이나 됐다.

    박씨는 “병원은 과다 청구했던 비용을 나에게 돌려준 이후, 기존에 비급여로 처리했던 1392만 원에 대해 다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보험을 청구했다. 그 결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병원에 1261만 원을 보험으로 지급했다”고 말했다. 박씨의 설명대로라면 병원은 처음부터 비급여로 처리하지 않고 보험으로 처리했더라도 130만 원 남짓만 손해를 본다. 박씨는 “병원이 130만 원을 손해 보기 싫어 환자에게 1300만 원을 부과했다”며 답답해했다.

    치료비 과다 청구 중 상당수가 ‘선택진료’ 때문에 발생한다. 선택진료란 환자가 특정 의사를 선택해 진료를 받는 것으로 진료비 외에 추가 비용을 부담한다. 의사 면허를 취득한 지 15년이 지났거나, 전문의 자격 인정을 받은 지 10년이 경과했거나, 대학병원(한방병원 포함)의 조교수 이상인 경우 선택진료 의사가 될 수 있다. 환자가 선택진료를 선택하면 진료비는 병원장이 결정한 만큼 추가된다.

    환자는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자유롭게 선택진료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진료를 했는지도 모르고 과중한 부담을 안는다면 이는 문제다. 항문암 수술을 받은 윤모(67) 씨는 진료비 확인 신청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자신이 입원과 동시에 선택진료를 신청했고, 800여만 원의 본인 부담 진료비 중 250만 원이 선택진료비였던 것.

    윤씨의 아들인 건강세상네트워크 박용덕 사무국장은 “입원 수속 당시 여동생이 뭔지도 모르고 간호사가 내미는 종이에 서명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택진료 신청서’였다”며 “진료비 확인 신청을 통해 89만 원을 돌려받았지만, 당시 선택진료 신청서에 서명한 것 때문에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선택하지도 않은 선택진료

    사전 지식이 없는 환자나 보호자는 선택진료 신청서의 함정에 빠질 소지가 크다. K대학병원에서 만든 선택진료 신청서를 살펴보자. 이 신청서에는 ‘선택진료를 신청하지 않으려면 비선택진료에 v표시를 하라’고 명시돼 있다. 작성자가 별도의 표시를 하지 않으면, 환자가 모든 과에서 선택진료를 신청한 것으로 자동 간주된다. 환자나 보호자가 자세히 읽고 이해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이 신청서의 참고사항에는 “환자가 동일 질환으로 동일 병원에서 한 번 선택진료 신청서를 작성한 경우, 선택진료를 해지하지 않았다면 진료행위가 계속 이어지는 경우 선택진료를 계속 신청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항목이 있다. 만약 첫 입원 당시 선택진료를 신청했다면 이후 입원할 때마다 자동으로 선택진료를 받게 되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포괄적 위임 규정’이다. 마지막 칸에 아무 생각 없이 표시하면 병원에서 받게 되는 모든 진료에 선택진료가 이뤄지게 된다. 마지막 칸은 ‘주진료과 의사에게 선택진료 의사선택을 위임한다’는 내용. 예를 들어 내과와 방사선과, 신경외과에서 각각 진료받아야 한다면 주진료과인 내과 선택진료 의사가 방사선과와 신경외과 의사도 선택하게 된다. 언제 어떤 선택진료를 할지는 온전히 주진료과 의사의 선택에 따른다.

    박 사무국장은 “CT, MRI 같은 촬영은 어차피 기사가 하는 것이고 선택진료 의사가 지휘했다고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데, 주진료과 의사에게 선택진료 의사 선택을 위임했다는 이유만으로 CT 촬영 시에도 선택진료를 받고 돈을 더 냈다. 너무 부당하다”며 억울해했다. 그는 “아무리 경황이 없더라도 선택진료 신청서에 서명할 때 내용을 꼼꼼히 읽어야 하고 간호사의 설명도 요구해야 한다.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마지막 ‘포괄적 위임 규정’에는 되도록 서명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병원은 진료비 확인 신청이 달갑지 않다. 병원이 치료비를 과다하게 징수한 사실이 드러나면 병원 명예가 실추될 뿐 아니라 금전적 피해까지 입기 때문. 그래서 병원은 알게 모르게 확인 신청자를 압박한다. 박진석 사무총장은 “한 병원 소아병동에서 20여 명이 함께 진료비 확인 신청을 한 일이 있다. 그러자 병원에서 확인 신청을 한 환자에게 항암제 투약 시간을 미뤘고, 결국 나흘 만에 신청을 모두 취하했다”고 전했다. 한 대학병원 원무과에서 5년간 근무한 A씨 역시 고충을 털어놓았다.

    진료비 덤터기 씌우고 환자 협박
    머리 검은 짐승은 뒤통수 친다고?

    진료비 덤터기 씌우고 환자 협박

    급하게 병원을 찾는 이들은 경황이 없어 선택진료에 대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심평원에 진료비 확인 신청이 들어가면 심평원은 병원 측에 해당 환자에 대한 자료를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원무과는 어떤 환자가 진료비 확인 신청을 했는지 바로 알게 되고 환자에게 전화를 건다. 직접적으로 협박은 안 하지만 ‘어느 정도 비용이면 협의해줄 것인가’라고 묻는다. 단순히 원무과에서 전화했다는 것만으로도 당장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 처지에서는 부담이 될 것이다. 우리 병원은 아니지만 심한 경우는 담당 교수에게 알려 교수 차원에서 해결하게 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2010년 진료비 확인 신청이 접수된 2만4638건 중 24.7%인 6080건이 판결 전 취하됐다. 전문가들은 그중 상당수가 병원 측에서 환자에게 별도로 보상했거나, 환자를 압박해 신청을 취하하게 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직접 진료비 확인 신청을 진행했던 박 사무총장은 “담당 교수로부터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아야 한다’ ‘살려놨더니 뒤통수 친다’ ‘재발하면 절대 치료해주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진료비 덤터기 씌우고 환자 협박
    산업보건전문의 송윤희 씨는 “병원이 환자에게 진료비 확인 신청 여부를 묻는 것은 신청 취하 압력을

    넣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병원이 환자에게 전화로라도 확인할 수 없게 법적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심평원은 “진료상 불이익이나 강압적 취하 종용을 하는 경우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별도로 운영 중이며 이런 사례는 점점 줄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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