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6월, 교보문고는 매장 개점 30주년을 맞이한다. 교보문고의 30년 베스트셀러 가운데 대중 출판이 본격화한 1990년대 이후 빈번하게 순위에 오르면서도 작품성과 시의성을 갖춘 작가는 누구일까. 최근 30년간의 베스트셀러를 정리하면서 작품을 거의 모두 읽어본 나는 올해 초 작고한 박완서를 꼽고 싶다.
박완서는 마흔의 나이에 등단하고도 11권의 중·단편집과 15권의 장편소설을 펴냈다. 종합 베스트셀러에 처음 오른 박완서 작품은 1990년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다. 이혼 경력이 있는 35세 여주인공이 아내와 사별한 대학 동창과 결혼을 전제로 관계를 맺었다가 아이를 갖게 되면서 겪는 수난을 그린 소설로, 가부장제 질서와 여성 차별의 사회적 통념에 맞서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는 당당함을 보여준다. 사랑이나 결혼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기 시작한 젊은 여성 독자에게 이 소설이 큰 인기를 끈 직후에는 공격적 페미니즘 소설이 큰 흐름을 이뤘다.
이후 소외된 노인의 쓸쓸한 삶을 그린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년), 자본의 속물성을 그린 ‘아주 오래된 농담’(2001년),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자화상이나 다름없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2002년)가 연이어 베스트셀러에 오른 다음부터 박완서의 책은 나오면 무조건 10만 부 넘게 판매됐다.
박완서 소설의 강점은 섬세한 감성과 치밀한 묘사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려내기 어려운 진솔한 무늬가 소설에 오롯이 담겨 있다. 전쟁과 가난, 장기 독재, 여성 억압의 현실을 온몸으로 관통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농밀함을 갖췄기에 늘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박완서 이후에는 신경숙, 공지영 등 스타 여성작가와 황석영, 김훈 등 ‘늙은’ 남성작가가 한국 소설 시장을 농단하다시피 했지만, 2000년대 내내 전도양양한 신인 소설가는 단 한 사람도 배출하지 못했다. 여러 문학상을 수상한 유망한 중견작가의 작품마저도 3만~5만 부 팔리는 것을 감지덕지해야 할 정도니, 유망 신인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로 무망한 기대일까.
아니다. 나는 정이현, 정유정, 김애란을 꼽고 싶다. 그중에서도 2009년 ‘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정유정이 가장 확실한 주자에 근접했다고 본다. 첫 소설로 10만 부 판매를 넘기면서 가능성을 보여준 정유정이 2년의 노력 끝에 최근 펴낸 ‘7년의 밤’은 한 달도 되지 않아 초판 5만 부 매진을 앞두고 있다.
25세 두 청년의 정신병원 탈출기인 ‘내 심장을 쏴라’가 간호사였던 작가의 체험이 모티프가 된 작품이었다면, 흉악 범죄를 저지른 아버지의 7년 전 행적을 추적하는 ‘7년의 밤’은 오체투지로 작품을 완성한 성실성이 가져다주는 정보의 힘과 상상력부터가 남다르다. 40대 나이에 뒤늦게 등단한 정유정의 작품은 “운명이 당신의 삶을 옥죄어올 때, 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이 질문은 살아남으려고 날마다 몸부림쳐야 하는 이 시대의 대중에게 강력한 임팩트를 던지는 주제라 할 것이다. 작가가 인생을 넉넉하게 관조할 줄 아는 나이에 등단했기에 첫 작품부터 독자의 사랑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정유정은 아직 문단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덕분에 독특한 상상력을 맘껏 펼친다. 그의 강점은 힘이 넘치면서도 치밀한 스토리텔링과 등장인물의 내면을 냉정하면서도 객관적으로 그리는 심리묘사다. 과거에 잠시 문단의 주목을 받다가 평단을 너무 의식해 디테일을 놓쳐 ‘망해버린’ 작가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자기 강점을 그대로 유지해나간다면, 그는 차세대를 이끌 작가가 될 것이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등 다수.
박완서는 마흔의 나이에 등단하고도 11권의 중·단편집과 15권의 장편소설을 펴냈다. 종합 베스트셀러에 처음 오른 박완서 작품은 1990년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다. 이혼 경력이 있는 35세 여주인공이 아내와 사별한 대학 동창과 결혼을 전제로 관계를 맺었다가 아이를 갖게 되면서 겪는 수난을 그린 소설로, 가부장제 질서와 여성 차별의 사회적 통념에 맞서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는 당당함을 보여준다. 사랑이나 결혼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기 시작한 젊은 여성 독자에게 이 소설이 큰 인기를 끈 직후에는 공격적 페미니즘 소설이 큰 흐름을 이뤘다.
이후 소외된 노인의 쓸쓸한 삶을 그린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년), 자본의 속물성을 그린 ‘아주 오래된 농담’(2001년),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자화상이나 다름없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2002년)가 연이어 베스트셀러에 오른 다음부터 박완서의 책은 나오면 무조건 10만 부 넘게 판매됐다.
박완서 소설의 강점은 섬세한 감성과 치밀한 묘사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려내기 어려운 진솔한 무늬가 소설에 오롯이 담겨 있다. 전쟁과 가난, 장기 독재, 여성 억압의 현실을 온몸으로 관통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농밀함을 갖췄기에 늘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박완서 이후에는 신경숙, 공지영 등 스타 여성작가와 황석영, 김훈 등 ‘늙은’ 남성작가가 한국 소설 시장을 농단하다시피 했지만, 2000년대 내내 전도양양한 신인 소설가는 단 한 사람도 배출하지 못했다. 여러 문학상을 수상한 유망한 중견작가의 작품마저도 3만~5만 부 팔리는 것을 감지덕지해야 할 정도니, 유망 신인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로 무망한 기대일까.
아니다. 나는 정이현, 정유정, 김애란을 꼽고 싶다. 그중에서도 2009년 ‘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정유정이 가장 확실한 주자에 근접했다고 본다. 첫 소설로 10만 부 판매를 넘기면서 가능성을 보여준 정유정이 2년의 노력 끝에 최근 펴낸 ‘7년의 밤’은 한 달도 되지 않아 초판 5만 부 매진을 앞두고 있다.
25세 두 청년의 정신병원 탈출기인 ‘내 심장을 쏴라’가 간호사였던 작가의 체험이 모티프가 된 작품이었다면, 흉악 범죄를 저지른 아버지의 7년 전 행적을 추적하는 ‘7년의 밤’은 오체투지로 작품을 완성한 성실성이 가져다주는 정보의 힘과 상상력부터가 남다르다. 40대 나이에 뒤늦게 등단한 정유정의 작품은 “운명이 당신의 삶을 옥죄어올 때, 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이 질문은 살아남으려고 날마다 몸부림쳐야 하는 이 시대의 대중에게 강력한 임팩트를 던지는 주제라 할 것이다. 작가가 인생을 넉넉하게 관조할 줄 아는 나이에 등단했기에 첫 작품부터 독자의 사랑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정유정은 아직 문단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덕분에 독특한 상상력을 맘껏 펼친다. 그의 강점은 힘이 넘치면서도 치밀한 스토리텔링과 등장인물의 내면을 냉정하면서도 객관적으로 그리는 심리묘사다. 과거에 잠시 문단의 주목을 받다가 평단을 너무 의식해 디테일을 놓쳐 ‘망해버린’ 작가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자기 강점을 그대로 유지해나간다면, 그는 차세대를 이끌 작가가 될 것이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