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철마을~갈티재 구간의 시작 지점인 수철마을 입구.
일부러 숲길 고갯길 강길 들길 옛길을 에둘러
아주 천천히 걷고 또 걸어서 그대에게 갑니다
잠시라도 산정의 바벨탑 같은 욕망을 내려놓고
백두대간 종주 지리산 종주의 헉헉
앞사람 발뒤꿈치만 보이는 길 잠시 버리고
어머니 시집올 때 울며 넘던 시오리 고갯길
장 보러 간 아버지 술에 취해 휘청거리던 숲길
애빨치 여빨치 찔레꽃 피는 돌무덤을 지나
밤이면 마실 처녀총각들 물레방앗간 드나들고
당산 팽나무 달 그늘에 목을 맨 사촌누이가
하루 종일 먼 산을 바라보던 옛길
그 잊혀진 길들을 걷고 걸어 그대에게 갑니다
산청(山淸)에 눈이 내렸다. 지리산 머리가 희끗희끗 백발로 변했다. 지리산 아래 산청은 양지바른 땅이다. 눈이 와도 봄눈처럼 금세 녹아버린다. 눈은 응달에만 한 줌씩 웅크리고 있다. 산청은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천왕봉(1915m)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오를 수 있는 땅이다. 겨울 지리산은 맑고 쇄락하다. 공기는 차고 알싸하다. 강물은 얼어붙었다. 물은 군데군데 쫄쫄 흐른다.
구제역 파동 둘레길 공식 폐쇄
(위) 덕산은 온통 감나무 천지다. 이곳 감은 고종시(高宗枾)다. 보통 감보다 잘고 씨가 없고 맛이 달다. (아래) 고둥과 산나물이 어우러진 삼거리식당 정식.
산청 둘레길은 공식적으로 문을 걸어 잠갔다. 구제역 파동 때문이다. 그렇다고 걷기꾼들이 안 갈 리가 없다. 발이 근질근질한 걷기꾼들은 ‘소리 없이 살그머니’ 둘레길을 다녀간다. 산청군에서도 그걸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걷기꾼들과의 ‘느슨한 공존’인 셈이다. 산청군은 1월 25일 현재 ‘구제역 청정지역’이다. 일단 둘레길 걷기꾼들은 방역에 철저해야 한다.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산청군도 이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방역 대책을 세워야 한다. 걷는 것이 결코 먹고사는 것보다 우선일 수 없다.
동강~수철마을 구간은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다. 제법 높은 고개가 2개나 있고, 폭포도 있다. 흙길보다는 시멘트 임도와 아스팔트길이 많다. 어르신들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 힘들다. 그만큼 무릎에 압박을 많이 받는다. 스틱은 필수다. 내리막에선 그만큼 무릎의 부담을 덜어준다.
겨울 지리산은 뼈만 남았다. 둘레길도 바늘잎 소나무만 빼놓고 모두가 꾀를 벗었다.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등 참나무 밑에는 도토리 껍질이 수북하다. 다람쥐, 멧돼지 등의 다급한 식사 흔적이다. 먹을 게 부족하니 쭉정이 이삭이라도 주워 먹어야 한다. 올해처럼 도토리가 흉년이면 산짐승은 죽느냐 사느냐의 보릿고개를 넘어야 한다. 이제 봄은 머지않았다.
단속사 옛터와 겁외사를 찾아온 겨울바람
수철마을에서 성심원까지는 마을을 지나 경호강을 따라 가는 길이다. 산청읍내의 옆구리를 거쳐 간다. 지루하다. 강바람이 제법 맵다. 오른쪽에 웅석봉(1099m)이 말없이 굽어보고 있다. 길은 성심원을 지나 아침재부터 거의 수직 오르막이다. 숨이 가쁘다. 아침재~어천마을~원정마을까지 약 13km 구간은 호젓한 숲길이다. 바람이 “윙~윙~” 깔깔대며 지나간다.
구름마을 운리(雲里)엔 단속사(斷俗寺) 옛터가 있다. 단속사는 글자 그대로 ‘속세와의 인연을 끊은 땅’이다. 성철스님(1912~1993) 생가 터에 지은 겁외사(劫外寺)도 비슷한 뜻이다. ‘시간 밖의 절’인 것이다. 겁외사는 산청 단성면 묵곡리에 있다. 단속사 터엔 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운리 일대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종매화가 2그루나 있다. 정당매와 원정매가 그것이다. 남명 조식 선생이 심은 산천재의 남명매와 함께 ‘산청3매’라 불린다.
정당매는 고려시대 문인 강회백(1357~1402)이 젊은 날 단속사에 심었다는 매화다. 강회백은 정당문학(政堂文學)이라는 고위직에까지 올랐던 선비. 정당매는 산청군 단성면 운리 탑동 단속사 터에 있다. 현재 3개 줄기가 외과수술을 받고 남아 있지만 거의 고사 상태다. 봄마다 원줄기에서 뻗어 나온 손자줄기에서 꽃망울을 토해내고 있다. 원정매는 원정(元正) 하즙(1303~1380)이 심었다는 매화다. 정당매가 있는 탑동 윗동네 원정마을에 있다. 원줄기는 말라 죽었으나 밑둥치 옆에서 가지가 나와 분홍꽃을 토해낸다.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의 전(傳)구형왕릉.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재위 521~532)의 능으로 전(傳)해 내려온다. 그는 ‘나라를 보존하지 못한 죄인이니 돌로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남명매는 1562년 남명(南冥) 조식이 61세 때 산천재 앞뜰에 심은 홍매다. 남명매는 아직도 헌걸차고 꼿꼿하다. 봄마다 사진작가들의 단골 주인공이다. 향기도 은은하고 그윽하다. 토종매화는 꽃이 작다. 꽃도 띄엄띄엄 성글게 돋는다. 향이 은은하고 오래간다. 검버섯 마른 명태 같은 몸에서 어느 날 화르르 꽃을 토해낸다. 섬진강변의 매화는 대부분 매실을 따기 위해 양계장 닭처럼 ‘대량 양식’을 하는 꽃이다. 일본 개량 매화다. 꽃이 덕지덕지 붙는다. ‘매화나무’라기보다는 ‘매실나무’인 셈이다. 고고한 기품이 덜하다. 향기도 오래가지 않는다. 벚꽃처럼 우르르 피었다가 우수수 진다.
백운계곡은 조식 선생의 산책 코스다. 그는 산천재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머리를 식히려 이곳을 찾아 노닐었다. 그의 글씨 ‘白雲洞(백운동)’ ‘龍門洞天(용문동천)’ ‘嶺南第一泉石(영남제일천석)’ 등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마근담(摩根潭)계곡은 ‘마의 뿌리처럼 곧은 골짜기’다. 물이 맑다. 백운계곡~마근담계곡 구간 둘레길은 겨울철에 한해 문을 닫는다. 눈과 빙판길 미끄럼으로 사고가 염려되기 때문이다. 걷기 도사들의 안내가 필요한 구간이다. 단체로는 몰라도 1,2명이 가는 것은 무리다. 길은 비교적 잘 정비돼 있지만 가파르다.
단속사지삼층석탑.
겨울 지리산 둘레길은 호젓하다. 혼자 걷다 보면 분노에 찌든 내가 보인다. 왜 그리 살았는지 부끄러워진다. 산청 덕산은 감나무 천지다. 감나무 끝엔 까치밥이 달려 있다. 검은 나뭇가지 위 붉은 꽃이 흔들린다. 그것은 여유다. 배려다. 그렇다. 모든 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헛된 것’이다.
Basic info.
☞ 교통편
고속버스 | 서울 → 진주(진주에서 산청행 버스)
시외버스 | 서울남부터미널(3시간 소요)
자동차 | 서울 → 경부고속도로 → 대전통영고속도로 → 산청IC
산청에서 수철마을까지 버스로 10분 소요. 산청군내버스(055-973-5191), 산청버스터미널(055-972-1616)
코스
수철마을 → 지막마을 → 대장마을 → 산청고교 → 내리교 → 내리한밭 → 바람재 → 풍현(성심원) → 어천마을 → 헬기장 → 점촌마을 → 탑동마을 → 원정마을 → 백운계곡 → 마근담계곡 → 사리(고마정) → 사리(천평표) → 중태마을 → 유점마을 → 갈티재
먹을거리
고둥 전문 삼거리식당(055-973-2663)
메기찜 자라탕 전문 산청읍내 강변식당(055-973-2346)
해물콩나물밥 보쌈, 낙지전복탕 전문 덕산의 ‘수풀 林’(055-972-4066)
문의
산청군산림녹지과(055-970-6900), (사)숲길(055-884-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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